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골동품, 어디까지 있는가?

이탈리아에서의 여정 (8) - 역사 수도 로마 관람기 II

by 샤를마뉴

최전성기의 로마 제국은 유럽,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일대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대제국이었다.


그렇다면 그 대제국의 중심부는 어디였을까?

포로 로마노(Foro Romano/Forum Romarum)이다.

로마 시대의 포로(포럼/광장)에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건축물들이 밀집해 있었다.

오늘날의 '업무 지구'인 셈이다.


하지만 로마 제국이 쇠락하고,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오늘날의 포로 로마노는 건축물의 잔해와 기둥 정도만 겨우 남아있다.

물론 흔적조차 없는 것보단 낫다지만,

건축물의 잔해와 기둥이 꽤 정교한 형태를 띄고 있어

'온전히 남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캄피돌리오 언덕(카피톨리노 언덕, Campidoglio/

Monte Capitolino)에서 포로 로마노 일대를 둘러봤다.

캄피돌리오 언덕은 포로 로마노 서쪽에 있는 언덕이다.

이 언덕으로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걸 보면,

포로 로마노의 전경이 사진으로 가장 잘 담기는 장소 같다.


그럼에도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포로 로마노의 유적들이 많다.

그래서 포로 로마노 전체 지도와

필자가 촬영한 포로 로마노 사진 원본과 함께

건축물들의 위치를 따로 표시한 사진 또한 첨부했다.

포로 로마노 전체 지도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본 포로 로마노 풍경 (1), 아래 사진에 건축물 위치를 표시했다.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본 포로 로마노 풍경 (2), 아래 사진에 건축물 위치를 표시했다.
타불라리움(Tabularium, 왼쪽)과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ilo)로 올라가는 길목(오른쪽)

건축물 하나하나를 자세히 설명하기엔 과하고,

그 정도로 필자가 로마사에 전문적이지 않다.

포로 로마노의 어느 자리에 어떤 건축물이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이해한 거라고 생각한다.


잠실역 지하광장에는 유명한 분수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하얀 대리석의 조각상들과 그 뒤로 건축물이 있는 분수.

그 분수는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의 축소 모형이다.

잠실역 지하광장의 트레비 분수

필자는 잠실역의 트레비 분수에 큰 관심이 없었다.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잠실역은 필자 동네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지하철역이다.


그런데 로마에서 '진짜' 트레비 분수를 본 뒤,

그 감상을 글로 남기려고 할 때

문득 잠실역의 '가짜' 트레비 분수가 떠올랐다.

진짜와 가짜 간의 비교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게시하기 사흘 전에 잠실역으로 가서

가짜 트레비 분수 사진을 촬영했다.

평소에는 굳이 사진으로 찍지 않았는데, 희한한 일이다.


다시 잠실역 분수의 원산지인 로마로 돌아가보자.

포로 로마노 관람을 마치고 진짜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잠실역 분수의 존재를 알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솔직히 진짜 트레비 분수를 보는 것에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사람이 많아서 정신없었다.


진짜 트레비 분수만의 특징,

즉 가짜 트레비 분수와의 차이점은 크기에 있다.

진짜가 가짜에 비해 몇 배 더 크다.

다르게 말하자면, 크기 외에는 진짜와 가짜 간의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진짜 트레비 분수가 별로라는 뜻이 아니라,

가짜 트레비 분수가 꽤 훌륭한 모조품인 것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트레비 분수
트레비 분수 뒤편에 있는 성 빈센트와 아나스타시우스 교회(Chiesa dei Santi Vincenzo e Anastasio a Trevi)
트레비 분수를 보여주는 영상

분수의 이름인 '트레비'는 고유 명사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사실 트레비는 단순한 고유 명사는 아니고, '삼거리'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트레비의 'Tre'가 라틴어로 3을 의미하는 'Tres'이다.

트레비 분수는 한국어 기준에서는 외래어이므로,

순화하면 '삼거리 분수'가 되겠다.


현지 가이드의 말을 듣고 그 사실을 알았다.

