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녹여낸 역사교육 I: 발췌독에서 찾는 해답

교육으로 가는 역사학 내비게이션 7장

by 샤를마뉴

이 장과 다음 장에서는 독서를 통한 역사교육의 구체적, 실질적 방법을 모색해 본다. 독서가 유익한 행위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독서 이외에 해야 할 일이 많거나, 짧고 강한 자극을 주는 온라인 콘텐츠(예: 유튜브 쇼츠)의 유혹에 빠지면, '독서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결국 자발적인 독서는 독서 의지, 독서 기회, 시간이라는 세 요소가 일체되어야 가능하다. 그 일체는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일체를 유도하는 장치가 필요한 셈인데, 그것이 교육이겠다.

독서와 교육은 일체되었을까? 필자 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사실 독서와 교육을 일체하는 게 '좋은 교육'의 한 방법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를 이루기 쉽지 않은 형편이겠다. 필자가 학창 시절이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독서는 '수업 이외의 활동'으로 여겨진다. 독서는 수업의 일부로 간주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수행평가와 같은 명목으로 수업에서 독서를 실시할 수 있다. 그런데 학교 현장의 수업은 '교과목 진도 소화'를 우선적인 원칙으로 삼고, 시간적 제약도 있기 때문에 독서를 수업과 긴밀히 결합하기 어렵다. 독서와 교육의 일체가 잘 이뤄지지 않는 건 수업을 지도하는 교사의 잘못만도, 독서를 싫어하는 학생의 잘못만도 아니다. 구조적 잘못이 존재한다.

독서는 꼭 '통독'의 방법으로 이뤄질 필요는 없다. 통독은 독서 습관이 길들여질 때 그나마 수월한 독서 방법이다. 이 말은 곧, 독서와 교육의 일체를 위해 학생 혹은 교사에게 무작정 '어떤 책들을 통독하세요.'라고 주장하는 건, 오히려 부담을 지우게 한다는 뜻이다. 교육에 효과적인 독서는 '발췌독'이다. 책의 중요한 부분만을 선별해서 읽고 그에 관한 토론만 나눠도, 독서와 교육은 결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부담 또한 없다. 발췌독은 독서의 '영화 예고편'과 같다. 흥미로우면서 핵심적인 내용을 먼저 보여주고, 더 궁금하다면 '알아서 보게끔 하는' 유도의 기능이 확실하다. 독서를 '부담의 대상'으로 느끼지 않을 때 독서와 교육이 일체된다. 발췌독은 이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이상으로 독서와 교육의 일체는 몇 가지의 단계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독서를 부담의 대상이 아닌 흥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고민이 첫째, 독서를 흥미의 수단으로 유도하는 교육 방법 설계가 둘째,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게 셋째이다. 여기에서는 첫 번째 단계를, 다음 장에서는 두 번째 및 세 번째 단계를 짚어보겠다.


1. 독서 여정에서 얻은 깨달음

필자도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독서를 즐겼다가 말았다. 초등학생 시절의 필자는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에 늘 도서관을 갔고, 집에서도 책을 읽었다. 줄글로 된 책은 아니었고, 만화책이었다. 이렇게 독서를 했던 습관이 두 가지 부분에서 영향을 줬다. 첫째, 역사에 대한 관심이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만화책은 대체로 역사 만화책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한국사 인물 사전을 읽고, 그 흥미가 역사 만화책을 섭렵하는 관심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필자를 있게 한 원천이다. 둘째, 국어 실력이다.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때의 필자 국어 시험 점수가 95점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국어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맞은 점수였다. 아마 초등학생 때 독서를 했던 습관이 자연히 국어 실력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었다. 그렇다. 독서했던 초등학생 때는 분명히 필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

중학생 때부터 독서하는 습관이 단절되었다. 원인은 하나, 핸드폰 게임이다. 독서하는 습관이 게임하는 습관으로 대체되었다. 만약 중학생 때도 독서하는 습관을 고수했다면, 학창 시절을 훨씬 더 유의미하게 보냈을 것이다. 그때 열심히 했던 게임은 다 접어버렸고, 남는 것도 없다. 딱 하나 남는 게 있다면, 추억이겠다. 독서하는 습관의 단절은 이내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독서했던 습관만으로 높은 국어 성적을 기록했던 쾌감은 조금만 어려워지면 국어 성적이 미끄러지는 좌절이 되었고,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도 그만큼 좋아한다는 일치는, 역사에 대한 애정을 독서 포트폴리오로 증명할 수 없는 불일치가 되었다. 철없던 중학생 때는 이 좌절과 불일치를 겪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고, 입시를 끝내니 그 부족함이 뼈를 때릴 정도로 아팠다. 독서하는 습관을 단절한 게 후회되었고, 대학에 입학하고 게임하는 습관을 끊어버렸다.

