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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직장인 Jun 17. 2020

집주인을 멘붕으로 이끈 역대급 세입자들

나는 불행히도 햇수로 4년 동안 원룸 건물을 운영 중이다. 월세를 받아도 이자와 관리비를 제하고 나면 돈이 남지 않고 오히려 내 자비로 충당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4년간 이어지고 있다. 건물을 팔고 싶지만 매수하려는 사람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적자인 원룸을 계속 운영하고 다.


자본주의 밑바닥에서 한 계단 오르기 위해 시작한 임대업이 오히려 나의 숨통을 조으고 있다. 돈도 되지 않는데 돈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진상 세입자들이다. 10세대 이상을 4년간 운영했으니 족히 40명에 가까운 세입자들이 나를 거쳐갔다.


TV와 소설을 보면 집주인의 갑질 얘기가 나오는데 나는 공감이 1도 되지 않는다. 소중한 고객에게 감히 갑질이라니? 나의 경우는 오히려 세입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 나를 슬프게 했던 세입자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1. 촛불 하나로 불낸 세입자


새벽에 화재경보기가 작동했다. 연기가 나긴 했지만 다행히 큰 불은 아니었다. 해당 세대 세입자에게 연락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수차례 전화 시도 후 간신히 전화가 연결되어 불이 난 것 같으니 지금 바로 집에 와달라고 했다. 그런데 1시간 후에 집에 도착할 예정이니 기다리라고 한다. 당장 건물에 화재가 나서 큰일이 날 것 같으니 빨리 오거나 아니면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사정사정한 후 겨우 비밀번호를 받았다.


집에 들어가 보니 가관이다. 세입자는 촛불을 켜서 벽에 붙여두었다. 오랜 외출로 불에 타지 않는 방염 실크벽지가 열에 이기지 못해 탔고 연기가 났다. 다행히 벽지만 탔지만 자칫 건물이 통째로 사라질뻔한 사건이었다. 이 일로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


2. 가습기를 왜 화재경보기 밑에 두니


또 화재경보기가 작동했다. 건물 밖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니 어떤 집도 불 난 곳은 없었다. 화재경보기가 울린 세대를 찾아 확인해보니 가습기를 최대로 틀어놔서 좁은 집안이 수증기 가득했고, 하필 가습기의 위치가 화재경보기 밑이라 화재경보기가 작동했다.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요리 중 프라이팬을 태워 만들어진 연기가 방안의 화재경보기를 울린 경우도 있다. 집이 좁으니 작은 연기에도 화재경보기가 잘 작동한다.


3. 너구리니? 담배냄새 없애는데 6개월, 공실은 기본


계약서에 분명히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기로 했는데 세입자 퇴거 후 찾아간 집에는 벽지와 천장, 모두 누런색 니코틴이 가득했다. 담배냄새가 지독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벽지를 알코올로 수차례 닦아내고, 목초액을 뿌리고, 향초를 6개월 동안 켜 두니 냄새가 겨우 없어졌다. 얼마나 많은 담배를 피웠길래 집이 그 모양이 된 건지 신기하다. 물론 6개월 동안 세입자를 받지 못했고 그동안 공실로 있었다. ㅠ.ㅠ

 


4. 외제차 타면서 6개월 동안 월세는 왜 안 내니


월세가 밀리면 퇴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세입자의 부탁으로 보증금에서 차감하기로 했다. 보증금이 많지 않아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다행히 계약 만료기간이 되어 세입자가 나갔다. 물론 보증금의 70% 이상 사라진 상태였다. 웃긴 것은 세입자의 차가 두 대였는데 한대는 외제차, 한대는 국산 중형차였다. 나보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나도 차를 바꿔야 하나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적자 건물을 운영하기 때문에 좋은 차를 사면 파산이다.


5. 도둑이니? 폐기물 몰래 버리기


엄청 자주 있는 일이다. 원룸 건물에는 관리실이 없다. 폐기물을 버리고자 하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돈을 내고 처리해야 하는 폐기물을 세입자들이 몰래 버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CCTV가 있어서 확인하면 누군지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일일이 찾아서 지적하면 기분 나쁘다고 방 빼고 나갈까 봐 무서워서 말도 못 하고 내 돈으로 처리한다. 다행히 폐기물 처리를 싸게 해주는 곳을 발견해서 자주 이용한다. (웬만한 건 3천 원 밖에 안 한다.)  



6. 벽지 찢기


자주 있는 일이다. 퇴거 시 벽지가 찢어진 것을 보고 벽지 공사 비용 10만 원을 내라고 하니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에게 뭐라고 소리친다. 자기만큼 깨끗하게 산 집이 어디 있냐고 라 한다. 그 집이 역대급으로 더러웠다. 싸우기 싫어서 그냥 가시라고 했다. 물론 내 돈으로 벽지를 갈았다. ㅠ.ㅠ


어떤 집은 허리만큼 오는 개를 키우는 것을 퇴거할 때 알았다. 당연히 개 키우지 않는 게 특약이었다. 그 개가 그 집 몰딩을 다 뜯어먹었다. 물론 퇴거하면서 수리를 했지만 수리가 어설퍼 티가 났다. 그래도 수리해준 게 고마워 그냥 가시라고 했다.



어릴 때 공부 안 한 것 다음으로 후회하는 것이 원룸 건물을 산 것이다. 세입자에게 전화가 오면 식은땀이 난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퇴거하려는가? 화재경보기가 울리나? 다양한 예상 답변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내가 갑질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세입자 전화에 가슴 졸이는 내 모습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위에 언급한 여러 사건들 말고도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한 일들이 지금도 원룸 건물에서 생기고 있다. 올해는 특별한 일 없이 잘 지나갔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세입자 #사고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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