필자가 그만큼 트레비 분수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트레비의 의미에 대해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트레비 분수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그 미안한 마음에서 트레비 분수의 역사를 조사해봤다.

앞선 글에서 로마 시내의 유적을 '고대'와 '근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고 했는데, 이 분수가 바로 '근대적인 건축물'에 해당한다.


트레비 분수를 최초로 설계한 인물은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1598~1680)였다.

그는 뛰어난 조각가이자 건축가로,

교황 우르바노 8세(우르바누스 8세, Pope Urban VIII/

Papa Urbano VIII, 1568~1644)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아

로마의 중요한 건축물을 설계하는 작업을 맡았다.


그중 하나가 트레비 분수였다.

그런데 설계 도중에 우르바노 8세가 선종하면서

베르니니는 그 분수를 실제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로부터 한 세기 뒤에,

니콜라 살비(Nicola Salvi, 1697~1751)가 바통을 넘겨받아

트레비 분수를 지었고, 1762년에 완공되었다.

왼쪽부터 교황 우르바노 8세,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니콜라 살비의 모습

이처럼 트레비 분수에서 풍기는 고대 그리스의 느낌은

근대에 그 느낌을 구현한 것이지,

고대부터 존재해 '고대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게 아니다.

다만, 트레비 분수가 있던 곳이 로마 시대 수로의 종점이기는 했다(참고할 글).


참고로 이 글에서 슬며시 언급한 베르니니는

바티칸 시국을 주제로 한 다음 글에서 다시 다룰 예정이다.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과 스페인 계단(Scalinata di

Trinità dei Monti)이었다.


'이탈리아 수도 안에 웬 스페인?'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필자 역시 그 의문을 가지며 스페인 광장과 스페인 계단을 구경했다.

알고 보니 근처에 주 교황청 스페인 대사관(스페인 궁전, Ambasciata di

Spagna presso la Santa Sede/Palazzo di Spagna)이 있어서

주변의 광장과 계단에 스페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로마 안에 또 다른 국가(바티칸 시국)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이질적이지도 않다.

스페인 광장
스페인 계단, 계단 위의 건축물은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Chiesa della Trinità dei Monti)이다.
스페인 광장에서 본 주 교황청 스페인 대사관(스페인 국기가 걸린 건축물)과 성모의 원주(Colonna dell'Immacolata, 사진 가운데 탑)
바르카차 분수(Fontana della Barcaccia), 피에트로 베르니니(Pietro Bernini, 1562~1629)와 아들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와 함께 만들었다.

로마 시내에서 마지막으로 본 유적은 판테온(Pantheon)이다.

판테온은 콜로세움과 함께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큰 건축물'이자,

다른 시대, 다른 건축물에 영감을 주는 '고전'이었다.


어쩌면 콜로세움보다 대단한 건축물일 수도 있다.

다른 시대, 다른 건축물에 영감을 주는 영향력에 한해서는 말이다.

프랑스 파리에도 판테온의 이름을 딴 팡테옹(국립 묘지,

Panthéon/Panthéon de Paris)이 있다.

건물 구조 또한 유사하다.


필자가 팡테옹도 직접 관람했다면,

판테온과 비교할 만한 사진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프랑스 여행 일정 중에 팡테옹 관람은 포함되지 않았다.

팡테옹

무엇보다도 중요한 판테온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은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다.

맞다. 앞선 13, 14화에서 봤던 그 대성당이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판테온으로부터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하 성당으로 표현)에

육중한 돔을 얹는 난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었다.


필자는 14화에서 그가 성당의 돔을 얹는 과정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그밖에도 브루넬레스키의 생애에 관한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필자는 그중에서 핵심적인 내용만 소개했다.

이후의 글에 다시 그를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며

일종의 복선을 제시했다.


그 복선을 이제 풀어낸다.

피렌체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로마의 판테온에서,

그는 성당의 돔을 얹는 영감을 얻었다.

왜 하필 로마에서 그 영감을 얻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그가 직접 로마에 갔기 때문이다.

