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간의 귀한 시간을 통해 알게 된 것들
혼자 떠난 방콕에서의 시간은 묘하게 당혹스러웠다.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해 왔으면서도, 정작 그 자유 속에던져지니 예상치 못한 마음의 빈자리들이 드러났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집에 두고 온 아이 생각이 거의 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방콕에 잠시 머물던 친구를 만나 내 아이와 동갑인 친구의 아들을 만났는데도 내 아이는 겹쳐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되고 난 뒤 5년 동안은 한 번도 꺼진 적 없던 '엄마'라는 계정이 방콕의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 잠시 로그아웃된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 잠시 물었다. '애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렇지만 바로 답할 수 있었다. 이건 모성애의 결핍이 아니라 일종의 생존을 위한 셧다운(Shut-down)이다. 지난 몇 년간 내 영혼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쉼 없이 연소되어 왔다. 24시간 내내 뇌의 한구석을 점령하던 시스템이 방콕이라는 낯선 필터 앞에 잠시 멈춘 것이다. 아이가 생각나지 않는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비로소 '나'로 존재해도 안전하다는 것을 내 몸이 본능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건 죄책감을 가질 일이 아니라, 완벽한 휴식에 도달했다는 정직한 신호였다.
재미있는 건, 아이는 잊었으면서 여행 내내 남편은 보고 싶었다는 점이다. 아이가 '책임'과 '의무'의 영역이라면, 남편은 나에게 '기쁨'과 '감각'을 나누고 싶은 최고의 파트너였다. 의무가 사라진 상태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남편이라는 사실은 꽤나 머쓱하고도 낯간지러웠다. 가족이라는 덩어리를 다 걷어내고 남은 진짜 내 마음이 '가장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동료'를 향하고 있다는 확인.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수확은 충분했다.
하지만 진짜 아이러니는 귀국날 찾아왔다. 방콕에서 독감에 걸린 채 돌아오게 되었고, 자가격리질환자인 엄마와 어린 아들에게 옮길까 오자마자 방에 격리되었다. 마치 사식처럼 밥을 넣어주면 먹고, 몸이 고단해 그저 잠이 오면 자는 그 무기력한 격리의 시간. 여행지에서의 시간보다 집에 돌아온 뒤 방에서 격리한 그 시간이 엄마가 된 뒤 맛본 최고의 휴식이었다는 사실이 서글프면서도 달았다. 어딘가 고장이 나야만 비로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이불 속에 처박힐 권리'를 획득할 수 있다니!
정말 긴 10일간의 시간이었다. 지금은 일상으로 돌아와 지지고 볶으며 자기전에 누워서야 오늘 행복했음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앞으로 기약없는 이 귀한 시간을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프지 않아도, 어딘가로 떠나지 않아도 쉴 수 있는 '나만의 방콕'을 일상에 차려두기로 했다.
나만의 방콕을 차리는 건 간단하다. 한 번에 근사한 만찬을 차리려다 굶지 말고, 허기질 때마다 꺼내 먹는 간식처럼 휴식을 차려내는 것이다.
어차피 매일은 하기싫고 원치 않는 일로 가득하다. 그러니 잠시라도 좋아하는 것을 할 틈이 생겼을 때,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더라도 그 일을 해야 한다. 이미 수십 번 봤지만 나의 인생작인 <해리포터>를 다시 틀고, 화장실에서 10분간 문을 잠그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것. 그런 사소한 '미세 격리의 시간'이 모여 나를 지탱하는 방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