대학 입학 후 독서하는 습관이 곧바로 부활한 건 아니었다. 독서를 하긴 했는데, 시켜서 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인문대학의 수업은 대체로 책 등의 자료를 읽고, 그것을 내 생각과 접목하여 쓰는 방식이다. 그래서 인문대학 학생들은 매 학기 무언가 읽고 글로 써내야 하는 과정을 피할 수 없다. 글쓰기 자체는 필자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읽기였다. 그래도 어찌저찌 다 읽어내고 과제나 발표를 수행하긴 했지만, 꾸준한 읽기 습관을 들여야 함을 깨달았다. 그때가 대학 입학 후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2023년 1월부터 자발적 독서에 도전했다. 당연히 처음이니 내용도 잘 안 들어왔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두세 권만 읽다가 포기하지 않을까?'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동시에 그 무렵, 필자는 학원 집필진으로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첫걸음에서 주어진 과제는 '연습 문제' 만들기였다. 이 과제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아, 문제 자료를 구성하려면 지식이 풍부해야겠구나.'라고. 전공 수업 때 배운 것만으로 이 일을 해내는 데에는 부족했다. 스스로 역사의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경험을 하고, 거기서 얻어낸 지식의 보고를 교육에 녹여내야 성공적인 집필진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독서였다. 그래서 독서하는 습관의 부활은 필자의 의지도 있지만, 일적인 측면도 크게 작용했다. 일을 위해 독서를 한다는 것은, 필자만의 독특한 독서 계기였다.

독서하는 습관의 부활은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필자를 꽃피웠다. 독서로 역사적 지식을 축적해서 교육에 녹여내자는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집필진 2년 차에 접어든 작년의 성과는 성공적이었다. 필자 스스로도 성장의 뿌듯함을 느꼈고, 다른 팀원들 역시 필자의 역량을 나름 인정해 줬다. 이것이 독서로 필자를 외적으로 꽃 피운 일이었다.

사실 그보다는 내적의 꽃피움이 더 중요하다. 집필진 일은 정신적 고됨의 연속이었다. 독서는 집필진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실천한 행위이기도 했지만, 필자 자신을 돌보기 위한 행위이기도 했다. 독서에 온전히 집중하는 동안에는 잡념이 없어지고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이 느낌을 안 순간부터 독서를 '휴식'으로 여기게 되었다. 독서하는 태도의 변화이자, 꺼지지 않는 자발적 독서의 불씨가 된 셈이다. 덤으로 따라온 건 '절제되고 강한 글쓰기'였다.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책을 바라보는 안목이 생긴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문체는 어떠한지, 책의 주장이 된 참고 문헌은 탄탄한지 등이 보인다. 좋은 책들을 읽으면 '느끼고는 있지만 정제하기 어려웠던' 사유를 구체화하고, 탁월한 글쓰기에 관한 모티브를 얻을 수 있다. 이를 보여주는 나름의 증거(?)가 역사와 교육에 관한 필자의 글쓰기이다. 만약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글쓰기에 엄두조차 못 냈을 거고, 했더라도 단발성에 그쳤을 것이다. 이것이 독서로 필자를 내적으로 꽃피운 일이었다.

필자의 독서 여정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독서를 어떤 대상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실천 여부가 달라진다. 부담의 대상이라면 끝없기 읽기 싫어지고,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대상/휴식의 대상 같이 의미를 두면 알아서 읽게 된다. 결국 독서와 교육이 일체되는 첫걸음은 '사람의 태도(인식)'이다.

KakaoTalk_20250521_140451891.jpg 필자의 실제 독서 내역이다. 위 2컷은 2023년 독서(총 30권), 아래 왼쪽 컷은 2024년 독서(총 50권), 아래 오른쪽 컷은 2025년 5월 기준 독서(총 62권)이다.

2. 발췌독, 교육적 독서의 방법

통독이 독서의 정석이긴 하다. 그런데 통독은 쉽지 않다. 독서를 안 하다가 하려는 사람에게 10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읽으라 하면, 다시는 독서를 안 할지도 모르겠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200~300페이지의 비교적 적은 분량의 책, 문체가 쉬운 책을 읽으면서 독서하는 습관의 걸음마를 뗐다. 디지털 매체에 물든 사람들을 아날로그적인 독서의 영역으로 끌어내려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고민이 필요하다. 독서 교육의 목표를 무조건 통독으로 삼는 건 피교육자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발췌독은 독서의 효능을 높이는 방법이다. 독서를 하려는 피교육자에게 특히 효과적이다. 독서를 부담의 대상으로 보지 않게 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독서 걸음마를 떼려는 사람에게는, 읽는 것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고, 그러면서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주는 게 필요하다. 그들에게 독서가 부담스러운 건, 시간을 들여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행위가 지루하고 버겁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므로 독서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는 게 필요하다. 교육자는 이를 고려해야 한다.

