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2) - 유럽여행 중 한국의 흔적 관찰 및 사유의 기록
어떤 것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두 가지의 시선이 필요하다.
가까이서 본 시선과 멀리서 본 시선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의 시선은 모두 장단점을 갖고 있으며,
그렇기에 혼용해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다.
평가 대상을 '한국'으로 두고,
두 가지의 시선에서 평가를 내리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한국에서 나고자란 한국인이 자국 내부의 다양한 면면을 보는 게
한국을 가까이서 본 시선으로 평가하는 방법이라면,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한국(계)인 또는 외국인이
한국 외부의 피상적인 면면을 보는 게
한국을 멀리서 본 시선으로 평가하는 방법일 것이다.
평가 대상을 '유럽'으로 바꿨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유럽 각국 현지인의 시선에서 본 유럽과
한국인의 시선에서 본 유럽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과 유럽은 지리적인 간극이 매우 크며,
문화 및 정서의 측면에서도 매우 다르다.
어떤 두 대상이 서로 상반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면,
더욱 정확한 평가를 필요로 한다.
상반되는 특징은 일종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다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한국과 유럽을 바라보는 시선은
하나씩만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은 가까이서 본 시선으로,
유럽은 멀리서 본 시선으로 관찰해 왔다.
한국을 멀리서 보면, 자국이 어떠한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유럽을 가까이서 보면, 멀리서 볼 때는 미처 몰랐던 세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두 시선은 간과되어 왔다.
이처럼 두 가지의 시선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왜곡된 상을 갖게 되는 문제점이 나타난다.
가까이서 본 시선에만 골몰하면 '객관화'를 할 수 없고,
멀리서 본 시선에만 골몰하면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없다.
그간 필자는 한국 내부의 시선에서 본 자국의 모습이 너무 강조되고,
멀리서 본 유럽의 모습은 넘겨짚어 경시되는 분위기에
줄곧 문제의식을 가져왔다.
이에 그간 여행기의 본문을 쓸 때
한국의 관점에서 쉽게 짚어내기 어려운
가까이서 본 유럽의 모습을 충실하게 소개했다.
그에 더해, 이 글에서는 유럽의 시선에서 본 한국의 모습을
일상생활과 관련된 여러 일화를 중심으로 소개하겠다.
한국은 생각보다 장점이 많은 나라이다.
유럽여행 전 기간을 통틀어서, '한국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을
걱정하게 만든 두 가지의 애로사항이 있었다.
바로 물과 물건 간수이다.
우리나라는 물에 관대한 편이다.
길거리에 식수대가 있기도 하며, 식당을 가면 물을 기본으로 제공한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물을 제공하는 극히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매일 물을 마시기 위해 5~10유로는 기본으로 지출했다.
유럽에서의 1유로는
우리나라의 100원 내지 500원 동전으로 취급하지만,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현재는 환율이 올라 1유로가 원화로 1,600~1,700원의 가치를 가진다.
단지 물을 마시기 위해
하루마다 10,000원 정도를 지출한다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다.
귀국한 뒤, 물에 관대한 우리나라의 모습에 감사함을 느꼈다.
물에 관대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두고 간 물건에도 관대하다.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다 탁자에 짐을 두고
화장실을 간 상황을 가정해보자.
파렴치한 도둑이 짐을 훔치겠다고 마음을 먹지 않은 이상,
다시 자리에 돌아올 때까지 짐은 탁자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그런 행위를 하면 안 된다.
내 물건을 가져가라고 홍보하는 꼴이다.
가이드는 여행 내내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강조했으며,
심지어 외교부에서도 그런 내용을 담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소매치기가 도처에 널려있다는 증거이다.
다행히 필자를 비롯한 일행 전체는
여행 기간에 특별히 물건을 도둑맞은 적은 없었다.
각자 물건 간수를 잘했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소매치기를 눈 앞에서 생생히 목격한 적은 있었다.
TGV를 타고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갈 때의 일이었다(10화 참고).
벨포르-몽벨리아르 TGV 역에 도착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정차한 역에서 하차하려는 승객의 캐리어를
누군가 잽싸게 가져가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을 봤다.
