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사, 동아시아 역사의 프리즘

『드디어 만나는 대만사 수업』개관

by 샤를마뉴
『드디어 만나는 대만사 수업』책 표지

책 정보

저자: 우이룽(吳宜蓉)

제목: 『드디어 만나는 대만사 수업』

옮긴이: 박소정

출판사: 현대지성

발행 연도: 2024년

쪽수: 250쪽

가격: 15,210원(교보문고 정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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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개관

역사의 관점은 일방향적입니다. 역사는 '과거에 남긴 것'으로 그때를 추측할 수 있게 하지, 과거로 다시 돌아가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시간적인 측면에서의 일방향성입니다. 일방향성은 시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을 익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필자는 그 말을 역사를 남기는 힘인, '역사 권력'으로 표현해보고자 합니다. 역사 권력의 측면에서도 일방향성이 존재합니다. 유명해져야, 힘(권력)이 있어야 역사에 분명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의 역사는 대개 잊혀집니다.

역사 권력은 지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지리적인 측면으로 볼 때,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의 대부분은 '대륙의 역사'입니다. 땅이 있어야 인류가 사는 발판이 만들어지고, 그 발판에서 역사가 생겨나기까요. 이왕이면 땅의 규모도 커야 좋습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인류가 밟을 땅이 있어야 설명되고,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땅만 있지 않습니다. 땅보다 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바다에 둘러싸인 섬도 있습니다. 바다와 섬 역시 인류가 활동 무대로 삼은 발판이며, 역사가 깃들어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바다는 땅과 다르게 물리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섬은 대륙과 떨어져 있어 고립된 곳으로 취급받습니다. 결국 대륙에 비해 바다와 섬이 역사 권력에서 밀리기 때문에, 역사는 대륙의 역사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중화사상.png 중화사상(中華思想)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정당화하는 정신적 특성이다. [출처: https://m.blog.naver.com/touall/221343397796]

동양사도 역사 권력의 영향을 받아 일방향성을 띕니다. 요즘은 동양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변화되는 추세이지만, 그럼에도 '동양사 = 중국의 역사'로 쉽게 정의내리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대학 학부의 동양사 수업만 보더라도, 중국사를 다루는 수업은 여럿 개설되지만 일본, 북방 유목제국 등의 역사를 다루는 수업은 한두 개 정도 겨우 개설되는 형편입니다. 동양을 '아시아의 관점'으로 더 넓게 바라보면 동남아시아, 인도, 서아시아도 그 범주에 포함되지만, 그곳들의 역사를 다루는 수업은 상위권 대학 외에는 없다고 봐도 됩니다. 그만큼 동양사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고, 역사 권력의 주축을 형성한 증거입니다.

대만(타이완)도 동양사에서 역사 권력에 밀린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 이유를 들자면, 대만이 섬인 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지리적인 측면에서 역사 권력을 형성하기가 불리합니다. 그렇다면 같은 섬인 일본도 역사 권력을 형성하기가 분명히 불리합니다. 그런데 일본과 대만 중 역사에서의 인지도를 비교하면, 전자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두 번째 이유는 '섬들 내에서의 규모, 권력 차이'입니다. 일본은 대만에 비해 섬의 규모가 크고, '하나의 중앙 권력을 형성할' 역량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일본은 근현대에 접어들며, 서구화 정책(메이지 유신)에 성공하고 제국주의적 팽창을 추진해서 중국을 이겨먹기도 했습니다. 반면, 대만은 섬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고 '중국의 부속 도서' 정도로만 인식되었습니다. 즉, 대만만의 강력한 중앙 권력이 형성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만은 동양 역사 무대의 전면에 서지 못했습니다.

어떤 역사가 다른 역사의 역사 권력에 밀렸다고 해서,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에서 밀려난 역사는 권력이 감추는 이면을 서슴없이 보여줘, 역사의 종합적인 상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대만의 역사도 그러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몇 가지 장면을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7세기 중국에서는 한족의 긍지였던 명(明)이 멸망하고, 이민족 왕조인 청(淸)이 들어서게 됩니다. 한족의 긍지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 중 정성공 세력은 타이완으로 건너가 반청 운동을 전개합니다. 일본이 흥기한 20세기에는 한국처럼 식민 지배를 받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는, 중화민국이 중국 공산당 세력에 패배해 대만으로 도망가 정부를 세웁니다. 그리고 여러 주체가 '대만은 내 것'이라고 다투는 와중에, '진짜 주인'인 원주민도 있습니다. 대만은 진짜 주인과 역사 권력에서 밀려난 이들의 각축장이었습니다. 이 각축으로 만든 역사에도 역동성, 고유성, 세계사적 보편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책 표지에 있는 심용환 선생님의 추천사처럼, 대만을 깊이 이해한다는 건 우리 한국과 동아시아를 아는 길입니다. 역사 권력에서 밀려나고, 동양의 주변부처럼 보이는 대만이 알고 보면, '말하지 못했던, 다른 관점으로 보지 못했던' 역사를 보는 열쇠가 된다는 셈입니다. 과연 동양사 = 중국의 역사인지, 대만의 역사는 한국 그리고 동아시아에 무엇을 시사하는지는 세부 내용 소개에서 마저 다루고, 이 글의 핵심을 아우르는 다른 책의 구절을 첨부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역사가는 거대한 권력의 음향장치들을 통해 너무 커져버린 몇몇 사람의 목소리를 적정한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더 나아가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들을 우리 시대가 들을 수 있도록 증폭시키는 작업도 수행해야 한다. 어떤 때는 벙어리 된 자의 소리를 듣기 위해 기록 외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해석할 수 있다.

- 최호근, 『역사 문해력 수업』, 푸른역사, 2023, pp.9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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