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관계] 차림식 - 단출하지만 깊이 있는 관계 차리기
일상을 잘 차리는 게 주 업무인 주부의 핸드폰은
보통 고요하다.
어쩌다 한 번 울리는 전화는
경우의 수가 몇 안된다.
남편의 부탁, 부모님의 안부.
그리고 심장이 내려앉는 단 하나의 번호.
아이의 유치원 원장님 전화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심장이 덜컥 앉으니
절대 오면 안 되는 전화.
고요함은 이제 내 일상의 기본값이자, 평온함이다.
나의 주 업무 용건이 아닌
인간관계에서 울리는 연락도 손에 꼽힌 지 오래다.
잊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쉴 새 없이 핸드폰이 울리던 시절이 환영처럼 느껴진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남자친구와 다툰 이야기,
회사 이야기.
노래 가사에서도 들을 수 있는 그런 보통의 날들이
하루를 채우곤 했다.
찰나의 순간을 맘껏 느끼기 위해 열정을 다해 살고
마음이 뜨거워야지만
살아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고요해진 내 일상을 심심해하고 허전해하며
마음의 온도가 식어버린 이유를 찾기 위해
오래 헤매었다.
이제는 안다.
그때의 뜨거운 마음은 잊히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타올라야만 움직였고
타버려야만 무언가 했다는 마음은
서서히 식으며
미지근하게 오래갈 온도를 찾아가고 있다.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
나는 나에게 필요한 시간을 알아차리고,
가족을 위한 식사를 차리고,
나와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기회를 얻었다.
마음의 온도가 식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만큼
나의 관계는 단출해졌다.
그리고, 다행히도 깊다.
연락이 오면 답장을 미루기도 하고
미루는 동안 나누려 했던 대화가 잊히기도 하지만
말없이도
서로를 알아차릴 수 있는
관계가 남았다.
엄지손가락 스크롤 한 번에 다 보일만큼 단출하고
더 이상 타오르듯 뜨겁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차릴 수 있는 관계들
3,4월 꽃이 흩날리는 동안
내 마음도 산산이 흩어지며
바닥을 보게 될 일이 있었다.
그때 나를 알아차려준 사람들.
나보다 나를 먼저 알아차리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주며
넘어진 내 무릎을 털어준 깊고 진한 사람들이 있었다.
내 온도가 식어갈 때 함께 식어가며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게 해 준 관계들
그 차림에, 오늘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