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으로 가는 역사학 내비게이션 4장
이 장과 다음 장에서는 Chatgpt(인공지능)와 역사학, 역사교육의 관계를 짚어본다. Chatgpt는 신속한 정보 수집 능력, 정리 능력, 답변을 도출하는 사고 능력 등을 가진 생성형 AI(인공지능)로, 2020년대를 뒤흔든 '혁신'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미 현대 사회는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일상에서 부닥치는 많은 문제를 인터넷을 통해 해결하고 있었다. 가령, 모르는 게 있으면 인터넷에 검색을 해서 알아낸다거나, 돈을 송금할 때 금융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굳이 은행에 가지 않아도 된다. 2010년대 초, 스마트폰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 나타난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Chatgpt는 다시 한번 세상을 바꿨다. 개인이 '직접 노력을 들여'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는 형태에서, 개인이 'Chatgpt에 채팅만 하면', Chatgpt가 인터넷을 총망라해 '정보를 내어주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 말만 무성하고 실체는 불분명했던 인공지능은, Chatgpt로 실체까지 분명해지며 '인공지능 시대'로의 대전환을 앞당기고 있다. 이 대전환에서 역사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였다.
역사학도 시대의 동요에 편승하고 있다. 문헌에만 골몰하는 전통적 역사학에서 벗어나, Chatgpt와 같은 첨단 도구에 역사를 투영하는 새로운 역사학(대표적으로 디지털 인문학)이 얼굴을 드러내는 중이다. 새로운 역사학의 수용을 장려하기 위해 교육도 바뀌는 중이다. 좋든 싫든,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시대의 변화가 새로운 풍토로 귀결되면, 역사학에서도 새로운 토양이 생겨날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토양을 모색하는 단계이다.
어떤 것이든 100% 맹신하면 안 된다. 인공지능도 예외는 아니다. Chatgpt의 성능은 정말 훌륭하지만, 그럼에도 옥에 티는 구석구석 존재한다. 답변을 빠른 속도로 척척 내놓았는데, 꼼꼼히 살펴보니 틀린 내용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경우도 많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이터 능력'은 탁월하지만, 정보 하나하나를 엄밀하게 검수하는 '정제 능력'은 아직 인간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틀린 답변을 내놓으면, 인간이 올바른 답변을 하도록 정제해줘야 한다. 역사학은 이 점에서 비교 우위를 가진다. 정보 하나하나를 엄밀하게 살피는 역사학은 인공지능의 스승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의 정제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머지않아 사그라들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전지전능한 존재는 없다.'이겠다. 지금의 인공지능도 옥에 티가 있듯이. 이 점이 바로 인공지능을 인간의 '비판적 사고력'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다.
핵심 질문은 '인공지능과 역사학이 상호 작용을 이루기 위한 균형은 무엇일까?'이다. 역사학이 인공지능을 배척해서도 안 되고, 역사학이 인공지능에 종속되서도 안 된다. 역사학이 인공지능을 주도하려면, 두 가지의 역할이 필요하다. 역사학 본연의 전통적인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여 역사학만의 무기를 보유하고, 인공지능을 '설계'까지는 안 하더라도 '도구적 활용'은 잘하는 게 그것이겠다. 결국 역사학은 아이디어, 인공지능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도구로 상호 작용해야 한다. 우선 이 장에서는 Chatgpt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Chatgpt가 역사가 혹은 역사 교육가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짚어보겠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인공지능과 역사학이 결합 과정에서 생기는 장애물, 문제를 짚어보면서 핵심 질문에 대한 최종적인 답을 내려보겠다.
제일 먼저 검토해 볼 점은 'Chatgpt는 역사적 지식이 있고, 역사적 사고를 할 수 있는가?'이다. 이를 위해 필자가 직접 Chatgpt와 관련 주제로 채팅을 해보았다. 필자는 첫 질문으로, Chatgpt 스스로가 '역사를 공부 혹은 연구하는 입장에서의 능력치'를 노골적으로 물었다.
