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소란한 봄을 보내며

오늘의 [맛] 차림식 - 여리지만 짙은 제철 봄나물들

by 차림식




내 인생에 가장 소란했던 봄이었다.

몸도, 마음도, 1분 1초 까지도 전쟁 같았다.

이 시간들을 보내며 소진했다는 말의 뜻을 체감했다.



말 그대로 몸으로 느꼈다. 툭치면 눈물이 쏟아졌다.

울지 않으려 애썼던 날들을 보내고

울면서 마음을 털어냈다.




이제는 지금껏 해온 일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깨닫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닌 내 마음을 위한 일이었다.




아쉽게도 조금씩 흐려지는 내가 느껴진다.

나를 위해 나만 생각하던 시절이 꺾였고

내게 주어진 역할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웃으면서 지내지만

마음 한 구석엔 해결되지 않은

잡다한 마음과 일들이 먼지덩어리처럼 엉켜있다.

깨끗하고 명확한 마음들과는 섞이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그래서 그것들을 잠시 구석에 모아둘

마음의 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방의 크기를 키우지 않기 위해,

되도록 자주 청소하는 방법을 익히는 계절이었다.

2025년의 봄은 그랬다. 만들어 둔 마음의 방은

크지 않다. 크게 키우고 싶지도 않다.




마음의 방 크기를 유지하려면 먼지 덩어리들이

가득 찼다는 신호를 알아차려야 한다.



신호가 왔을 때 눈물이 나면 울고,

땀 흘려 숨이차게 운동을 한다.

그리고 밥을 해 먹는다. 책을 읽는다.

잘 시간이 되면 잠을 자고, 사람들을 만나 내 마음과

우리의 근황을 서로 나눈다. 그게 전부다.

남편과 와인 한잔에 오늘을 털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지리라는 약간의 희망을 품고.

막연한 기대와 큰 꿈은 크기를 줄여본다.




아이를 돌보고, 내 일을 챙기고,

집을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내게 주어진 역할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필요할 때 역할을 바꾸는 법을 연습한다.

앞으로 10년, 15년쯤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또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욕심부리며 다 잘하려 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나의 봄을 보낸다. 괴로웠던 내 마음을 들려 보냈다.



그래도 조금은 아쉬운 마음에

얼마 전 두릅을 데치고 엄나무 순을 데쳐 먹었다.

발사믹 오일과 올리브오일의 조합이 나물의 향기를

더해준다. 미나리로 전도 부친다. 그 외에도 새로움을

품고 돋아난 여리고도 가장 향기로운 나물들을 아쉽지

않게 차리고 먹는다.



그리고 무르익을 뜨거운 여름을 또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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