그는 성당의 돔을 짓는 총책임자가 되기 전에

그의 친구이자, 그만큼 재능이 있는 조각가인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와 함께 로마를 여행했다.


14~15세기의 로마는 '잊혀진 도시'였다.

서유럽에서 로마 제국의 영광은 476년 이후 사라졌다.

중세 시대에 로마 제국의 유산은

'이교도의 때가 묻은 불경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로마 제국은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 347~395) 재위기 이후

그리스도교가 국교화되기 전까지 다양한 신을 섬기는 걸 허용했다.

그러니 중세 시대의 관점에서 로마 제국은 '이교도의 국가'인 셈이다.


그런데 그는 '암흑기의 로마'에서 판테온을 보고

성당의 돔을 얹을 영감을 얻었다.

즉, 판테온은 중세 시대 로마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화한 상황 속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는 뜻이다.

만약 판테온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그는 과연 성당에 돔을 얹는 데 성공했을까?

한 번 생각해볼 지점이다.


판테온의 돔에는 하중을 줄이기 위한 여러 기법이 적용되었다.

돔의 정상부에는 무게가 가벼운 석재와

암포라(Amphora, 그리스 도기의 일종)를 쓰고,

돔 안쪽을 파내 정사각형 무늬를 배열하는 방법(코퍼, Coffer)을 사용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 기준에서도

'머나먼 옛날'에 육중한 돔을 얹은 건축물을 지었으니,

그때보다 '발전되었다'고 믿는 미래에서

그러한 건축물을 짓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았을까?

판테온의 존재는 후대에 돔을 얹은 건축물을 짓기 위한 기준점과도 같았다.


판테온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팡테옹을 낳았다.

판테온이 고전인 이유이다.

(참고: 로스 킹, 『브루넬레스키의 돔』, 김지윤 옮김, 도토리하우스, 2021,

pp.56-59, 65-71)


밖에서는 판테온의 돔이 사진으로 담기지 않는다.

건축물 자체가 매우 크다.

그 점을 양해하길 바란다.

판테온의 정면
판테온 정면의 라틴어 문구
[원문] M(arcus) Agrippa* L(ucil) F(ilius) Co(n)S(ul)** Tertium Fecit
[해석] 루키우스의 아들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로 콘술을 역임할 때 건립했다.

* 아그리파(Agrippa, B.C 63~B.C 12)는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이다.
** 콘술은 집정관으로, 로마 공화정 시기 최고 지도자였다.

(참고: 김덕수, 『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로마는 역사가 되었다』,

21세기북스, 2021, p.118 ;

배리 스트라우스, 『로마 황제 열전』, 최파일 옮김,

까치글방, 2021, pp.265-266)

판테온의 측면
croppedpantheonsectionfletcher.jpg 판테온 설계도
판테온을 보여주는 영상
판테온 앞의 원형 광장(Piazza della Rotonda)에 있는 판테온의 분수(Fontana del Pantheon)와 오벨리스크(Obelisco del Pantheon)
오벨리스크의 라틴어 문구
[원문] Clemens XI* Pont(ifex) Max(imus) Fontis Et Fori Ornamento
Anno Sal(utis) MDCCXI** Pontif(cus) XI
[해석]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재위 11년째이자 구원의 해인 1711년에
분수와 광장을 장식하기 위해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 1649~1721(생몰연도)
** 로마 숫자로, M=1000, D=500 C=100, X=10, I=1

이렇게 로마 시내 유적 이곳저곳을 둘러봤지만,

그럼에도 보지 못한 것들이 많다.

로마 제국의 역사도 방대한데,

로마에 남겨진 문화유산들의 역사는 더욱 방대하다.


점심을 먹고 로마 안의 또 다른 국가,

바티칸 시국으로 국경을 넘을 준비를 했다.

유럽여행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점심을 먹었던 로마의 중식 레스토랑(Ristorante Cinese), 웃긴 점은 일식도 같이 판매한다. 간판에는 '중국'만 내건 것을 보니 중국 요리가 전문 분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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