교육자에게도 발췌독은 필요하다. 이 세상에 나온 도서들은 끝이 없다. 그 끝없는 도서를 다 읽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교육자는 발췌독을 활용한 교육을 위해, 개별적인 책들을 통독할 수는 있어도 전체 책들을 통독할 수는 없는 셈이다. 설령 교육자가 개인적인 열정으로 많은 책들을 읽어보겠다 해도,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집단의 힘, 제도의 힘을 빌려 해결되어야 할 지점이다. 조선 시대에 시행된 사가독서제처럼, 교육자에게 여유로운 독서 활동을 보장하는 여건이 필요하다. 독서와 교육의 일체는 단순히 피교육자의 눈높이에 맞춘다고 되지 않는다.

대사헌 이예가 아뢰기를, "문사를 선발하여 예문관의 직을 제수한 것은 문학(文學)을 전공시키려 함인데, 요즈음 예문관 직을 받은 자는 제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부서로 옮겨 가기 바쁘니, 그래가지고서야
어느 겨를에 학업을 연마하겠습니까? 바라건대 다시 연소한 자를 선발해서, 세종 때의 집현전의 예에 따라 예문관에만 오래 있게 해서, 다른 관직은 제수하지 못하게 하고 차례로 승진(陞進)시키는 한편, 때로는 사가독서(賜暇讀書)케 하여 10여 년을 여유 있게 학문을 연마시킨다면(원문에서는 우유(優游)로 표현.) 박학 능문의 학자가 배출될 것입니다."

* 사가독서제: 조선 시대 왕이 문신 중에서 유능한 자를 선발하여 일정 기간 동안 휴가를 주고 독서하도록 하는 제도, 1426년(세종 8년)에 최초로 실시되었다.

- 성종실록 41권, 성종 5년(1474) 4월 8일 임술 2번째 기사 -

독서와 역사교육이 일체될 때도 발췌독이 불가피하다. 세계사 교과목을 가르칠 때, 독서를 교육 방법으로 활용하겠다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그러면 교육자는 막막해질 것이다. 세계사 교과목은 동아시아, 인도, 서아시아, 서양의 역사를 모두 다루는데 이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도서 목록을 구성하기도 어렵고, 다 읽기에도 벅차다. 특히 인도, 서아시아 역사를 다룬 서적은 우리나라에서 몇 되지 않는다. 한 분야를 더 전문적으로 파고들려면, 읽을거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역사 과목의 저주받은(?) 특성으로, 교육자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최근 나오는 역사 도서들은 읽기 쉽고, 학술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서와 역사교육의 일체가 어려운 문제는 점차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자 개인적으로 신간 역사 도서 현황에 열려있는 자세를 지녀야 되겠다.


위 문단과 같은 고민은 역사학자에게도 똑같은 번뇌를 낳는데, 내친김에 관련 내용을 아래에 소개하겠다.

나는 일찍이 대학 학부와 대학원 시절에 토인비(Arnold J. Toynbee)의 대저 『역사의 연구』라든가 이븐 할둔(Ibn Khaldun)의 『역사서설』 같은 기념비적 저서를 그 완역본이 아니라 서머벨(D.C. Somervell)과 로젠탈(F. Rosenthal)의 축약본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두 사람의 축약본을 읽어보면 나름대로 충실하게 원서의 맛과 내용을 전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만약 이 두 대저를 처음부터 완역본으로 읽으려고 시도했다면, 그 방대한 분량은 두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거기에 담긴 수많은 디테일과 전문적인 설명으로 인해 결국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축약본은 일반 교양 독서인에게는 원서의 근사치를 맛보게 해주는 동시에, 초보 전문가들에게는 추후에 원서 전체를 읽기 위한 일종의 징검다리 같은 역할을 해준다. 이 『몽골제국 연대기』도 그러한 역할과 가치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라시드 앗 딘, 『몽골제국 연대기』, 김호동 역, 사계절, 2024, 역자 서문(pp.9-10).

결론적으로 발췌독을 방법론으로 한 교육 방안은 두 가지의 관점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피교육자의 관점, 교육자의 관점이 그것이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피교육자의 관점을 고려한 '마이크로 읽기', 교육자의 관점을 고려한 '발췌독 아카이브'를 제안해 본다.

마이크로 읽기는 읽기 시간을 '10~30분'으로 제한하여 피교육자가 독서를 부담의 대상으로 보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신세대는 온라인상의 '짧고 굵은 정보'를 추구한다. 반면 독서는 아날로그적이고,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신세대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마이크로 읽기는 독서를 신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일종의 '미래형 독서 방법'이다.

