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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직장인 May 24. 2020

사무실에 울려 퍼지는 '닭 삑삑이' 울음소리

닭 삑삑이
집에 굴러다니는 '닭 삑삑이'
PVC 가소재로 만들어진 닭 인형이다. 인상 깊은 생김새와 누르면 특유의 바람 빠지는 소리로 뭔가 많이 억울한 듯한  닭소리와 유사한 울음소리가 나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이 닭 인형은 출신이 불분명한 관계로 정식적인 명칭을 찾아보기 힘든 데다 파는 업체마다 이 인형에 사용되는 이름이 가지각색인 만큼 사람들한테 불리는 이름도 가지각색인데, 해당 문서의 제목으로 지정한 닭 삑삑이에서부터 런웨이 닭, 엽기 노란 닭 그리고 소리 나는 닭 인형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편이다 <출처: 나무위키>


'닭 삑삑이'는 가끔은 TV에도 개그 소재로 쓰인 적도 있고, 다이소라던지 장난감 파는 곳에 서면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장난감이다. 11개월 된 둘째 아이는 '닭 삑삑이' 소리가 무서워 울기도 하는데 첫째가 동생을 놀릴 때면 '닭 삑삑이'들고 겁주기도 한다.

'닭 삑삑이'가 무서운 아들


이 닭 삑삑이는 주로 집에서 장난감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집 밖을 벗어나면 찾아보기 힘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출근 후 사무실에서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데 5분에 한번 꼴로 '닭 삑삑이' 소리가 들렸다. 집에서 아이들이 자주 가지고 놀아서 환청이 들리는 거라 생각했고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분 후 또 '꽤~액'하는 소리가 들린다. 집중하려는데 반복적으로 들리는 '닭 삑삑이' 소리에 짜증이 나기도 하고 누가 쓸데없이 장난치는 건 아닌지 궁금해서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내가 바로 명탐정이다.


사무실은 꽤 넓고 칸칸이 파티션이 쳐있어서 몰래 장난치면 쉽게 찾기 어렵지만 호기심이 생겨 범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갑자기 '꽤~액'하는 소리가 들려 범인을 찾고 보니 전기 공사하는 업체분이셨고 그분의 발밑에서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분이 왜 그런 소리를 냈는지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보려는데 사다리를 보니 묻지 않아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분은 수평 사다리에 올라가서 전기 작업을 하시고 계셨다. 일을 하시다 보면 조금씩 자리를 옮겨야 하고 고개를 천정으로 한 체 일을 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떨어져서 크게 다칠 수도 있다. 그런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사다리 양끝에 PVC 인형을 붙여 밟으면 '꽤~액'소리가 나게 만들었다. 그런 간단한 처리로 발밑을 계속 쳐다보지 않고도 사고를 막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사다리


호기롭게 범인을 찾아 나섰지만 조용히 내 자리로 돌아왔다. 단순히 장난감을 붙여 사고를 막은 아이디어가 너무 대단해서 감탄했다. 누군가에게 장난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는 것에 대단한 영감을 얻었다.




입사 초기 수율 개선 교육에서 들었던 얘기가 떠오른다. 출처가 생각나지 않는데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스토리는 머릿속에서 생생하다.

출처: 유니맥스


천문학적인 검사 시스템 vs. 선풍기


어떤 화장품 업체에 고질적인 불량이 있었다. 그것은 자동화 생산 라인에서 내용물 없이 빈상자만 포장되어 고객에게 발송되었고, 그로 인해 클레임을 받는 경우가 생겼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던 중 X-Ray를 이용하면 불량을 검출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X-Ray를 통해 내부에 제품의 존재 유무를 알 수 있기 때문에 회사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서 검사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시스템을 설치하려는 찰나 문제가 해결되고 말았다.


새로 입사한 직원이 집에서 선풍기를 가져와 자동화 라인 옆에 설치한 것이다. 빈 상자는 밀려서 떨어지고 제품이 있는 상자만 컨베이어를 정상적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검사와 빈상자 처리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선풍기 1대로 천문학적인 검사 시스템은 빛도 보지 못했다.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화려하고 그럴듯한 시스템인가, 아니면 수수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근본적인 해결책인가? 세상에 해답이 없는 문제는 너무 많다. 하지만 겉보기에 치중해 본질을 놓치는 일은 없는지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보잘것없는 '닭 삑삑이'가 안전을 보장해주고, 복잡한 시스템 대신 단순한 선풍기가 문제의 해결책이 될 때가 있다. 진정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물질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핵심을 바라보는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하겠다.


#닭삑삑이 #전기공사 #사다리 #선풍기 #엽기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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