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기의 눈으로 본 인공지능: 더 논의되어야 할 것들

교육으로 가는 역사학 내비게이션 5장

by 샤를마뉴

이 장에서는 인공지능과 역사학, 역사교육의 접목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짚어본다. 지난 장에서는 '역사가, 역사교육가'로서의 Chatgpt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Chatgpt는 사료 번역 및 역사교육 설계 방면에서 어느 정도 능력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Chatgpt 그 자체는 이공계적 방법으로 탄생된 인공지능이지만, 사람의 의지가 개입되면 인문적 방법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그러므로 인공지능과 인문학의 접목도 모색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려면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새로운 요소를 환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등의 이공계적 요소가 결합된 인문학, 디지털 인문학(역사학)도 그 대상이다. 지난 장의 말미에서 밝혔듯이, 필자는 이 새로운 요소보다는 전통적 요소를 더 따르는 사람이다.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생기지 않는 이상, 새로운 요소를 부분적으로는 받아들이겠지만 그것으로 전통적 요소를 완전히 대체할 생각은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필자 개인적인 경험도 있지만,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들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후자로 대표되는 것은 AI 교과서 도입, Chatgpt가 지브리 화풍으로 묘사한 그림을 두고 생기는 저작권 문제 등이다. 이는 본론에서도 다룰 주제이다. 인공지능을 배척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에만 주목하는 태도이다. 새로운 요소를 '현지화'하지 않고 급진적으로 도입하면 도리어 부작용을 유발한다. 이 글은 'AI에 대한 환상에 젖은 사람, 사회 분위기'에 경고하려는 글이다.

반론을 제시하려면 충분한 근거가 필요하다. 필자 개인적 경험도 반론의 근거로 삼을 것이지만, 그것만을 근거로 하지는 않겠다. 책, 신문 기사, 여론도 근거로 활용하여 반론의 타당성을 높이고자 한다. 주지할 것은 이 반론이 절대적으로 옳은 주장은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의식의 구체화로, '인공지능 문명사회에서 이런 문제도 발생할 수 있겠구나.'라는 경각심을 주고, '더 좋은 방향의 인공지능 문명사회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던지게끔 하는 게 반론 제기의 주요 목적이다.


1. 변화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경험적 비판

역사적으로 혁명은 여러 차례 있어 왔다. 혁명이 성공하면, 그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현대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혁명은 영국의 산업 혁명과 프랑스 혁명으로 꼽을 수 있다. 전자는 경제적 측면에서, 후자는 사회적 측면에서 더 이상 반동(反動)하지 못하는 변화를 불러왔다. 기업은 필연적으로 대량 생산 체제를 가동해야 하고, 국가는 민주주의라는 이념에 기초하여 입법, 사법, 행정부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리고 이를 당연하게 인식한다. 성공한 혁명은 유산이 되어 '당연하다'라는 인식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역사는 결과론적으로만 바라보면 안 된다. 당시의 관점(사고, 인식)으로 그 당시를 바라봐야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산업 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결과론적으로는 성공한 혁명이다. 하지만 과정으로 봤을 때는 시행착오를 겪은 것도 많았다. 산업 혁명의 이면에는 착취하는 자본가와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있었고, 프랑스 혁명의 이면에는 기나긴 정치적 혼란과 피의 숙청이 있었다. 이 이면은 보완되어야만 했다. 전자의 이면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률의 마련으로, 후자의 이면은 혁명 정신을 반영한 안정적인 공화정의 정착으로 보완되었다. 새로움을 꾀하는 변화는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고, 보완도 필요하다는 역사적 교훈이다. 변화는 일방향적이지 않고, 다발적이지만 '완벽히' 동시적이지도 않다. 지금의 세상도 수없는 변화의 결과로 만들어졌고,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이 일어나듯이. 변화의 결과만을 보면 안 되는 이유이다.

