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못하는 호구가 겪는 일

관계를 읽는 시간

by 보통직장인

저는 어른이 되어서도 주변의 눈치를 많이 봤습니다. 칭찬받고 싶고, 좋은 평가를 얻어 승진도 빨리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했습니다. 착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고 싶어 부당한 대우도 참고 견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원했던 착한 사람이라는 이름표는 붙었지만 저를 존중해주는 사람은 줄어갔습니다.


상사와 선배들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 어려운 일을 저에게는 부담 없이 시켰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는 받지 못했습니다. 많은 일을 처리했지만 저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으려던 제 행동이 결국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제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좋은 선배, 일 잘하는 후배 소리를 들으려고 부렸던 오지랖이 쌓여 꼭 필요한 업무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야근을 밥먹듯이 했지만 칼퇴하는 선배들보다 일처리가 늦었고, 일정 안에 일을 처리하지 못해 상사로부터 면박을 받았습니다.


점점 일이 재미없어졌고 미뤄뒀던 일은 쌓여만 갔습니다. 저에게 화를 내는 상사와 면담을 했습니다. 저를 왜 그렇게 괴롭히는지 물어본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일정도 못 맞추고 일처리도 늦은 답답한 너 때문에 어쩔 수 없다'였습니다.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주변에서 저를 보는 눈은 차가웠습니다. 대리보다 일 못하는 과장, 그게 저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습니다.




자꾸만 눈치 보는 제 모습이 싫었습니다. 저도 당당하게 세상을 살고 싶었습니다. 일 못하는 호구로 살던 삶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아 도망치듯 휴직했습니다.


휴직 후 많은 책을 읽고 지난날을 돌이켜보았습니다. 매일같이 밤거리를 걸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쉽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읽었던 심리학 책들이 저의 마음을 치료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눈치 보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바란 것은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였습니다. 그런 원만한 관계를 위해 양보만 했던 것이 제 자존감을 갉아먹고 업무 능력도 떨어 뜨렸습니다.


순응형은 이렇게 자존감이 낮고 타인 중심적인 인간관계를 맺는다. 관계의 기준이 상대에게 있어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상대가 하자는 대로 한다. 심각한 경우에는 내키지 않는 것을 너머 힘들거나 싫은데도 다른 사람의 접근, 제안, 부탁, 심지어 부당한 지시까지 거절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이들은 '관계의 불편함'을 유독 못 견딘다. 이들은 관계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사소한 갈등도 부담스러워한다.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느니 차라리 자신이 양보하고 희생하는 편이 더 마음 편하다.

둘째, 이들은 자존감이 무척 낮다. 과도한 불안으로 방어가 잘 되지 않는다. 이들은 늘 자신을 '나는 보잘것없어'라고 생각한다.

셋째, 이들은 '1인칭 사고'에 갇혀 있다. 이들이 거절을 잘 못하는 것은 관계의 불편함을 견디기 힘들어서이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도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계를 읽는 시간>


저 스스로 당당히 서서 제 의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느라 저에게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변한 것은 아닙니다. 휴직을 했던 2년 동안 많은 생각을 했고 좋은 책을 읽으며 제 마음을 성장시켰습니다. 이제는 타인과의 갈등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저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 때문에 뒤로 미뤄뒀던 제 행복을 찾은 뒤 저에게는 건강한 가시가 생겼습니다. 저의 건강한 가시는 타인과의 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예의 없이 훅하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그러지 마라고 말하는 용기도 생겼습니다.


이제 저는 다른 사람의 눈치 때문에 불필요한 손해를 보지는 않습니다. 제 행복을 위해 부당한 요구에 저항하고 제 생각을 말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 의지로 행동하고 타인의 인정을 바라지 않으니 점점 더 행복해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훌쩍 자라 어느새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란 어른의 마음으로 회사에 다니며 요즘은 가끔 일 잘한다는 소리도 듣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몸은 자랐지만 마음은 어린아이로 살았습니다. 그동안 크지 못한 제 마음은 휴직했던 그 2년 동안 많이 자랐습니다. 지금도 심리학 책을 읽고 사색하며 제 마음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도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일 때는 관계에서 얻는 행복에 치우쳐 있지만 어른은 관계뿐 아니라 자기 세계를 통해서도 행복을 느낀다. 관계를 위한 관계에 매달리지 않고,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 이상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을 때,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공통의 경험 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자기 세계를 세우고 그곳을 통해 걸어 나갈 때 우리는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맞춰갈 수 있다.
<관계를 읽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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