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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직장인 Jun 24. 2020

아빠의 아들, 아들의 아빠

나는 아내와 함께 초등학교 1학년 딸과 돌 된 아들을 키우고 있다. 살면서 마음속 깊이 숨어있던 감정상처를 발견했고, 그 상처의 원인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 상처의 원인은 어릴 적 느꼈던 감정적 결핍이었다. 내 아이들에게는 감정적 결핍을 물려주지 않으려 틈만 나면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또 누군가의 아버지다.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 나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 아버지에게 받은 어릴 적 상처가 지금까지도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버지가 내게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런 원망을 품고 사는 나도 아버지에게 좋은 아들은 아닌 것 같다.


아버지가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시고 칭찬을 해주시기를 바랐다. 나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해주길 원했지만 그런 느낌을 받은 기억은 많지 않다. 오히려 아버지를 생각하면 부정적인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으로 아버지도 어릴 적 나를 바라보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보는 내 눈에는 원망이 가득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아버지는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고마운 분이고 이제는 나이가 드셔서 어릴 적 나를 괴롭힌 사람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버지를 보는 내 마음은 이성적인 생각과 달리 늘 불편하다.




아버지는 공부 잘하는 아들을 원하셨다. 나는 가진 바 재능이 부족하고 흥미도 없어 학업에 성취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공부의 중요성을 항상 나에게 주지시켰다. 학창 시절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좋았다. TV 보고 만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부모님께 혼났지만 공부는 뒷전이었다. 욱하는 성격이 있으신 아버지는 분에 이기지 못해 내 책을 찢어 버리시고는 학교를 가지 마라고 하셨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집 밖으로 쫓겨난 적도 여러 번이다. 아버지 나름의 특단의 조치를 취하신 것이지만 나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를 더 많이 미워하게 되었다.


자식이 정신 차리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도와주고 싶었던 부모의 사랑이 오히려 자식으로 하여금 부모를 더 미워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런 아버지의 행동을 이제 이해하지만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의 일들이 잊히지 않고 나에게 고통을 준다. 태어나 아버지의 도움과 사랑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은 채워지지 못한 욕망이 내게 상처로 남은 것이다. 일상생활을 할 때 어릴 적 상처가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를 볼 때면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어쩌면 가장 아쉬운 것은 마음 편히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다. 아직도 어릴 적 내 머리를 만져주시던 아버지의 손길을 기억한다. 그 손길에는 분명 사랑이 가득했다. 없는 형편에 엄마 몰래 용돈을 주시던 그 손에도 사랑이 가득했다. 어찌 보면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다. 서로 사랑했지만 그 표현이 서툴렀던 것 같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 아들이 아니기를 바랐다. 혹시나 아버지와 나처럼, 나와 내 아들의 관계가 불협화음이 될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었다. 다행히 첫째는 딸이었지만 둘째가 아들이다. 돌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벌써 고집이 대단하다. 아버지께서 바란 좋은 아들은 공부 잘하는 아들이었지만 내가 바라는 좋은 아들은 나와 사이가 좋은 아들이다. 나는 아버지께 좋은 아들이 되는데 실패했지만 내 아들에게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잠자고 있는 내 아들의 머리를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쓰다듬고 있다. 나는 내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아이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내가 아이 눈높이에 맞춰 줄 것이다. 아이가 나를 가장 많이 필요할 때 아이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아들 #아버지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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