지금 이 순간, 인공지능 혁명은 어떤 단계에 있을까? 사람마다 정의하는 게 제각기 다르겠지만, 과도기에 있다는 건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실체가 확실히 나타났고 능력 역시 갖췄지만, 아직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지 않은 그런 단계이겠다. 인공지능을 잘 다루면 여러 이점을 누릴 수 있지만, 인공지능을 전혀 모르고 살더라도 불이익이 딱히 생기지 않는다. 이렇듯 과도기는 변화와 현상 유지가 공존하는 시기이다. 과도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모습이 나타난다. 인공지능이 가져온 변화에 적극적으로 몰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조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전자의 사람들이 각광받겠지만,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는 후자의 사람들이 살아왔던 방식을 존중하고, 변화에 천천히 적응하게 해줬으면 한다.

필자가 너무 보수적인 게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맞다. 필자는 모험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게 인공지능 혁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을 무조건 못 믿을 존재로 여기지는 않는다.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교육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필자는, 인공지능을 수용하되 '인문학도에게 최적화된 인공지능은 무엇인지', '인문학도를 대상으로 인공지능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중한 고민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급진적, 일방향적, 무체계적 교육 방식이 강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문제점을 고발하면서 필자가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밝히겠다.

필자 대학 사학과에서는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적극적으로 실험에 옮겼다. 말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자는 의도는 이해된다. 그런데 그 의도가 올바르게 이행되었고, 실질적인 효과를 거뒀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사학과에서 디지털 인문학을 뿌리내리려는 목표 달성에서 절차적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로, 전공 교과목의 축소이다. 디지털 인문학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기존에 잘 운영되던 전공 교과목의 자리를 뺏어버렸다.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 교과목을 선택해서 들을 권리가 침해되고, 탄탄하고 다양성 있는 전공 커리큘럼이 훼손되었다. 둘째로, 연결성 부족이다. 기존에 운영되던 전공 교과목과 디지털 인문학 계열의 전공 교과목 간의 교육 목표, 수업 방식 등에서 엇박자가 나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셋째로, 체계가 잡히지 않은 교육이다. 인문학도에게 코딩, 프로그래밍 등을 교육해 이과적 역량을 기르는 건 좋지만, 공학도처럼 능수능란하지 않기에 '전통적 역사학과 어떻게 결합하고, 어떻게 컴퓨팅해야 하는가?'에서 애먹기 마련이다. 도리어 역사학 공부에 소홀해지고 부담을 안겨주는 결과를 불러왔다. 새로운 화두를 실험에 옮긴 게 과연 옳은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의문이 계속 풀리지 않다가, 한 교육 모델이 이를 꽤 해소시켰다. 들을 전공 교과목이 많이 없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데이터인문개론]이라는 교과목을 수강했었다. 이 교과목을 맡은 교수님은 모범적인 교육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셨다. 교과목명만 보면 첫 주부터 코딩, 프로그래밍 등을 실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을 디지털 인문학과 관련한 논문 등의 자료들을 읽고 토론하는 것에 할애하였다. 이는 글을 '직업처럼' 다루는 인문학 고유의 특성을 지키면서도, 디지털 인문학의 개념과 실체를 이해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 후 이공계적 지식이 없어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컴퓨팅 도구들을 다루며, 디지털 인문학과 관련한 기초적인 도구 능력을 습득하고, 프로젝트를 설계하였다. 그렇게 한 학기를 끝내고 나니 디지털 인문학을 조금 더 호의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교육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체감하였다.

지금까지 변화(혁명)에 대한 간략한 견해, 개인적 경험을 풀었다.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을 거라 생각한다. 결과론적으로 성공한 변화라도, 과정에는 여러 문제점을 겪을 수 있다는 점, 과도기에는 변화와 현상 유지가 어색하게 공존하여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제각각인 점,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화를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변화의 시작을 알렸고, 인공지능의 발전, 인공지능에 의한 전 분야의 재편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시점에 그 변화가 완성될 것이다. 과도기에 있는 지금 인공지능의 장점은 취해야겠지만, 인공지능으로의 종속을 막는 요소 또한 지켜야 한다. 교육에게 주어진 책무는 변화와 전통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제 필자의 견해를 객관화, 구체화하기 위해 더 큰 주제로 넘어가겠다.