Chatgpt 스스로 답변하기를, '석사생 수준은 된다.'이다. 기본적인 역사 지식이 있을뿐더러, 사료를 분석할 수 있고 학문적 글쓰기 스타일도 안다고 한다. 이는 분명한 장점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인에게는 간단한 역사 지식을 얻는 용도로,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공부, 연구와 관련한 인사이트를 얻는 용도로 유용하다. 그런데 답변의 마지막 부분에 주목해 보자. 독창적인 연구를 직접 하지는 못하고, 그것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을 돕는 용도에 특화되었다고 한다. Chatgpt는 스스로 '역사를 공부하는 자아'가 아닌 '역사 공부를 돕는 도구'임을 자백한 셈이다. 인공지능은 아직 인간처럼 자아(혹은 정신적 세계)를 갖고 능동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를 공부 및 연구하기 위한 도구적 능력은 갖추고 있어, 인간은 그것을 써먹을 수 있다. 학부생보다는 전문적이지만, 박사처럼 일가를 이룬 것이 아닌, 그야말로 '석사생'다운 포지션이다.
역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사료 분석이다. Chatgpt는 사료 분석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필자는 두 번째 질문이자 과제로, 실제 사료를 던져주고 분석해보게 하였다. 필자가 Chatgpt에게 준 사료는, 영국 산업혁명의 원동력을 제공한 제임스 와트가 증기 기관을 어떻게 개량했는지에 대해 스스로 설명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원사료]
해당 사료의 출처: 하단 사이트에서 조회되는 문서에서 p.305~p.312.
https://archive.org/details/libraryoriginal10thatgoog/page/n3/mode/1up?view=theater
하단 파일은 상단의 내용을 별도로 정리.
Chatgpt는 사료 분석 능력 또한 갖춰져 있다. 인간이 직접 한 땀 한 땀 사료의 문장을 해석하는 노력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5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소개한 사료의 전체 번역을 내놓았다. 번역문도 깔끔하며, 내용도 많이 들어맞는다. 오히려 번역기보다 나을 정도이다. 번역기는 단문 번역은 제법 잘하지만, 장문이나 어려운 용어가 많이 섞인 문장을 번역하면, 한국어인데도 알아들을 수 없는 번역문이 나와버린다. 그럼에도, 번역기는 비교적 최근까지 인간의 번역을 돕는 보조 도구로 쓰였다. 이제 번역기는 구식 도구가 될지도 모르겠다. Chatgpt가 더 많은 분량의 글을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번역해 내니 말이다.
현재도 사료의 접근성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다. 사료를 전산화해서 온라인 사이트에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료의 활용성도 높아졌을까? 'Yes.'라고 확답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역사 디지털화는 '역사 자료를 디지털 공간에 게시'하는 걸 주요 목표로 삼았다. 디지털 공간에 게시된 역사 자료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건 개개인의 몫에 맡겼다는 뜻이다. 즉, 역사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역사 자료를 디지털 공간에서 습득할 수는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기에는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Chatgpt의 등장은 역사의 디지털화 과정에서 큰 진보를 가져다주었다. 사료의 활용성도 높아진 것이다. 이 변화는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변화는 일반인도 역사가의 범주에 편입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인도 Chatgpt의 힘을 빌리면 사료를 가공하여 써먹는 게 가능하다. 전문적 영역의 역사 공부를 경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일반인은 역사를 공부할 때 사료까지 꼼꼼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일반인의 역사 공부는 대개 '취미, 사실 나열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앞에서 Chatgpt의 사료를 '개괄적으로, 알기 쉽게' 분석하는 능력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역사에 호기심이 많은 일반인 입장에서는 '분석은 Chatgpt가 다 해주니까, 역사 자료만 수집하면 되겠네!'라는 사고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호기심으로 Chatgpt에게 사료 분석을 부탁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사료를 접하고 다루는 경험을 얻게 되고, 더 나아가면 역사 공부 방법의 변화가 일어나며, 관련 능력도 배양이 가능하겠다.
