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으로 가는 역사학 내비게이션 3장
이 장에서는 역사 전공자가 콘텐츠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논의한다. 지난 장에서는 유튜브 역사 콘텐츠의 현황을 소개하여 역사 콘텐츠의 유형이 어떻고, 무슨 문제와 한계가 있는지를 짚어보았다. 유튜브로 교양을 쌓는 정도의 역사 공부는 가능하다. 그렇다면 유튜브에서 깊이 있는 역사 공부는 불가능할까?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역사 공부는 문헌 자료로 해야 한다.'라는 공식이 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헌 자료의 탐구로 들어갈 수록, 역사의 대중화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문제도 있다.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역사 전공자라면, 유튜브라는 방대한 규모의 역사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곳에서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공공역사'라는 개념은 이런 문제를 논의할 때 효과적이다. 이 장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이 개념을 여기서 처음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실 필자도 최근에서야 알게 된 개념이다. 공공역사는 이름 그대로, 역사를 공공의 것으로 여기고, 또 그런 태도로 역사를 창출하는 걸 고민하는 학문이다. 이 정의는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간 역사학계가 역사 전문가, 역사학자만의 리그가 되고, 일반 대중은 '무지한 대상'으로 여겨 배척하지는 않았는지, 학문으로서의 역사만이 제대로 된 역사이자, 역사 공부 방법으로 보지는 않았는지라는 점에서 그렇다. 공공역사는 '역사, 역사가'의 범주를 넓게 잡는다. 공공역사의 영역에서 보면 지금 논의하고 있는 유튜브 역사 콘텐츠도 역사이고, 콘텐츠 제작자는 역사가로 정의 가능하다. 공공역사는 일명 '역사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다. 필자는 그 도전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역사와 유튜브 역사 콘텐츠의 상관관계를 논의하는 건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역사학자들을 고민스럽게 만든 배경은 '역사학자의 위기'와 관련된 것이다. 사학과 졸업생의 취업 문제가 대두되면서 비인기학과인 사학과가 나름의 대안으로 발견한 역사/문화콘텐츠학과로의 개편이라는 해법은 한때 위기를 기회로 바꾼 묘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역사학과 인문학의 미래인지에 대한 회의도 꾸준히 제기되었다. …(중략)… 사실, 공공역사의 발생지인 미국에서도 그 탄생 배경에는 대학의 취업 위기가 있었다. 해결책을 모색하는 가운데 역사의 실용성을 강조한 공공역사라는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게 된 것이다.
'역사 소비'라는 개념은 서구 사회에서는 좀 더 긍정적, 적극적 의미로 사용되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종종 부정적이거나 방어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소비'하다니, 그렇다면 역사가 상품이란 말인가? 이 때문에 역사가 시장 논리에 의해 자의적이고 도구적으로 해석/재현되어 항시적인 역사 왜곡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잘못된 현실'에 뭔가 비판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위기감, 불안감이 역사학자들 사이에 존재한다. 하지만 인정해야 할 것은 역사가 진지한 연구 대상이라고만 생각해 온 역사학자들의 생각과 달리, 현실 세계에서는 역사가 상품의 형태로, 혹은 상품과 같은 원리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공공역사문화연구소, <공공역사를 실천 중입니다>, 푸른역사, 2023, pp.33-36.