필자는 이전에 한 차례 교육이 인식을 좌우하는 중요성을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목 기피 현상이라는 사례로 다룬 적이 있다. 참고하면 좋겠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3


2. 인공지능 대세는 맞지만, 인공지능에 의한 대체는 멀었다

인공지능은 전 세계적으로 대세이다. 대세를 거스르기는 힘든 법이다. 유행에 잘 따르지 않는 필자마저도, 인공지능의 변화만큼은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인공지능이 대세로써 현재와 미래를 크게 바꾸는 것이 맞다면, 이것이 진리가 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기존의 것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필자의 대답은 'No.'이다. 인공지능 문명사회가 도래하더라도, 오래도록 바뀌지 않을 요소는 상당 부분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급진적인 변화에 제동을 거는 근거이기도 하다. 인간으로서 비판적 사고력을 가지고 있다면, '인공지능이 모든 걸 바꿀 것이다. 빠르게 편승하라.'는 선전에 무작정 따르지 않아야 한다. 선전에는 밝히고 싶지 않은 부분을 숨기고, 밝히고 싶은 부분의 실제 크기를 부풀리는 일종의 트릭이 설계되어 있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우세하지 않으면, 선전이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해 버린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을 '남이 선전한 내용'대로 보지 말고, '내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필자는 인공지능과 관련한 몇 가지 이슈를 소개하여 인공지능(혹은 디지털)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고, 그것이 모든 걸 대체하지 못한다는 점을 밝혀보겠다.


(1) AI 교육 문제 - AI 디지털 교과서의 사례

[각 인용문의 출처는 아래 링크로 대체]

생성형 AI의 가장 심각한 단점인 '환각'(오류)의 문제도 심각하다. 거대언어모형(LLM)을 기반으로 하는 생성형 AI는 '논리'보다 '언어'를 강조하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AIDT가 기초적인 덧셈·뺄셈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외국어를 엉터리로 번역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물건이 세는 단위인 '개'와 동물 '개'를 구분하지 못하는 AIDT도 있다고 한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부모의 반발도 여전하다. 교육부가 자랑하는 '맞춤형 교육'과 '사교육비 절감'이 아무런 설득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교육감까지 나서서 반발하는 교육청도 있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71515


챗봇에 "1보다 1 큰 수가 뭐냐"라고 물으니 "2"라는 정답 대신 "교과서 관련 질문에 제한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숫자 '만'에 대해선 설명을 해주지만 일, 십, 백, 천은 답변을 못 했습니다. 다문화 학생을 위해 문항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기능도 오류가 적지 않았습니다. 레몬이 '몇 개'인지 묻는데 동물 '개'로 표현했고, 몇 칸 이동해야 하는지 묻는 문항에선 소리 나는 대로 옮겼습니다. '알파벳 쓰기'를 배우는 부분에선 정작 글씨를 직접 쓸 수 없고, 키보드에서 알파벳을 눌러야 했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37/0000439696?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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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1.png 해당 기사의 인기 댓글 중 일부.

AI 교과서로 배우는 영어 수업에 대해 학생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터치스크린으로 '톡톡' 누르는 방식이 종이책을 넘기며 공부하는 것보다 단순해서 쉬웠다고 했습니다. …(중략)… 놀이와 같이 재미있게 접근하는 학습 방식에 아이들의 수업 참여도와 집중도도 높은 편이었습니다. 특히 '영어 과목은 어렵다'는 인식을 깨뜨리는 데에 AI 교과서가 효과적이라고 교사와 학부모 모두 입을 모았습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AI 교과서가 이름과는 달리 이미 시중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른 디지털 학습 도구보다도 학습 질이 낮고 제한적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중략)… 이날 공개 수업을 진행한 20년 차 교사 이OO 씨는 "아이들이 각자 진도에 따라 개별화된 학습을 할 수 있는 점에선 아주 좋은 자료"라고 평하면서도 "AI지만 AI 같지 않은 느낌"이라고 짚었습니다.

학부모 박OO 씨는 "AI 교과서로 수업을 진행하고 문제를 푸는 방식은 어느 과목이나 비슷하지만, 수학은 좀 어렵다고 느꼈다. 문제가 조금 복잡해지기 시작하니 아이들이 풀이 과정을 적으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AI 교과서를 '관람'하고 있더라"면서 "수학만은 아날로그적인 방법을 병행해야 할 것 같다. 수학뿐만 아니라 국어 과목도 AI 교과서 적용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6/0011940085?sid=102

여론2.png 해당 기사의 인기 댓글 중 일부.

