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은 나를 좋아하신다. 내가 하는 행동이 다 마음에 드신다며 와이프에게 나 같은 남자 없다고 나를 추켜세워주신다. 장모님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시다. 내가 드리는 용돈에 감격하시고 같이 식사를 할 때면 나 같은 사위가 없다고 늘 칭찬해주신다.
장모님을 처음 뵌 건 내 나이 26살 12월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그때의 여자 친구이자 지금의 와이프가 부모님께 나를 소개해줬다. 그때부터 장모님은 나를 마음에 들어하셨고 내가 하는 행동을 이뻐하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와이프와 결혼했고 맞벌이를 하는 우리를 대신해 아이들을 예쁘게 키워주셨다. 장모님께서 키워주신 첫째가 훌쩍 자라 올해 초등학생이 되었다. 6살 때까지 아이는 세상에서 외할머니를 제일 사랑했다. 이쁘게 자란 첫째를 볼 때면 장모님께 늘 감사한 마음뿐이다.
장모님께 나는 첫 번째 남자다. 제주도 여행 처음으로 함께 간 남자, 초밥집 처음 데려가 준 남자, 킹크랩 처음 사준 남자. 장모님은 늘 고마워하셨다. 좋은 곳에 가본 적도 없고, 비싼 음식도 많이 드신적이 없었다며 내가 당신께 해드리는 모든 것에 감사함을 표현해주셨다. 죄송스러운 마음이지만 나는 목적이 있었다. 장모님께 잘해드리면 와이프는 나에게 고마워했다. 와이프에게 잘 보이기 위해 했던 일들이 모여 장모님께 나는 참 착한 사위가 되었다.
그런 내편인 장모님과 이별이 가까워 온다.
장모님은 올해 암 진단받으셨고 3차에 걸쳐 수술하셨다. 수술 후 삶의 질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살 수 있다는 희망에 자식들 앞에서 힘든 내색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얼마 전 병원 진단 결과 암 전이가 많이 되었다며 함께할 날이 그리 길지 않다고 한다. 항암을 하는 것도 큰 진전을 보이기 힘들기 때문에 항암 치료를 할지 결정하라고 한다. 장모님의 의지로 항암을 진행하지만 병원의 전망은 밝지 않다.
벌써부터 와이프는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하는 눈치다. 나 몰래 가끔 훌쩍거리고 장인어른과 처남과 자주 통화를 한다. 계속된 암울한 소식에 희망을 둘 곳이 없다며 서글퍼한다.
혹시나 병원의 진단이 잘못된 것이기를 빈다. 몇 년 후 70살이 되는 날 당신의 생일을 위해 다시 제주도로 여행 가고 싶다는 장모님의 말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와이프는 늘 장모님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와이프의 기억 속에 장모님의 건강한 모습은 없다. 와이프의 어린 시절부터장모님은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약을 받아 드셨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오래 걷지도 못하신다. 와이프는 늘 엄마가 불쌍하다고 한다. 엄마는 어려서 사랑도 많이 받지 못했고 남편 복도 없어 늘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엄마처럼 복 없는 사람이 또 없는데 그런 엄마가 큰 병에 걸려 더 애처롭다며 한탄한다.
아이에게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천진 남만 하게 '아픈 사람'이라고 한다. 아이가 크는 내내 할머니는 몸이 불편했고 작년부터 급격하게 살이 빠지신 후 병원에 입원한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다.
이제 갓 돌 지난 둘째가 외할머니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렇게나 자신을 이뻐한 외할머니를 기억할 때까지 장모님께서 살아계셨으면 좋겠다. 자신의 엄마를 낳아준 외할머니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느낌이라도 알 수 있게, 조금 더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