부정적인 변화는 디지털 공간에 게시된 사료의 신빙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보화 사회의 특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정보화 사회는 방대한 분량의 정보가 급류처럼 움직이고 있다. 한 언론사가 뉴스 속보를 하나 올린 상황을 가정해 보자. 그러면 다른 언론사도 뉴스 속보를 일제히 보도하겠고, SNS에서도 뉴스 속보와 관련한 반응이 올라올 것이다. 이 연쇄효과는 빠르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여기서 정보화 사회의 문제점이 나타난다. 정보가 방대하고 빠르게 전파되어서 '진짜 정보'를 도리어 알기 힘들어진다. 인공지능에게 사료를 분석하는 것을 허용하여, 일반인도 사료에 접근하는 것을 넘어 활용하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좋다. 그런데 그에 관한 기준, 질서를 명확히 정해두지 않으면 '무분별한 정보 생산, 유포'의 문제점이 야기된다. 지금의 Chatgpt도 '100% 정확한 정보 전달자'는 아니다. 사료 번역의 편의성을 추구하다가 정확성이 간과되면 안 된다.
이상의 고찰로, 일명 '인공지능 문명' 시대의 역사가 역할도 정의 내릴 수 있다. 인공지능 문명 시대의 역사가는 역사가 고유의 능력을 그대로 가지면서, 인공지능과 협업하는 사람이다. Chatgpt가 역사적 지식과 역사적 사고를 갖추고 있으므로, 역사가도 활용하여야 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Chatgpt가 역사 공부 및 연구에 있어서 겪는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시간 절약과 질적 연구의 근본적인 한계점 극복이 가능한 게 그것이다. 한편, Chatgpt는 사용 대상의 제한을 두지 않았기에, 일반인도 역사를 매개로 하여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일반인도 역사가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지만, 역사 자료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위기가 되기도 한다. 역사가는 전자의 기회를 장려하면서, 후자의 위기에 대응하여야 한다.
두 번째로 검토해 볼 점은 'Chatgpt로 역사교육이 가능한가?'이다. Chatgpt가 역사가의 역량을 갖췄다는 명제가 참이라면, 역사 지식을 전달하는 역량 또한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 지식을 전달하는 역량은 단순히 '어떤 것에 대해 알려줘'라고 채팅을 보낸 뒤, 그것에 답을 하는 초보적 형태가 아니다. 교수법, 교육평가 등 실제로 적용 가능한 교육 시스템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필자는 Chatgpt에게 세계사 교과목에 대한 교안을 직접 마련해 보라고 했다.
Chatgpt는 교육을 설계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조금만 다듬으면, 위에서 제시된 교안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필자는 이에 더해 Chatgpt에게 위의 교안을 각종 이미지와 디자인을 적용한 PPT로 만들라 지시하였고, 파일을 생성했지만 아쉽게도 열어볼 수가 없었다. 어떤 계획(기획, 브레인스토밍)을 현실화한 결과물을 만드는 부분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 같다. 이 오류도 언젠가 고쳐질 것이다. 확실한 것은 Chatgpt로 교육을 큰 틀에서 설계하는 건 가능하다. 큰 틀 안을 꾸미는 건 아직 인간의 몫이다.
기대해 볼 점은 '교육의 표준화가 가능한가?'이다. 지금의 교육에서 나타나는 표준성은 '교육과정' 같은 거시적 교육 요소이다. 교수법 등 실제 교육 현장에서 적용되는 미시적 교육 요소는 편차가 크다. 학교에 따라, 교사에 따라 제각각이다. 이전 시리즈(새롭게 바라보는 역사교육 문제)에서도 지적한 적 있듯이, 사교육은 '표준화된 학습 도구'를 제공하여 공교육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교육평가의 일환인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시험 시뮬레이션을 양에서도, 질에서도 꿇리지 않게 찍어내는 형국이다. 표준화된 교육 도구를 통해 교육 목표(실질적으로는 시험을 잘 보는 것)로의 달성을 용이하게 하는 사교육의 전략에 학생들이 현혹되고 있다. 공교육도 이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 학교가 다르다고 해서, 가르치는 교사가 다르다고 해서 교육 목표 달성에 유불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이를 위한 첫걸음이 Chatgpt와의 협업일 수 있다. Chatgpt로 교안의 큰 틀을 제작한 다음 교사들끼리 교안의 질적 완성, 활용법 등을 협의한다면, 균질화된 교육 제공이 가능하다. 요즘의 교육이 학생의 개성을 찾아주는 방향으로 변화한다고 하지만, 그러기에 '균질화, 표준화된 교육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 개별화 교육으로 유불리 확대라는 폐단이 나오지 않으려면 그래야 한다.
