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마음) 차림식 - 꼭꼭 씹어 삼킨 내 안의 모순들
21년 늦가을, 빨간 고구마 같은 아기를 이 세상으로 초대했다.
어찌나 어색한지, 아이를 데리고 퇴원하던 날 안아보지도 못하고 쩔쩔매며 낯을 가리던 엄마가 나였다.
차라리 무거운 짐을 들고 가겠다며 기어코 손사래를 치던 산모.
그렇게 엄마 혼자 낯가리고 어색함이 감돌던 한 달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알았다.
남편과 내가 세상으로 초대한 이 빨간 고구마가 얼마나 뽀얀 빛을 띤 보물인지를.
어색함 속에 찾아온 내 보물. 어색함 속에 뛰어난 사랑.
그래서 진짜인 모순적인 마음.
아이와 함께 40개월간 24시간을 붙어 지냈다.
그리고 매일 모순의 순간들을 꼭꼭 씹어 삼키며 살았다.
찌르기 밖에 모르는 ‘아이’라는 창과, 어떻게든 막아보고 알려주려는 ‘부모‘라는 방패의 공존.
맞지 않는 것들이 나란히 놓여 종일 붙어있는 상태.
정말 모순적이게도 이것이 내 하루를 가장 생생하게 만들어주었다.
하루 종일 아이를 안아주고, 함께 놀고, 수다를 떨고, 세끼를 늘 함께 먹고 나면
정신도 몸도 바닥을 기는 것 같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꼭 그런 날,
“엄마 오늘 재밌었다. 나는 엄마를 제일 사랑해.”
거참. 피곤한데 행복하고, 행복한데 너무 피곤하다.
내가 피곤하지 않았다면 이 행복을 이만큼 달게 느낄 수 있었을까.
모순적이게도 양가감정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했다.
사랑도 모순이었다.
사랑하기에 매 순간 함께 진하게 붙어있고 싶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매일 조금씩 아이와 멀어져야 함을 안다.
40개월간 붙어있다가
최근 아이도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크게 느끼고 있다.
아이의 챕터 1 주인공은 그저 엄마, 아빠 그리고 자신이었다.
그런데 언제가부터는 엄마, 아빠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 하고
싫은 것도 좋은 것도 많아진다.
아마도 아이 인생의 챕터 2가 시작되려는 신호였으리라.
이제 내 보물의 새로운 시작된 페이지에서 부모는 한 발 물러나 있어야 함을 안다.
우리의 자리였던 곳은 아이가 직접 부딪치며 만드는 이야기들로 채워질 것이다.
유치원에서 만난 친구들,
즐거움 속에서도 때로는 다투어야만 하는 일들,
싫어도 받아들이는 법
숲과 나무, 곤충, 산, 바람, 자연으로 가득한 일상들.
사랑하기에 매 순간을 짙게 기억하고 싶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매 순간 함께가 아닌, 조금씩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모순적인 이런 날들이 나를 살아있게 하고,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지금 함께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서로 의존하지 않아도 의지할 수는 있음을
멀리 보면 비극 같지만
가까이 볼 수록 희극뿐인 우리의 일상을 기대한다.
오늘도 나는 모순을 꼭꼭 씹어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