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나는 대만사 수업』세부 내용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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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내용 소개
섬은 상황에 따라 고립된 공간이 되기도, 개방된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섬의 고립 및 개방을 결정하는 경우의 수는 다양합니다. 보통 섬의 개방은 '외부인이 도래하며 그 섬이 알려질 때'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섬에서 적극적으로 외부(대륙) 세계와의 연결을 꾀하는 것도 개방입니다. 마찬가지로 외부인이 도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만 섬이 고립되는 게 아닙니다. 섬에서 자체적으로 외부인의 도래를 거부하면 그 또한 고립입니다.
근대의 대만은 외부 세력에 의해 고립되기도, 개방되기도 했습니다. 근대 대만의 개방은 세계사적 흐름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근대 유럽 세계에서 신항로 개척에 성공하면서, 그 영향으로 대만에 유럽의 손길이 뻗어나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대만이라고 지칭되는 섬이 포르모사(Formosa, 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섬을 의미)로 불렸고, 네덜란드와 스페인이 남북에 각각 무역 거점을 뒀던 것이 그 증거입니다. 대만 역사의 시작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그곳에 정권을 수립한 1624년으로 보고 있습니다(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책의 pp.40-54 참고). 이렇게 볼 때 대만 역사는 단순히 동양사의 틀에서만 보면 안 되고, 서양 근대사와 연계해 세계사적 맥락으로 해석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근대 대만의 고립은 중국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16~17세기, 대만이 유럽에 의해 아시아 무역의 각축장이 되었을 때,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명이 쇠퇴하고 만주의 여진이 건국한 후금이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후금은 중원으로의 입성을 노렸고, 결국 1644년에 명의 멸망을 틈타 성공해냅니다. 명의 멸망은 한족에게는 그야말로 '수치'나 다름없었고, 청에 불복하는 움직임(반청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정성공 세력이 그 대표적인 예시로, 대만으로 건너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몰아내고 연평왕국(동녕국)을 세웁니다. 갓 중원을 차지한 청의 입장에서, 반청 세력의 존재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겠죠? 청은 천계령이라는 해안 봉쇄 명령을 내려 정성공 세력이 점거한 대만을 '고립'시킵니다. 정성공 세력이 몰락한 뒤에는 대만을 청의 영토로 편입시키고, 한족의 이주를 엄격히 제한합니다(책의 pp.74-75). 대만의 입장에서 유럽과 대륙의 중국은 똑같은 외부 세력이지만, 전자와 달리 후자는 고립의 역할을 행한 것입니다.
외부 세력이 섬을 개방 및 고립시키는 여부는 '관점 차이'에서 주로 기인합니다. 유럽에게 대만은 '아시아 무역 거점'이었기에 개방의 대상으로 여겼고, 청에게 대만은 '반란 세력의 거점'이었기에 고립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한편, 이 관점 차이가 관점을 다각화하는 역할도 합니다. 청에 의한 대만의 고립이, 대만의 역사를 '동양사, 동아시아 관계사'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틀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이후 동아시아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제국주의적 야욕을 품은 서양 열강은 전쟁 혹은 이권 쟁취의 방법으로 동아시아를 침탈합니다. 이 침탈은 동아시아 어느 국가를 가리지 않고 겪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 내부에서도 밥그릇 싸움이 일어납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에 성공하고 일본 우위의 국제질서를 꿈꿨기 때문입니다. 이 꿈은 중국을 굴복시키고 한국을 식민 지배하는 실천으로 옮겨집니다. 대만도 이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식민 지배의 아픔은 대만의 역사가 한국사와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요소입니다. 대만은 청일 전쟁(1894~ 1895) 이후 일본의 식민지로 편입됩니다. 한국보다 앞서서 식민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 대만의 식민 지배를 논하기 전, 한국의 식민 지배 과정을 먼저 생각해봅시다. 일본은 1910년대에 한국을 강압적으로 통치하고, 이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1920년대에 잠시 유화적인 태도(문화 통치)를 취했다가, 1930년대부터 국제 정세가 험악해지자 한국의 민족성을 말살시켜 '일본의 편의'를 위해 써먹으려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편의는 '군대 동원'입니다. 대만 또한 한국과 비슷한 식민 지배 과정을 겪습니다. 책에서는 일본이 대만의 정체성을 교육적으로 어떻게 없애려고 했는지를 자세히 다뤘는데, 그 내용이 한국의 민족 말살 정책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대만의 역사는 한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어(일본어) 과목 시수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대만인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일본의 강한 의지를 나타냅니다. 대만 사람들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을까요? 당시 학부모는 일본어를 배우는 데 상당한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운동회에는 일본을 향한 충성심과 동질감, 애국정신을 대만 사람들에게 주입하고 군국주의의 영예와 질서를 끊임없이 홍보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 우이룽, 『드디어 만나는 대만사 수업』, 박소정 옮김, 현대지성, 2024, pp.162, 165.
