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맛] 차림식 : 뭉근하고 느긋하게 라구소스 만들기
'조급하면 지는 거다'
시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큰 가르침이다.
아기를 낳고 치열하게 우리의 세상을 키워냈다.
누구도 우리를 궁금해하지 않고
주어진 내비게이션도 정해진 목적지도 없지만
몸으로 부딪쳐가며 알아내고 배운 것들로 채웠다.
그동안
우리를 제외한 세상은 휘몰아치듯 빠르게 변했다.
음식점에서는 저기요 대신
키오스크로 주문을 해야 하고
무언가 궁금한 게 생길 땐 형체는 존재하지 않지만
극강으로 위로해 준다는 인공지능을 찾는다.
집 밖을 나서면 나는
늘 그늘아래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서늘했고 솔직히 말하면 두려웠다.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이들은
깃발을 잡기 위해
땡볕에서 전력을 다하고 있는 듯했다.
늘 앞서기만 했던 나였기에 뒤처지는 게 불안했다.
그때마다
시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씀들을 떠올린다.
신혼 초,
많은 사람들이 내 집마련에 열을 올리던 그때
우리만 뒤처지는 것 같아 조급하던 시절
해주셨던 이야기이다.
‘ 조급함은 눈에 보인다.
그래서 쉽게 진다.
지나치게 느려지지 않게 계속 노를 저어라.
적당한 타이밍을 알기 위해 작은 경험을 쌓아라.
조급하면 지는 거다. 느긋하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이럴 때일수록 현실에 단단히 발을 붙여야 한다.
아버지 말씀을 떠올리며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에 전력을 다한다.
내일 갑자기 내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의 조급함을 덜어내고
느긋하게 토마토를 으깨며
뭉근하게 저어낸 라구소스를 만든다.
향기가 짙은 올리브오일과 버터를 준비한다.
양파와 당근 셀러리는 모두 약한 불에 천천히 볶는다. 약한불이 중요하다. 느긋하지만 계속 저어주면서
야채가 부드러워지는 타이밍을 찾는다.
다진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준비해
중간불로 조절하며 볶는다.
와인이 있으면 와인을 넣고,
스무 개쯤의 토마토를 넣어 또 볶는다.
적당히 볶아지면 닭 육수를 붓고
두세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뭉근하고 느긋하게,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당한 중 약불로.
걸린 시간만큼 깊은 맛을 기대해 본다.
요리를 하며, 앞서고 싶은 조급한 마음을 다스린다.
정성을 다해 차려낸 나의 음식들이 나를 만들고,
우리 가족의 뿌리가 되리라 믿는다.
내일부터가 아닌 그저 오늘을 살아보려 한다.
그래서 조금씩 매일을 차려 내본다.
조급하면 진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