정부가 추진한 주요 교육정책 중 부정적 평가가 가장 많은 정책은 AI 디지털교과서였다. 디지털기기로 맞춤형 문제 등을 제공하는 AI 디지털교과서는 2023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계획을 발표한 뒤 올해 초 실제 초·중·고 교실에 도입됐다. 응답 교직원의 86.7%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정책에 대해 ‘못했다’고 평가했고, ‘매우 못했다’는 응답도 75.7%에 달해 부정적인 인식이 매우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comment/022/0004030363?sid=102

* 이 기사의 인기 댓글은 정치적 편향의 발언이 많아, 기사 주제에 부합한 반응이 아니어서 기재하지 않음.


AI 교과서 도입이 요즘 교육계에서 뜨거운 감자이다. 정부는 AI 교과서가 미래형 교육의 모델로 믿고 있지만, 교사와 학부모는 택도 없는 소리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불화의 근원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입장이 변화에 대한 태도가 제각각인 과도기의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위에 사진으로 첨부한 인기 댓글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정부는 변화하는 미래에 걸맞게 '종이책 기반 수업'이라는 구시대적 교육 방식의 탈피를 꾀하고자 한 것 같다. 그 의지의 결과물이 AI 교과서이다. 그런데 교육을 지도하는 사람(교사), 교육을 받는 입장(학부모, 학생)에게는 정부의 의지를 당혹스럽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교사는 AI 교과서가 기존의 종이 교과서를 대체할 만큼의 위용을 보이지 않는다 하고, 학부모는 '안 그래도 평상시에 스마트폰에 빠져 사는 아이들을 더 망쳐놓느냐?'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AI 교과서 정책을 공식적으로 폐기한다는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논쟁이 지속될 걸로 전망된다.

AI 교과서 도입을 둘러싼 불화는 또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종이에 기록하고, 그 기록을 읽는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기록하고, 그것을 읽을 수 있다.(이 글 역시 인터넷에서도 쓴 기록이지 않은가?) 인터넷 속의 기록이 정보 접근성을 높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터넷에 친숙할수록, 문해력이 저하된다는 기사, 독서를 심각하게 안 한다는 기사는 심심하면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이 정보 접근성을 높인 점과 인간의 문해력은 별개라는 증거이다. 인간에게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문해력은 '노력을 들여 텍스트를 읽는 것'으로 얻어질 것이다. 유튜브 영상도 길어지면 넘겨서 보는 시대에, 인터넷에 쓰인 글을 노력을 들여 읽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아직 인공지능의 발전 양상이 과도기에 있는 이상, 인공지능이 방대한 분량의 정보를 요약해 주더라도, 정보의 정확성과 활용 여부는 인간이 직접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인터넷과 문해력은 별개라는 '기존까지 당연히 여겨온 명제,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울 명제'가 지배하는 과도기의 사람들이 AI 교과서를 반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교함을 요구하는 교과서에 아직 허술한 점이 많은 AI를 접목한 게 옳은지도 따져봐야 한다. 교과서를 집필할 때는 많은 고민에 부딪히게 된다. 어떻게 학생의 눈높이에 맞게 본문을 서술할지, 어떻게 시각 자료를 선별하고 배치할지, 어떻게 핵심 용어를 선정할지, 어떻게 교육과정에 부합시킬지 등 수많은 고민에 봉착하게 되고, 이를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정교한 교과서가 만들어진다. 교육은 복합적이고 정교하기에 어려운 분야이다. 아직 발전해야 할 지점이 많은 AI에 교육의 전권을 내어주는 건 시기상조인 듯하다. 첫 번째 기사와 두 번째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교육 지도를 위한 기초적인 부분부터 오류가 일어나는 실정이다. AI를 도구로 활용하여 교육과 협업하는 건 가능하지만, AI가 교육계 직업을 완전히 대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AI는 기술적으로는 정교하지만, 교육적으로는 아직 정교하지 않다.

그러므로 AI와 교육의 결합은 초보적인 단계부터 차근차근 실험해야 한다. 지난 장에서도 살펴봤듯이, 현재의 AI는 당장 수업에서 써먹을 수 있는 교안을 제작해낸다. 교육가가 될 자질은 있다는 뜻이다. 다만, 잠재력이 완전히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상태에서 교육의 중추를 담당하는 교과서 제작과 노력을 들여야만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인간의 문해력을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건 아직 무리가 있다. 더불어 과도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설득시키지도 못한다. AI가 교육 방면으로 정교하게 발전하고, 교육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더 세심히 고민한 교육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할 방편이다.