위의 인용은 역사 전공자의 역사를 다루는 태도, 역사학과 현실의 괴리를 잘 보여준다. 공공역사는 역사학 전공자가 사회로 진출하기 어려운 현실, '가볍게 접하는 수준'의 역사가 유튜브 콘텐츠, 서적의 형태로 소비되는 현실에서 제기된 개념이다. '학문으로서 다루는' 역사는 엄정하고 진지한 이미지가 있다. 역사학 전공자가 그 이미지에 부합하기를 은연 중에 원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전공자들 사이에서 역사의 대중화를 표방하는 콘텐츠에 대해 썩 좋은 인식을 가지지 않는 건 당연한 결과다. 이런 인식으로 미루어볼 때, 역사학은 고고하고 보수적인 측면이 있다. 그런데 현실의 급속한 변화는 역사학의 본래 이미지, 특성을 유지하는 걸 위협한다. 그 변화를 거부하자니, 역사학이 '무력하다.'는 인식을 주고, 수용하자니 '본래 특성을 완전히 버려야 하나?'라는 우려를 낳는다. 공공역사의 등장은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인문학은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다는 관념이 있다. 이 관념이 형성된 배경에는, 인문학 공부만으로 돈을 벌기 어렵다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역사 소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일 지도 모른다. 역사학자의 길을 꿋꿋이 가기에는 재정적인 문제, 어려운 공부를 감내할 역량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역사를 좋아하고, 세속적으로 평온한 삶을 추구하고픈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 역사의 '실용성'을 추구하고, 이를 다른 진로와 연계하는 방안을 택한다. 그래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대로, 역사를 소비하는 행위로 인해 역사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지만, 역사 소비가 자본주의의 매커니즘에 따르기 위해 일어나는 필연적인 현상임을 생각하면 '마냥 잘못됐다.'라고는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인문학의 학문적 이상대로 현실이 흘러가지 않는 시대이다. 그 원인에는 돈이 있다.
공공역사는 현실 지향적인 역사학이다. 공공역사 역시 하나의 학문이지만, 동시에 역사를 학문적으로 다루는 것만이 정도(正道)는 아님을 솔직하게 밝힌다. 더 나아가 역사의 탈(脫) 기득권을 추구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공공역사는 역사를 학자만이 전문적으로 다루고, 학자와 일반 대중 간의 벽을 형성하는 행위를 문제시한다. 역사를 해석할 권리는 역사학자만에게 있지 않다는 뜻이다(위의 책, p.17.). 달리 말하면, 역사는 누구든 다룰 수 있는 대상이다. '학자들만의 역사'에서 '모두의 역사'라는 관점의 변화는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예컨대, 역사를 콘텐츠화하는 행위, 역사를 교육하는 행위 등 역사와 현실이 서로 맞닿은 행위도 '역사를 해석하고, 재현하는' 역사가의 자세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점에서, 공공역사는 종래의 역사, 역사가의 정의를 좁은 의미에서 넓은 의미로 확대하여 역사의 현실성을 입증하는 학문이겠다.
그렇다면 공공역사는 곧 역사의 대중화인가? 책에서는 그게 아님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따라서 공공역사는 역사의 대중화랑은 다른 용어,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중화라는 어감이 주는 느낌을 생각해보자. 마치 전문가가 무지한 대중을 위해 쉽게 지식을 전달해주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공공역사는 역사를 '누구나 다룰 수 있는 대상'임을 전제로 하는데, 역사의 대중화는 역사를 '전문가가 선제적으로 공부한 다음, 대중의 수준에 맞게 풀어주는 대상'임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역사의 대중화는 공공역사와 일부 교집합은 있을지라도, 전체집합은 될 수 없다. 이것이 공공역사가 역사의 탈기득권을 추구하는 증거이며, 필자도 이 견해에 동의한다.
'역사 대중화' 기획은 '대중의 무지를 전제로 역사인식이나 역사서술에 대한 역사학자의 독점적 권위를 당연시한 것이었고, 이것이 오늘날 이 용어에 대해 많은 비판과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역사 대중화'의 본령이 단순히 대중에게 역사 지식을 전파하여 대중을 계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대중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는 공공역사의 목적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공공역사가 지향하는 것은 '권위의 공유'를 통한 '역사(학)'의 민주화이다.
- 위의 책, pp.31, 35.
공공역사의 체계, 직업적 역할은 무엇일까? 아직 확실하게 정의할 만한 단계는 아니다. 한국에서 공공역사란 개념이 알려지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이미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잡았지만, 한국에서는 여러 고민을 던져봐야 할 신생 학문이다. 이 모호함은 빠른 시일 내로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호하다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공공역사의 개념을 많은 사람이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한 과제이다. 공공역사와 역사의 대중화는 동일시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하지만, '공공'과 '대중화'는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공공역사에서 말하는 '공공'이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의 영역을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국가인지, 시민인지, 아니면 공공의 정의와 제일 유사한 불특정다수의 군중일지, 생성형 AI(대표적으로 Chatgpt)도 공공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을.
