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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이야기 Jul 05. 2021

강준만의 비판과 소통

강준만 교수가 한겨레 신문에

'비판은 소탕이 아니라, 소통이다.'라는 칼럼을 썼다.


그러면서 이 문구를 인용했다.

“저는 저하고 생각이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공격에 대해서는

정말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02107.html#csidxdabafe45fdf6dc7bfb604ced875af76


한마디로

생각이 다른 진영이, 서로를 공격하는 비판보다

같은 진영 안에서, 서로를 비판하며

소통의 폭을 넓혀가 야한다는 것이다.


칼럼을 읽으면서 너무 답답했다.

강준만 교수는 정말

자기 확신에만 가득 차 있어서,

소통은 기대해볼 수 없겠다는 확신마저 들었다.


이분의 시각에서의 비판은

그저 진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규정해

버리는 것 같다.


아니다.


진영이 아니라, 사실과 논리적 모순을

비판하는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칼럼 서두에서 인용한


“저는 저하고 생각이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공격에 대해서는

정말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일방적인 공격에 있다.


공격을 위한 공격을 하기 위해

사실을 비틀고, 상대를 우롱하는

비논리와 비아냥에 대해

사실과 논리로 반반하는 것이다.

진영과 상관없이 말이다.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강준만 교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어쨌든 진영이 다르잖아."

"같은 지영의 비판을 못 받아들이잖아"


라는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다.


안 듣는 게 아니라

못 듣는 게 아닐까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이런 우월한 선민의식이야 말로

시민들을 자기보다 못한

개돼지로 인식하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꼰대들의 특징은


첫째 자기만 옳다.


라고 생각하는것이다.

때문에 자기의견에 반발하는 사람은 틀린사람

이라고 규정하고 출발한다.

그래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둘째는 가르치려한다.


시민은 그저 가르침의 대상이지

그래서 시민의 충고에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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