(2) AI 저작권 문제 - 지브리풍을 구현하는 생성형 AI의 사례

지브리를 설립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2016년 일본 엔에이치케이(NHK)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인공지능 기술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에 대해 “삶에 대한 모독”이라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이 기술을 내 작업에 쓰고 싶지 않다”라고 선을 그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739064

여론3.png 해당 기사의 인기 댓글 중 일부.

열풍과 동시에 저작권 침해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AP통신에 따르면 로펌 프라이어 캐시먼의 조시 와이겐스버그 파트너 변호사는 "AI 모델이 지브리의 창업자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훈련 데이터로 활용했는지 여부가 법적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라며 "창작자의 동의 절차나 적절한 보상 체계 없이 저작물을 AI 학습에 활용하는 행위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 요소를 내포한다"라고 지적했다.

오픈 AI 측은 "개별 예술가의 고유한 표현 양식 복제는 지양하나, 보다 광범위한 스튜디오 스타일의 활용은 허용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자사의 이미지 생성 AI가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는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5175220?sid=102

여론4.png 해당 기사의 인기 댓글 중 일부.

최근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챗GPT 생성 지브리 화풍 이미지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두고 일본 정부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처음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17일 산케이 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에 따르면 이마이 마사토 입헌민주당 의원은 중의원 내각 위원회에서 "이른바 '지브리피케이션(지브리화)'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고 이것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의가 있는데 현재 정부의 해석으로는 어디까지 적법 범위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나카하라 히로히코 문부과학성 전략관은 "작품의 분위기와 비슷하다는 것만으로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없다"라며 "최종적으로 사법의 판단에 맡긴다"라고 답했다. 또 "단순히 작풍이나 아이디어가 유사할 뿐이라면, 저작권 침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419010011343


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에서 발간하는 법치일보에 따르면 장쑤성 장자강시 인민법원은 최근 AI 모델에 프롬프트만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내용의 판결을 지난달 내렸다. 자신이 제작한 이미지를 도용당해 상업적 손해를 입었다며 한 디자이너가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중국 법원은 AI 활용 창작물에 대한 창작자의 기여가 없다며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5349323?sid=104


AI가 예술가의 자리를 넘보면서 새로운 형태의 저작권 논쟁이 대두되고 있다. 생성형 AI로 대표되는 Chatgpt에 지브리 화풍의 그림을 그리는 기능이 추가되면서 그 논쟁이 공론화되었다. 지브리를 설립한 원작자는 이런 상황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Chatgpt에게 '지브리 화풍의 그림을 그려줘.'라고 부탁하면 그런 그림을 생성해 준다. 원작자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된다. 원작자의 관점에서는 독창성과 노력 없이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자신만의 창작 세계', '자신만의 화풍'을 AI가 한순간에 습득하여 뺏은 거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한편으론, 단순히 스타일만 흉내 낸 것은 저작권 침해라 볼 수 없다는 판결도 나온 상황이다. AI를 둘러싼 저작권 논쟁을 두고 상충된 의견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AI 저작권에 관한 명시적인 기준, 합의 도출이 불가피해졌다.

이 논쟁에서 상충되는 의견들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 나름 일리가 있다. AI가 인간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입장은 '인간의 노력을 중시하는 관점'을 대변한 것이다. 창작은 인간의 독창적인 정신세계를 현실화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창작으로 인한 결과물은 독창성과 고유성이 있으며, 이를 보증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여기서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비롯된 것이다. 현재 AI에는 공식적으로 '저작권자'라는 자격이 부여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인간이 AI를 저작권 침해를 면피하는 도구로는 활용할 수 있다. 두 번째 기사의 내용을 보면, AI가 어떤 이미지를 토대로 학습하여 지브리 화풍을 모방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 점이 AI를 저작권 침해를 면피하는 도구로 활용한 게 아닐지 의심이 되는 지점이다.