공공역사 교육 인프라 역시 마련되어야 한다. 교육은 어떤 개념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아직 공공역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고, 그렇기에 사회적 인프라 또한 없다. 사학과에서도 공공역사를 다루는 수업은 없거나 이제 겨우 첫 발을 내딛을까 말까이다. 고등 교육기관이 공공역사를 교육적으로 정의하여야, 하위의 교육기관 및 여타 사회 조직에서도 이를 정의하고 '실용화'하는 방안을 창출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공공역사라는 새로운 개념의 논의가 시작됐다면, 교육 체계를 세우는 것 또한 병행할 필요성이 있다. 신생 학문이 빠르게 싹을 틔우려면 그래야만 한다.
이처럼 공공역사는 매력적인 학문이지만, 넘어야 할 산 또한 많다. 공공역사가 매력적인 이유는 학문 특유의 이상론적 특성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실용성에 주목하고, 역사는 학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명제를 설정한 것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역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나도, 역사 해석을 하고 역사를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다.'라는 기대감도 심어주기 좋다. 그렇지만 기존의 깨지지 않았던 명제, 풍조를 완전히 깨는 것이므로, 그것이 깨지면서 생긴 공백을 채워줘야 공공역사가 비로소 완전한 학문으로 기능할 것이다. 공공역사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그 공백을 채우는 수단 중 하나이겠다. 신생 학문, 길이 정해지지 않은 학문인 공공역사의 미래는 그 이름답게 학자들이 아니라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공공역사는 역사서술과 재현의 주체가 다양함을 전제한다. 전문적 역사 연구와 분석 능력을 갖지 못한 역사서술과 재현 주체들이 순식간에 등장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이 오히려 특정 영역에서 전문 역사가들보다 더 위세를 떨친다. 공공역사는 권력과 자본의 영향에 종속되기 쉽고, 네트워크나 우연의 계기에 좌우되기도 쉽다. 그렇기에 공공역사의 위험과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어디든 공공역사는 아직 실험 중이다. 개념과 이론을 둘러싼 논의도 더 필요하겠지만 당분간은 실제 공공역사의 실천 또는 양상에 대한 경험적 분석과 비판적 조명이 더 시급하다.
현재 한국의 대학 사학과들 중에서는 학령인구의 감소에 직면해 학과 존폐 논의와 교과과정 개편 요구에 시달리는 곳이 적지 않다. 공공역사를 대안이자 전망으로 숙고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그 혜택이 역사학 전공의 졸업생들에게 얼마나 돌아갈지는 의문이다. 그것은 대학원이 아니라 학부과정에서의 공공역사 훈련이 과연 전문 역량을 갖추는 데 실제 도움이 될지 또는 공공 영역에서 공공역사 수행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에 얼마나 개방적인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 위의 책, pp.53, 55, 60.
공공역사의 실제 사례는 만들기 나름이다. 역사에서 실용성과 공공성을 뽑아내서 현실에 활용한다면 충분히 공공역사의 사례가 된다. 책에서도 공공역사의 사례를 굉장히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공공역사의 이론적 논의는 전체 책 분량의 20% 남짓 정도이다. 공공역사는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 사례를 더 많이 소개한 저자들의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해당 사례들을 하나하나 다루면 좋겠지만, 여기에서는 '유튜브 역사 콘텐츠'라는 글의 주제에 초점을 뒀으므로 이와 관련한 사례만 추려서 짚어보고자 한다.
유튜브 역사 콘텐츠 역시 공공역사의 사례에 포함된다. 책에서는 전문 연구자들이 [만인만색역사공작단TV]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역사 콘텐츠들을 제작한 사례가 소개되었다. 이 사례에서는 강점과 약점을 모두 밝혀 비판적 판단을 가능케 했다. 강점과 약점은 아래와 같다.
강점: 1. 전문 연구자가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수행: 지식을 '생산'하는 크리에이터의 특성에
전문성을 가미함으로써 차별화
Ex. 이 사례에서는 사료를 시청자와 함께 읽는 콘텐츠를 기획 -> 사료에 근거한 내용
전달이 상대적으로 간과되는 타 역사크리에이터와 대비되는 점(위의 책, p.439-440.)