추격전 이후의 뒷이야기는 모르지만, 경각심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만약 그때 도둑맞은 짐이
필자 일행의 짐이었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아찔하다.
소매치기의 출몰지는 생각 이상으로 넓다.
알프스 산맥 중턱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을 때 물건을 노린다고 한다.
가이드의 증언이니 농담이 아닐 것이다.
한국 내부의 상황을 잘 아는 한국인들은 때때로
'우리나라가 과연 선진국이 맞을까?'라고 의구심을 가진다.
의구심을 가지는 동기는 충분히 이해된다.
각종 사회 문제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위상은 국제적으로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특히 방탄소년단,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대표되는
문화적 영향력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의 경제적 역할도
유럽에서의 한국 위상을 올리는 것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것을 보여주는 실제 근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대영박물관 내 한국관의 존재이다(5화 참고).
본래 대영박물관에는 한국관이라는,
한국의 유물만 따로 모아 전시하는 공간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공간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나름 알아주는 국가가 되었다는 증거이다.
여름에 대영박물관을 가면, 다른 공간과 달리
한국관에서는 에어컨을 상시 가동한다고 한다.
삼성이 박물관 측에 비용을 지원한 것이
그 이유라고 현지 가이드가 얘기했다.
그 말은 과연 사실일까?
여름에 대영박물관 내 한국관을 관람한 독자의 후기를 기다린다.
다른 하나는, 바티칸 시국 곳곳에 있는 삼성 패널의 존재이다.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것과 같은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바티칸 시국으로 몰려드는 모든 사람들이
중요한 행사가 거행되는 모습을 제대로 보기에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대형 패널이 필요한 것인데,
삼성이 그것을 제작하고 바티칸 시국에 공급한 '유일한 주인'이다.
한국인이라면 자긍심을 느낄 지점이다.
양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유럽 음식은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는 썩 맞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 때도 하루의 1끼는 한식을 먹었다.
유럽에서 한식을 먹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왔다.
막상 유럽에 가니 그 관념이 깨졌다.
중국/일본 음식점만큼은 아니지만, 한식당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음식도 맛있게 잘 만들뿐더러, 한국어에 유창한 직원도 있었다.
로마의 '금강산' 한식당의 방글라데시인 직원이 가장 한국어에 유창했다.
진짜 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어를 잘한다.
가이드는 그 직원하고 조금 친분이 있었는지 사담을 풀었는데,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와 이탈리아어에도 능통하다고 했다.
한국과는 한참 먼 거리에 있는 유럽 땅에서
한국어와 한식의 존재감을 지켜주는 외국인이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금강산 한식당은 두 번 방문했다.
피렌체 여행을 마치고 로마로 내려온 날의 저녁 식사로 제육볶음,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날의 저녁 식사로 육개장을 먹었는데
하나같이 맛있었다.
그 직원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이
한식을 맛있게 만드는 실력과 연관이 있는 모양이다.
방글라데시인 직원이 한국어에 유창하다는 사실이
큰 놀라움을 준 탓일까?
유럽여행 중에 여러 한식당을 방문했지만,
유독 금강산 한식당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유럽의 시선에서 본 한국의 모습, 어떠했는가?
가까이서 본 시선으로는 보기 어려운,
새로운 면면을 발견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한국에서 익숙하게, 당연하게 여겨진 요소가
타국에서는 큰 장점이 되며,
한국이 세계에서는 나름 괜찮은 위상을 가진다는 사실을
몇몇 일화를 통해 확인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한국이
세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답은 간단하다.
가까이서 본 시선으로 한국을 '정확히 이해'하되,
멀리서 본 시선으로 한국을 '객관화'하면 된다.
그런데 한국의 객관화가 가능하려면,
멀리서 본 시선도 가까이서 본 시선처럼 다루는 감각이 필요하다.
결국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만큼,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세계사 및 세계 문화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번 세계 여행을 떠날 수는 없으므로,
세계사 및 세계 문화를 책, 각종 매체, 교육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학습할 필요가 있다.
미약하게나마, 이 글도 그러한 학습 방법의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