발췌독 아카이브는 교육자가 독서를 활용한 교육을 구성할 때 편리함을 담보해 주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실현하는 것은 사람 하기 나름인데, 분명한 건 '아카이브'다운 특성을 갖춰야 한다. 아카이브는 너무 간략해서도 너무 장황해서도 안 되고, '가치 있는 내용'을 담는 특성이 있어야 한다. 질적으로 훌륭한 도서인데, 내용이 너무 방대하여 읽기 어려우면 도서의 제 역할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서 봤던 『몽골제국 연대기』서문에서 그 사실을 확인했다. 따라서 본래 도서의 장점은 보존하되, 분량을 줄인 '축약본 도서' 역시 하나의 저작물로 인정받는다. 방대한 양의 도서를 살펴보고, 축약 과정에서 핵심을 살리며 접근성을 높인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교육자는 '발췌된 학술(학문)'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발췌독 아카이브를 제안해 본 것이다. 시중에 출간된 역사책들의 요점만 뽑아 하나의 책 혹은 아카이브로 정리하면, 그 역시 '단순 요약'이 아니라 책들의 접근성을 높인 점에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본래 도서의 축약본 역시 도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 시대에 편찬한 『고려사(高麗史)』는 고려 시대의 역사를 다룬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이다. 『고려사』를 다시 한번 축약한 게『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이다. 『고려사절요』는 『고려사』를 단순히 요약한 게 아니고, 다른 자료를 참고해서 요약했기 때문에 이 역시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편년체는 『춘추좌씨전』에 근본을 두고, 기전체는 사마천의『사기』에서부터 비롯되었는데, 반고의『한서』 이후로는 역사를 기록하는 자들이 모두 사마천의 『사기』를 근본으로 서술하여 누구도 어기지 않았던 것은 그 규모가 크고 넓기에 서술이 두루 갖추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번잡하게 길어서 궁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근심을 면할 수가 없으니, 이것이 사가(史家)들은 편년체와 기전체가 각기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버릴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략)…

세종 장헌대왕께서는 신성한 자질로써 문명의 교화를 밝히시었고, 신 등에게 요속(寮屬)들을 선별하고 관청을 설치하여 편수하라고 명하시면서 이르시기를, “먼저 전체적인 역사를 편수하고, 그 다음에 편년체로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중략)… 이에 다시 세상을 교화시키는 데에 관계되는 사적(事跡)들과 삼가 본보기로 삼을 만한 제도들을 가려 모아서 번잡한 것은 깎아내어 간략하게 하고, 연월일을 표시하여 기록함으로써 상고(詳考)하고 열람하기에 편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 후에야 475년 동안의 32명 왕들의 일이 남김없이 포괄되고, 상세한 내용과 간략한 내용이 모두 기록되니, 사가의 틀(원문에서는 체재(體裁)로 표현.)이 비로소 대강이나마 갖추어진 듯합니다. 비록 문장이 비루하고 속되며 기술한 체계가 정교하지는 않지만, 선행을 권장하고 악행을 징계함에 있어서는 다스리는 법도에 작은 도움이나마 있을 것입니다.

-『고려사절요』를 올리는 전(箋) -

3. 나가며

지금까지 독서와 교육의 결합에 관해 필자의 실제 독서 경험, 발췌독의 특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독서를 '개인적 행위'가 아니라 '교육적 행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고민이 필요하다. 독서를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피교육자에게 어떻게 독서하는 동기를 유발할지, 독서의 유용성을 알고 있지만 여러 현실적 문제에 직면한 교육자에게 어떻게 해법을 제공할지 등이 그렇다. 독서의 끝은 없다. 그만큼 이 세상에 읽을거리는 차고 넘친다는 뜻이다. 망망대해와 같은 독서의 세계에서 핵심을 건져 올리는 노련한 감각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발췌독'이다. 발췌독을 방법론으로 한 교육은 교육자에겐 교육을 준비하는 부담을 덜어주고, 피교육자에겐 독서를 지루하고 의무로 여겨야 하는 부담을 덜어준다. 독서를 교육으로 끌어들이는 것의 시작은 독서를 부담 없이, 즐겁게 여기는 인식의 형성일 것이다.

<교육으로 가는 역사학 내비게이션> 시리즈도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또 후속 시리즈를 내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커졌다. 이번 달은 이 시리즈를 쓰면서 동시에 후속 시리즈를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그 고민이 이제 가닥이 잡혔다. 필자가 그간 읽었던 역사 도서들을 간략하게, 그러면서 핵심적이게 리뷰하는 계획을 얼추 수립했다. 즉, 후속 시리즈의 핵심은 독서인 셈인데, 독서를 주제로 한 이 글을 쓰면서 조금 더 고민에 대한 가닥이 잡혔다. 그 고민의 결과물을 후속 시리즈에서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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