훌륭한 수업을 만들어내는 몫을 교사에게만 맡길 수 없다. 사교육이 훌륭하다는 인상을 주는 건 '전담식 교육'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사교육계에서는 어떤 과목만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전문적으로 교재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학생에게 기술을 전수해 준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은 시험 문제를 잘 푸는 기술이다. 공교육은 시험 문제를 잘 푸는 기술만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다. 그러므로 교사에게 부여된 역할은 여러 가지이다. 훌륭한 수업도 하고 싶겠지만, 그에 앞서할 일들이 많다. 이런 현실 때문에, 공교육 수업의 질을 의심하는 분위기는 점차 굳혀져가고 있다. 수업 설계의 몫을 인공지능에게 일정 부분 위임한다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교사의 부담은 줄이면서, '훌륭하다.'까지는 아니더라도 '평균 이상은 한다.'라는 수업이 균질하게 제공되는 긍정적 결과를 모색해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의 교육적 활용은 교육 현장의 고질적 문제를 해소하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교육의 전문화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놓을 수 있다. Chatgpt가 언어 장벽이 있는 각종 역사 자료를 빠른 시간에 번역 및 요약이 가능하므로, 이를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교육 전문화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교과서의 내용을 단순하게 전달하는 방식의 역사교육에서 벗어나, 교과서 밖의 들판처럼 널려 있는 역사 자료를 교과서의 내용과 조합하여 전달하는 방식의 역사교육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다. 풍성한 역사교육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교육과 인공지능의 협업은 단순히 편의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교육의 전문성을 높이는 열쇠일지 모른다.
이상으로 비교적 간단한 실험이었지만, Chatgpt로 역사교육도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현장 교육의 큰 틀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의 부담을 줄여주고, 교육의 표준화를 꾀할 수 있으며, 역사가의 역할도 겸한다는 점에서 교육의 전문화까지 기대해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역사교육'의 한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장에서는 인문적 방법으로 Chatgpt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보통 인공지능은 코딩이나 프로그래밍과 같은 '이공계적 방법'으로 정의되기 마련이다. 필자는 그런 이공계적 방법에는 문외한인 사람이다. 하지만 인문적 방법으로도 인공지능을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고,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Chatgpt를 역사 분야에서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은 충분히 생기기 마련이다. 필자는 그 호기심에서 Chatgpt를 인문적 방법으로 정의해 보았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설계하고 발전시킬지를 모색하는 이공계적 방법이 지금도, 앞으로도 중요하겠지만, 인공지능을 어떻게 인간, 삶을 위해 유용히 쓸지를 모색하는 인문적 방법도 분명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한편, 이 글은 필자의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인공지능을 인정하는 '승복 선언'이기도 하다. 사실 필자는 인공지능을 그리 탐탁지 않아 했던 사람이다. 사학과에서 디지털 인문학의 바람이 분다며, 교육과정을 전면적으로 개편할 때도 철저히 이에 반대하는 행보를 보이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때가 2022~2023년 무렵이었는데, Chatgpt의 수준이 지금처럼 고도로 발달하지 않았을 때였다. 디지털 인문학의 실체도 모호했어서 반감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Chatgpt가 인간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발전해 버리며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는 인문학도도 인공지능에 어느 정도 열려 있어야 한다는 현실이 도래했다. 그 점에는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어졌다. 당장 이 글의 사례로써 사용한 Chatgpt의 사료 번역, 교육 설계 능력만 보더라도 그렇다. 원래 인공지능을 상당 부분 비판하기 위해 쓰려는 글이었는데, 인정하는 글이 되어버렸다.
다만, 필자의 생각이 아직 확고한 전통적(보수적) 영역이 있다. 필자가 전통적 역사학을 더 많이 애정한다는 점, 전통적 역사학의 질적 특성을 새로운 역사학이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점, 새로운 역사학을 '전통적 역사학의 특성을 일부 버리는 방식으로 교육'하는 걸 반대한다는 점, 전통적 역사학을 준거로 해서 새로운 역사학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체계적인 교육을 지향한다는 점이 그렇다. 다음 장에서 밝힐 인공지능과 역사학의 결합 과정에서 부딪치는 문제, 양자의 결합 과정에서 균형이 필요한 이유의 논거이기도 하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갈망하는 역사학도의 이야기를 다음 장에서도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