필자는 이 책을 2025년 2월에 읽었습니다. 2025년 초의 대한민국은 정말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혼란을 일으킨 원인은 2024년 12월 3일에 선포한 비상계엄 때문이었습니다. 이로써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 국민은 계엄령을 '구시대적, 군부 정권 시절 관습'으로 치부하지 않고, '생생한 기억'으로 갖고 가게 되었습니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계엄령 선포, 이것이 이 책을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시사책'이 되는 이유를 만들어줍니다.
현대 대만의 역사는 계엄령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현재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교과서에서도 대만의 계엄령을 필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교과서 본문에 한두 줄만 언급되어 '대만에는 계엄령이 내려졌다.' 이 사실만 기억하게 하는 정도입니다. 필자도 그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계엄령이 내려졌고, 대만의 역사를 자세히 다룬 이 책을 보면서 '대만의 계엄령이 그냥 가볍게 넘어갈 사건이 아니구나'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설명하는 대만의 계엄 통치는 황당무계 그 자체입니다. 실패, 유랑, 최후 같은 의미의 단어가 담긴 책을 소지하면 중화민국 정부에 대항하는 의도가 있다고 간주했고, 커치화(柯旗化, 1929~2002)라는 사람은, '깃발을 바꾼다'라는 이름의 의미가 불손해 징역 12년형을 구형받기도 했습니다(책의 pp.203, 207). 생각, 표현 하나하나에 조심해야 됐던 대만의 계엄령은 1987년까지 40여 년간 지속되다가, 민주화의 물결을 맞이했습니다. 계엄령은 '예민한, 하지만 중요한' 현대 대만 역사의 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군부 정권이 예민하지만 중요한 주제임을 생각하면, 참으로 양국 현대사가 비슷합니다.
만약 이 책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전에 읽었다면, 그저 '한국이나 대만이나 현대사에 서슬퍼런 구석이 있었구나'라고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군부 정권 시절 몇 차례 계엄령이 내려졌고, 무고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를 이룩하고 30여 년이 넘은 시점에서 계엄령은, 군부 정권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확 와닿지는 않습니다. 그러다가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로, 젊은 세대에게까지 계엄령이 확 와닿게 되었고, 현재 대만도 대륙의 중국과 긴장 관계에 놓여있는 상황입니다. 대륙의 중국이 '하나의 중국'을 명분으로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북한과 대립하고 있죠. 대만과 한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운명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대만의 역사는 복잡다단합니다. 여러 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그 관계 하나하나를 인지하면서 대만 역사의 매듭을 풀어나가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저자는 역사교육의 방법으로 심오한 대만사를 알기 쉽게 풀어냈습니다. 저자는 가오슝사범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고, 중학교 역사 교사로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역사교육에서는 '내러티브(Narrative)'를 중요히 여기는데, 그것의 장점이 이 책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책에서 다루는 대만의 역사가 단순 사실 나열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 매끄럽게 이어져 이해가 쉽습니다. 그러면서도 내용의 깊이가 간과되지 않아 얻어갈 지식 또한 많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대만의 역사를 낯설어하고 잘 교육하지 않는 형편을 생각하면, 책의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 흥미로움과 신선함이 배가될 것입니다. 대만의 역사를 통해 한국, 동아시아, 서양(근대사)을 두루 보는 경험을 독자 여러분이 꼭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