2. 비전공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 역사의 공공성을 지향
약점: 1. 확장성이 약함: 전문성에 초점을 두면서 생긴 일종의 기회비용
2. 확장성에 의식하게 되는 콘텐츠 제작: 유튜브 시청자가 흥미를 가지는, 많이 볼 수 있는 역사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향으로 흘러감. 역사의 다양한 면면을 다뤄야 하는 목표의 실현 어려움.
Ex. 이 사례에서는 한국 역사의 어두운 측면도 콘텐츠로 다루고자 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이
저조하여 기획에서 주요 논의 대상이 되지 못함(위의 책, p.442.)
이 사례의 약점은 공공역사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전문성을 추구하면 대중으로의 확장성이 약해지고, 확장성을 추구하면 전문성이 약해지는 딜레마가 있다. 역사의 대중화가 안는 딜레마를 공공역사가 그대로 갖고 가는 것이다. 전문 연구자가 곧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고, 학술적 측면도 보장되며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건 분명히 장점이다. 책에서도 그것을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장점이 단점을 상쇄하지는 못한 것 같다. 결국 유튜브라는 공간은 시청자들이 영상 매체를 소비하고 반응을 남기면서 유명세가 창출되고, 영향력이 확장되는 것인데, 이 사례는 그 정도의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좋은 상품이 출시되었다고 해서 다가 아니고, 반드시 광고를 해줘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이 드러난다. 역사의 학술적 측면을 지키면 상품화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대중'이라는 모호한 실체를 대상으로 방송을 제작하면서, 같은 방송을 두고 '시시하다'와 '어렵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올 때는 힘이 탁 풀린다. 이러한 상반된 반응은 결국 '대중'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인해 빚어진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 난이도의 '중간 지점 찾기'는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
- 위의 책, p.442.
한편, 이 사례에서 강점으로 밝힌 내용도 비판적으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강점으로 내세운 게 오히려 단점이 되는 요소가 존재한다. 이 사례에서는 팟캐스트(음성 방송의 형태), 일반적인 유튜브 영상(시각적 요소 가미)의 두 유형으로 역사 콘텐츠를 제작했음을 밝혔다. 전자의 유형을 두고 '고퀄리티 역사 생산 팟캐스트'라는 수식어까지 붙였을 정도로 상당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런데 유튜브 채널에서 팟캐스트 방식의 콘텐츠를 일부 답습한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듯 하다. 팟캐스트 형식의 콘텐츠는 유튜브에 적합하지 않다. 유튜브를 보는 이유는 시각적 요소가 매우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음성 방송만을 듣기 위해 유튜브에 접속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콘텐츠 플랫폼의 특성에 따라, 콘텐츠 제작 방식의 확실한 변주를 가하지 않은 것이 유튜브에서의 확장성 약화를 불러온 요인이 되었을 수 있다.
긴 분량의 영상을 제작하는 것 또한 확장성 강화에 단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의 세상은 조금만 글이 길어져도 '3줄 요약해달라.'라는 요청이 나올 정도로, 길고 장황한 것을 싫어한다. 올바른 풍조라 보기에는 그렇지만, 작금의 현실이다. 유튜브는 그 현실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있다. 많은 시청자들은 짧으면서 임팩트가 큰 영상들을 소비한다. 짧음을 추구하는 풍조는 더 고착화되어서, 1분 이내로 제작된 '숏츠(Short)' 방식의 영상이 최근 각광받고 있다. 그러므로 긴 호흡의 영상은 유튜브의 큰 흐름을 거스른다. 이 거스름은 곧 시청자들의 영상 조회, 반응을 포기하는 리스크로 연결된다. 이 사례는 그 리스크를 감수하고 볼 만한 유튜브 채널이었는지, 콘텐츠였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래 사진을 보면, 해당 유튜브 채널에서 1시간이 넘어가는 영상이 드문드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이 정도 분량의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는 시청자는 극히 드물다. 팟캐스트 방송에서 청자를 배려하기 위한 원칙을 세운 것처럼, 유튜브 방송에서도 이에 견주는 원칙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팟캐스트) 방송 제작은 기획회의로부터 시작한다. 팀원 전체가 참여하는 회의를 통해 대략 한 분기를 채울 수 있을 만큼의 주제에 대해 논의한다. 방송은 일주일에 1회 송출로, 한 번 녹음할 때 적으면 2회, 많으면 4회 분량을 녹음한다. 1회당 약 50분을 넘지 않도록 신경 쓰는데, 이는 듣는 이의 집중력을 고려한 나름의 배려이다.
