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연락온 전 남친

우리는운명이었을까?

by 이차람

“너는 왜 자꾸 잊을 만 하면 보이냐?”

“몇 년 만이냐, 전화해라.”


그는 일 때문에 문화 분야를 검색하다 보니 내 블로그가 종종 보였다 말했다. 내가 다니던 출판사에서 책을 꽤나 많이 출간하기 때문에, 내 블로그에 책홍보 글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은 당연했다.


한 작가의 펀딩 이벤트로 그와 연락이 다시 닿았다. 12년 만이었다. 나는 파주에 그는 제주도에 있었기에 그 뒤로 영상통화를 자주 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났던 21살 때로 돌아간 기분도 들었다. 반가웠다.


잠시 21살 때로 돌아가겠다.


나는 한 포털 사이트 카페에 한 유럽 작가의 팬클럽을 개설했다. 지금도 생각난다. 한가했던 추석 오후, 선선한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올 때 ‘내 친구 아멜리’이라는 카페를 만들었다. 회원가입자는 나 한 명뿐이었다, 몇 주가 지나도 가입자가 없었다. 한 명만 생겨도 너무 소중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가입했다.


그는 다른 포털사이트에서 아멜리 작가의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렇다. 운영자와 운영자가 서로 품앗이하듯 커뮤니티를 가입해 주었다. 채팅을 하며 알게 된 건 동갑이라는 것.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 종종 채팅을 했다.


어느 맑은 가을,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유럽작가 특별할인전을 한다고 해서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지금 생각하면 좀 유치하지만, 몇 시 정문 앞에서 아멜리 책을 들고 서 있자고 했었다.


수줍게 인사를 나누고 종로 청계천을 거닐며 다양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친한 친구가 되었다. 신촌 버거킹에서 햄버거도 먹으며 진지하게 정치사회 이야기도 했었다. 풋풋한 21살 동갑내기는 그날 ‘효순이 미순이’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만났다. 그 당시 미국부대가 어린 소녀들을 치고 무책임하게 나왔던 사건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러 나왔고 반대편에는 무장을 한 경찰과 군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시위대에게 해산하지 않으면 위협한다고 했었다.


양쪽의 신경전이 팽팽했을 때 나는 맨 앞으로 가서 그들을 째려봤다. 혼자 앞에 서면, 어린 여자를 건들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쪽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쯤 나는 다시 뒤로 물러나 그 친구와 함께 행렬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놀라지 않았냐고 어디라고 선두에 서냐고 타박했다.


시위가 끝나고 집에 가려는 데 그 친구는 손과 입술을 덜덜 떨며 나에게 고백했다.


“아까 너무 멋있었어.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귈래?”

“그래”


그렇게 내 앞에서 덜덜 떠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렇게 몇 계절이 지나고 우린 헤어졌다. 나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 뒤로 12년 만에 다시 연락이 닿은 것이다.


전 남친은 무료할 때 소설을 하나 쓰고 있었는데 주인공이 나라고 했다. 탈고 하면 보여준다고 하며 엄청 이상하고 괴팍한 캐릭터라고 했다. 그리고 제주도는 좀 심심해서 서울로 이직할까 생각 중이며 곧 면접 보러 올라온다고 했다.


몇 주 뒤 서울에서 면접을 보고 시간이 되지 않아 바로 제주도로 내려갔다고 연락이 왔다.


‘나를 안 보고 갔다고? 그럼 내가 내려가지 뭐.’


“지완아, 우리 몇 달째 연락만 했네. 내가 3월초에 내려갈게.”


“아니야. 내가 올라갈게.”


“내가 내려가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니? 너 유부남이니?”


“아니야 그런 거.”


“나 티케팅 했다. 일출봉 쪽에 게하도 잡았어.”


그 뒤로 지완이와 연락이 끊겼다.




나는 문자를 남겼다.


“너 연락 안 받으면 너네 회사 앞에서 피켓 들고 서 있는다. 내 성격 알지?”


"소설 언제 보여줘?"


“나 앨리스 게하에 있다. 당장 와라.”


그의 답장이 왔다.

“미안해 사정이 있어서 못 갈 것 같다.”



나는 그날 게하 사랑채에서 만난 여성 두 분과 수다의 밤을 보냈고 다음 날 혼자 우도에 가서 보말국수, 땅콩 아이스크림을 야무지게 먹고, 옆에 있는 분과 서로 사진도 찍어주며, 마지막까지 말을 신나게 타다 서울로 돌아왔다.


그 자식은 "정말 정말 미안해"라는 문자 뒤로 소식이 없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일요일에 교회에서 찬양을 하다가, 갑자기 전 남친 생각이 났다. 노래를 멈추고 구글에 이름 석자를 검색해 봤다.


제주신문에 그의 결혼 소식이 실려 있었다. 어느 한 초등학교 선생님과 결혼을 한다고.


나는 바로 문자를 보냈다.

“결혼 축하한다.”


그는 결혼 전 주까지 왜 나와 연락을 한 것이며, 내가 제주도에 내려가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연락을 했을까?


혹시 21살 때 헤어진 이유가 궁금했다면 지금 여기서 말할 수 있다.


사실 그를 좋아한 적이 없고, 내 앞에서 너무 떨며 고백하니 미안해서 거절하기가 어려웠던 나였다. 또 그걸 말하며 헤어지기 미안해서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이것이 연애인지 우정인지 잘 몰랐던 21살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사귀는 건 절대 하면 안되는 걸 배웠다.


그런데 그는 왜 그런 진상 연락을 했던 걸까?

추측컨데, 그는 결혼하기 전까지도 나를 포함한 여러 여자들을 견주어봤던 게 아닐까 싶다.


아름답게 추억으로 간직되었을 스무살 언저리 우리의 서사는...

이렇게 끝이 났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지명, 가명 등 20프로의 허구를 가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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