한편, 화풍을 '-ism'의 관점으로 보면 저작권 침해라 보기에도 애매하다. 세 번째, 네 번째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AI가 어떤 화풍, 디자인을 흉내만 낸 것은 법리적으로 저작권 침해는 아니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런 선례는 향후 인간과 AI 간의 저작권 논쟁을 둘러싼 법정 재판들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ism을 특별히 제한하지는 않았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 문화는 헬레니즘(Hellenism, 그리스'풍')으로 전파되어 로마 제국에게까지 영향을 주었으며, 예술도 여러 사조가 출현하며 발전되어 왔다. -ism은 'Original'을 완벽히 베낀 게 아니라(Copy), 일부 특성을 차용해 재해석하고 하나의 유행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도리어 헬레니즘의 사례처럼, -ism이 Original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순기능을 낳기도 했다. 그러므로 Original의 권위만 보장되면 -ism에는 제한을 가하지 않은 게 지금까지의 룰이었다. 결국 AI를 둘러싼 저작권 논쟁은 기존에 '당연하다.'라고 여겨진 두 명제가 충돌하면서 빚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 문제는 AI를 저작권자로 인정하는지의 여부, AI의 창작물을 Original의 Copy인지 -ism으로 보는지의 여부에 따라 해결 방향이 달라질 것이다. 창작과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과도기에 놓였다. 미래에는 창작과 저작권이 '온전히 인간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따라서 대립과 논쟁이 불가피하다. 지브리 논쟁은 그 서막일 뿐이다.


(3) AI와 역사학, 역사교육 접목 문제 - 디지털 인문학의 사례

다시 AI와 역사학, 역사교육의 관계로 돌아가보자. 디지털 인문학은 어떻게 교육되어야 할까? 그에 관한 아이디어를 이전에도 다룬 바 있는 공공역사를 다룬 책에서 얻어볼 수 있다. 책에서는 메타버스, 생성형 AI의 특징을 고찰하고 이를 역사학과 결합한 사례, 유의할 점을 소개하였다. 소개한 사례로 미뤄봤을 때 디지털, AI는 역사학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주는 건 분명하다. 한편, AI와 역사학을 결합할 때의 유의점으로 봤을 때는 전통적 역사학과 디지털 인문학이 서로 균형을 이뤄야 함을 알 수 있다.

[메타버스와 역사학의 결합 사례]
- (주)벤타브이알의 석굴암 메타버스: 신라의 역사가 담긴 문화유산인 석굴암을 메타버스(가상공간)의 형태로 구현함. 메타버스에 접속한 관람자는 석굴암을 돌아다니며, AI로 구현된 석굴암의 조성자 김대성을 만나볼 수 있음.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메타버스의 특성을 통해 역사 학습의 생동감을 부여할 수 있음.

[메타버스의 유의점]
- 메타버스를 가동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전자 기기) 등이 '편안한 느낌'을 주지 못함. 디스플레이의 무게가 무거워 장시간 착용이 어렵고, 가상공간도 디지털 화면으로 구축되는 특성상 시각적 피로를 유발함.

[AI와 역사학의 결합 사례]
- 디지털 휴먼(Digital Human)화된 혜초: 왕오천축국전(신라 승려 혜초가 천축국(인도)을 다녀온 뒤 적은 기행문)에 수록된 한자 5,000 여자를 바탕으로 빅데이터를 구성한 뒤, AI를 접목하여 혜초를 디지털 휴먼으로 구현함. 온라인상에 혜초 전시관을 개관해 방문자들이 혜초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음. 방문자는 역사로만 전해지는 과거의 인물과 소통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음.

[AI와 역사학의 결합에서의 유의점]
- 다른 역사 인물을 디지털 휴먼으로 구축할 때, 역사적 공백을 AI가 메꿀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함. 예를 들어, 비교적 자료가 많이 남아있는 조선 시대의 인물은 고증에 충실하면서 디지털 휴먼으로 구현시킬 수 있지만, 자료가 희박한 고대의 인물은 디지털 휴먼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역사 왜곡의 여지가 있음.

- 공공역사문화연구소, 『공공역사를 실천 중입니다』, 푸른역사, 2023, pp.173-180, 187-188.

디지털 인문학의 교육 방향은 세 가지의 큰 축을 이루는 게 좋을 것 같다. 단계적 교육, 체험적 교육, 균형적 교육이 그 축이다.