- 위의 책, p.432.
https://www.youtube.com/@TV-cx3dn/videos
그럼에도 이 사례는 유의미하다. 분명히 전문 연구자들이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어 학술적 측면과 대중적 측면의 중간 지점을 짚은 콘텐츠를 제작한 것은 어려운 시도이다. 필자가 이 사례의 약점을 지적했지만, 전문 연구자들, 그들이 만든 콘텐츠를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이 사례는 비록 대중으로의 확장성이 약했을지는 몰라도, 유튜브라는 공공의 온라인 플랫폼에서 일종의 '공공역사 아카이브'를 구축시켰다. 후일 또 다른 공공역사의 성격에 부합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 단체가 나타날 때 좋은 참고 사례가 되어줄 것이다.
이 사례는 역사 콘텐츠 제작에 있어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역사 콘텐츠 제작을 '지식 생산', '역사 생산'으로 보고, 이를 제작하는 사람은 '지식을 생산하는 역량'이 있어야 함을 밝혔기 때문이다. 역사 지식 생산은 보통 역사를 학문적으로 연구해서, 기존의 연구 가설을 뒤엎는 좁은 의미로 정의했는데, 넓은 의미로 나아간 것이다. 책에서는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며, 기존에 사실로 여겨지던 명제에도 의문을 던지는 것을 유튜브 역사 크리에이터의 지식 생산 역량으로 정의하고, 이것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비전공자도 쉽게 이해하는 콘텐츠 기법을 활용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일명 '역사 기득권 현상'이 발생하는 주요 요인은 '전공자들의 은어(학술적 용어)' 때문이기도 하다. 즉, 공공역사가 역사의 탈기득권을 위한 기치로 은어 문화에서 표준어 문화로의 전환을 내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대중적 측면에서의 전문성이기도 하다.
다만, 공공역사의 입지 확립은 몇 가지의 풍조 개선이 이루어질 때 더욱 수월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분량이 짧은 영상, 글만을 선호하는 풍조, 자극적인 콘텐츠를 추구하는 풍조를 개선 대상으로 꼽을 수 있겠다. 풍조의 자정 작용이 일어날 때, 공공역사도 순항의 궤도에 오를 것이다.
역사크리에이터는 역사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이므로, 생산을 위해서는 그만큼의 연구 역량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식을 '습득'하는 단계를 넘어서야 자신만의 관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 지식의 습득과 생산은 공부의 범주가 다르다. '매주 3만 명 이상이 듣는 방송'의 생산자라면, 전문성 추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가 생산하는 지식을 수만 명이 듣고 활용한다고 생각하면 심장이 쫄깃해지지 않겠는가.
전문성 획득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단계는 아무리 어려운 학술적 개념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쉽고 정확하게 전달해 내는 단계이다. 전문성 획득이 역사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한 출발 지점이라면 이 단계는 역사크리에이터가 도달해야 할 최종 종착지인 셈이다.
- 위의 책, p.443.
