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월호

세월이 흘러도 어제와 같은 일

by 이차람

퇴사전


하루 몇 번씩 눈을 깜빡 걸렸는지 모르겠다. 병원에 갔더니 안구건조증이라고 약 처방을 받았다. 어쩐지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남자 친구와 헤어져도 너는 어째 눈물 한 방울 없냐는 소리도 들어봤다. 인공눈물 없이는 어딜 가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2014년 4월 16일. 그날은 점심시간에 버스를 타고 여유 있게 광화문으로 외근을 가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휴대폰으로 세월호 침몰 뉴스를 봤다. 구조중이라는 기사임에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너무 울었는지 내 앞에 물을 뚝뚝 흘리는 교복 차림의 환영까지 보였다. 버스에서 창피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구나.

2014년 4월 16일. 내가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자각을 시작한 시간이었다.



KakaoTalk_Photo_2016-12-28-13-38-09.jpeg



퇴사후


북유럽 신화에서는 토르가 신들의 나라에 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곳에서 어떤 할머니와 시름을 하게 되는데, 토르는 지고 만다. 그 할머니는 시간의 신, '세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토르가 이길 수 없는 것은 '세월'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 있다. 세월호 사고이다. 아직도 젖은 교복을 입은 소녀도 생각난다. 또 너무 울까 봐 자로의 세월엑스를 못 볼 것 같았다. 그러나 울지 않고 8시간을 다 볼 수 있었다. 자로는 바다에 잠긴 세월호를 다시 끄집어내었다. 이런저런 추측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관계자들과 증거, 데이터들을 다시 꺼내어 재조사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슬픔과 무서움에 마주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마주하게 해주어서 감사했다. 지금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기에 다 볼 수 있었던 것도 같다.


다른 것은 다 세월을 이길 수 없다하지만,

세월호는 이름 자체가 세월이기에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5. 오이피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