단계적 교육은 디지털 인문학을 초중등 교육과정과 연계하는 것이다. 인문학의 입지가 썩 좋지 않은 현실에서 디지털 인문학 교육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디지털 인문학의 확산과 정착을 원한다면 고려해야 할 목표이다. 필자 세대의 학생들은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개념조차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 개념부터 제대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디지털'이라는 명목으로 인문학도에게 코딩, 프로그래밍을 다짜고짜 하라고 하면, 반갑게 여길 리가 없다. 이렇듯 디지털 인문학은 피교육자에게 아직도 낯설고 모호하다는 인상을 준다. 후속 세대의 학생들에게는 디지털 인문학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아가는 기회를 줬으면 한다. 그러려면, 디지털 인문학을 대학에서만 취급하지 않고, 초중등 교육으로 발을 뻗어야 한다. 디지털 인문학을 외치는 사람들은 교육에도 열려있어야 한다.

체험적 교육은 디지털 인문학의 실제 사례를 최대한 많이 경험시키는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석굴암 메타버스, 혜초 전시관도 사례의 예시이다. 대학생들도 디지털 인문학을 대중과 소통하는 형태로 현실화시킨 사례를 잘 모른다. 낯설고 모호하다는 디지털 인문학의 인식을 깨려면, 눈에 보이는 실제 사례를 사람들에게 환기시키는 것도 하나의 해결 방안이겠다. 디지털 인문학을 초중등 교육과 연계할 때, 체험적 교육을 방법으로 채택하는 걸 고려할 만하다.

균형적 교육은 전통적 인문학의 보존이다. 디지털 인문학이 전통적 인문학의 자리를 빼앗지 않았으면 한다. 디지털 인문학의 진흥을 목표로 전통적 인문학을 축소하는 행위에는 반대한다. 혜초 전시관의 사례에서도 전통적 인문학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혜초를 디지털 휴먼으로 구현하기 전 거친 과정은 왕오천축국전을 '질적으로 해석'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 과정 없이 혜초를 디지털 휴먼으로 구현했다면, '엉성하다'는 비판을 피해 가지 못했을 것이다. 디지털 도구의 활용을 전통적 인문학에 소홀해도 된다는 핑계로 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주객전도이다. '전통적 인문학에 대한 충실하고 정교한 이해에서 수준 높은 AI, 디지털과의 융합이 이루어진다.'라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전통적 인문학의 보존, 강화가 역설적으로 디지털 인문학과 균형을 이루는 방안이다.

이상의 논의로, 인공지능 문명사회가 도래해도 오래도록 바뀌지 않을 요소, 논쟁을 불러일으킬 요소는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변화에 신중해야 한다.


(3)에서 소개한 책의 내용이 더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의 글을 참고하면 좋겠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17


3. 나가며

이 장에서는 인공지능 혁명이 과도기에 있는 지금, 각종 변화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측면에서는 최근 대두된 디지털 인문학을, 사회적 측면에서는 AI 교과서와 AI의 지브리풍 그림 모사를 중심으로 이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발견된 공통점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기존의 것이 재편되는 움직임이 일어나는데, 그 변화에 반대하는 움직임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이 기존의 것을 대체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였다. 과도기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결과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일상 깊숙이 침투하는, 그래서 없어서는 안 되는 '완성기'의 인공지능 혁명으로 이행될 것이다. 변화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과도기는 완성기로 나아가는 중간 피드백과도 같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균형은 변화하자는 움직임과 변화에 신중하며 비판하는 움직임의 수렴으로 만들어진다. 너무 변화만을 추구해도, 너무 현상 유지만을 추구해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정치로 따지면, 보수 성향의 정당과 진보 성향의 정당이 아울러 존재하고 정권 교체가 반복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글 역시 인공지능에 의한 급격한 변화는 반대했지만, 변화를 수용하는 여지는 열어두었다. 또한, 서론에서 밝혔듯 필자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판단은 독자의 몫에 맡긴다. 다만, 교육이 변화와 전통을 연결하는 책무를 수행해야 하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양극단은 교육에 의해 절충되어 균형을 이룰 것이다. 이쯤으로 글을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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