이 장에서는 공공역사의 개념을 소개하고, 이를 추구하는 유튜브 역사 콘텐츠의 사례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유튜브로 역사 공부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더 구체적으로 찾아갔다. 지난 장에서는 '유튜브로 교양 수준의 역사 공부는 가능하다.'라는 결론을 얻었다면, 이번 장에서는 '유튜브로 준전문적인 수준의 역사 공부도 가능할 수 있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더불어 유튜브 역사 콘텐츠가 공공역사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공공역사 사례로 소개한 유튜브 [만인만색역사공작단TV]는 전문 연구자가 '차별성 있는' 역사크리에이터가 되어, 비전공자와 역사로 소통하고 논의하는 장을 마련하였다. 이 사례는 유튜브 역사 콘텐츠가 어떻게 하면 '양질화, 전문화'되고, 역사크리에이터가 어떠한 역량을 갖춰야하는지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공공역사가 갖는 딜레마 해소가 미래의 입지 확립을 위한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에서 공공역사는 아직 신생 학문이다. 현재의 공공역사는 학문의 요체를 이루는 학설과 방법론이 확립되지도 않았고, 교육 및 사회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아 대중뿐만 아니라 역사 전공자들에게도 생경하게 인식되고 있다. 그러므로 공공역사가 빠르게 자리를 잡아 역사학의 한 분과로 기능해야 한다. 허나 딜레마 해소라는 큰 장애물이 있는 상황이다.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 최적의 지점 찾기'가 그것이다. 공공역사 이전에 제기된 개념인 역사의 대중화에서도 안고 있었던 딜레마로, 공공역사도 이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유튜브 [만인만색역사공작단TV]는 역사크리에이터, 콘텐츠의 '차별성, 전문성, 공공성'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중성에서는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공공역사가 역사의 대중화와 동일 개념이 아니라면, 이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 최적의 지점 찾기의 딜레마를 해소한 공공역사는 역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학문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공공역사가 갖는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유튜브 역사 콘텐츠(지난 장에서 분류한 유튜브 역사 콘텐츠 유형 가운데 (5)에 해당하는 것)를 제안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유튜브에는 '날것의 역사 영상' 또한 있다. 날것의 역사 영상은 근현대 시기 실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흑백 영상, 필름으로 담은 것을 의미한다. 이런 부류의 영상은 과거 그대로를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이 머릿속으로 역사를 좀 더 완전히 재현하는데 도움이 된다. 역사는 사후적 성격의 기록으로 불완전하게 재현되는 특성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날것이다 보니 세계사적 사건을 그대로 담은 영상의 경우, 언어적 문제로 접근 및 이해가 어려운 문제가 있다. 더 놀라운 점은, 역사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유튜브에 떠돌아다니는 '날것의 역사 영상'을 모으고 번역하여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구상을 현실화한 사례가 없다. 이를 현실화하면, 유튜브에서 대중성과 전문성을 모두 갖춘 역사 공부가 가능해지면서, '딜레마가 해소된' 공공역사의 상이 제시될 지도 모른다. 또한, 콘텐츠 시장에서의 역사가 역할도 정의할 수 있다. 그 방안은 아래의 정리로 갈음한다.
(5) 실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그대로 담은 역사 콘텐츠
https://www.youtube.com/@UpscaledHistory/videos
https://www.youtube.com/@allthingsold5232/videos
https://www.youtube.com/@KTV_archive/playlists
<대중성, 전문성, 공공성을 갖춘 유튜브 역사 콘텐츠 개발 방안>
1. 유튜브에서 실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생생히 담은 영상 수집
- 영상 수집 범위, 수집을 위한 용이한 검색 기준 필요
2. 수집한 영상들을 항목 분류 등을 통해 체계를 구축
Ex. 제2차 세계대전(대주제): 영국 관련 영상 자료(소주제 1), 프랑스 관련 영상 자료(소주제 2) 등
3. 수집한 영상 내용 번역
- 역사 전문가와 언어 전문가가 역사 영상을 번역함으로써, 대중이 직접 영상을 접근하고 해석할
수 있게 도와줌. -> 공공역사에서 말하는 일종의 역사학의 민주화
4. 모음집 책으로 출간
- 영상의 장면들을 캡처한 것, 캡처한 장면에서 나오는 내용을 번역한 것을 제시
- 번역한 내용에 대한 주해도 필요하면 할 수 있음
- 책에서 영상으로 찾아가는 새로운 형태의 참고 문헌 제시 방식을 채택할 수 있음, 이 경우 전자책
으로 발간하는 것이 좋음(링크를 누르면 바로 해당 영상으로 넘어가게끔)
<기대 효과>
- 역사 전공자가 콘텐츠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행사할 수 있음.
- 전문적인 역사 영상 매체로의 접근성이 높아짐.
-> 실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담았으므로, 흥미를 돋우기에도 좋음.
- 공공역사 발전에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