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밟으셨어요. 선 넘으셨다고요!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쫄보이자 호구인 나는 이런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했다.
그동안 호구로 살았다. 남들의 시선과 다른 사람의 강요로 내가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살았던 적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내 선택권을 남에게 넘겨준 적도 있다. 타인의 무례한 말투나 행동에도 어색한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곤 했다. 내 잘못이 아닌데 좋은 사람인척 하며 사과한 적도 많다. 내가 호구인 것을 깨닫고 행동을 바꾸려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호구는 멀리서 봐도 그 기운이 느껴지는 걸까? 어찌나 내 삶에 간섭하려 드는 사람들이 많은지... 내가 걱정된다며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이 진심 어린 충고가 아니라 괜한 참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이 흘러 지나가듯 물어보면 그들은 나에게 한 말을 기억도 못 했다.
타인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것은 착한 것이 아니다. 나와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거나 자존감을 낮추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아무 말 못 하는 것은 호구다.
바보처럼 웃으며 주변 사람의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감정의 휴지통이 되지 않게 나에게 무례한 사람에게는 고슴도치처럼 건강한 가시를 세워 나를 보호하고 싶다.
네가 예민한 거야!
내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에 상처를 입고 주눅 든 내게 오히려 정색하며 예민하다고 한다. 그때 과감하게 잘라서 말을 했어야 하는데 아직도 후회가 된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당신이 무례한 거라고.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런데 정작 그 상황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착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양보한 것들이 스트레스가 되어 가슴에 쌓인다. 내가 희생한 것들이 피해의식이 되어 내 자존감에 상처를 입힌다. 희생하고 양보한 것에 보상심리가 생기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며 눈치 본 적도 있다. 하지만 호구가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보상은 없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중요시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고, 실수한 나를 연민하며, 솔직하게 당당하게 살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데 큰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다. 일을 잘해야 괜찮은 사람이고 일을 못하거나 공부를 못하면 수준 낮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나는 그 자체로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 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철저히 나로 살겠다. 자존감이 낮고 심리적으로 미성숙했던 시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아등바등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상대에게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서, 안 된다고 하면 상대가 나를 떠나갈까 봐서 무리한 부탁을 자꾸 들어주는 식으로 관계가 설정되면 갈수록 부작용이 커진다. 관계의 기울어진 추를 파악한 상대는 무리한 부탁임을 알면서도 계속하게 되고, 부탁을 받는 사람은 일그러진 인정 욕구와 피해 의식이 겹쳐 자꾸만 의기소침해지고 예민해진다. 부탁받은 일을 해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마음이 기껍고 편안한 상태여야 한다. 예의 바르게 부탁을 거절했는데도 자꾸 하소연하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은 옆에 두지 않는 것이 좋다.
<무례한사람에게웃으며 대처하는법>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무례한 사람에게 예의 있고 정중하게 대응하는 방식이다. 피치 못하게 얽혀있는 관계 속에 무조건 밀어내기만 한다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그들이 하는 헛소리에 내 정신을 지키기 위해 그들에게 정중하게 얘기해보자.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1. 문제가 되는 발언임을 상기시켜주는 것
“제삼자가 듣는다면 오해하겠는데요?”
“당사자가 들으면 상처 받겠네요”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정을 싣지 않고 최대한 건조하게 말하는 것이다.
2. 되물어서 상황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얼굴이 참 이타적이네”라고 한다면 “아, 저 사람이 못생겼다는 뜻이죠?”라고 되묻는 것이다.
3. 상대가 사용한 부적절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 들려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영감탱이는 욕이 아니라 친근한 표현이라서 썼다"라고 한다면, “저도 친근하게 영감탱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하고 응수할 수 있다. 상대가 사용한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돌려줄 수도 있다. “가슴이 작은데 왜 브래지어를 해?” 하고 묻는 남자에게 “그럼 오빠는 왜 팬티 입어?”라고 할 수 있듯 이상한 논리로 상대를 공격하는 사람에게는 역지사지를 경험하게 할 필요가 있다.
4. 무성의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육아 전문가들은 아이에게 여러 번 설명했음에도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떼를 쓴다면 달래주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쳐다만 보거나,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도 방법이라고 한다. 지지받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아이가 상황을 스스로 판단해서 멈추게끔 하는 것인데, 이 원리는 어른에게도 유효하다.
5. 유머러스하게 대답하는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말을 들을 때 특히 유효한데, 누군가 가부장적인 편견이 가득한 말을 할 때 “우와, 조선 시대에서 오셨나 봐요. 상평통보 보여주세요!” 하고 받아치는 식이다. 애정은 없고 자기 자랑만 있는 잔소리를 들으면 “요즘은 잔소리하려면 선불 주고 해야 한다던데요?”라고 하거나 “저희 부모님도 30년 동안 노력하다 포기하셨는데 어떻게, 가능하시겠어요?” 하고 농담하듯 받아치면 상대도 더는 말을 이어가기 힘들 것이다. 말이 길어질 것 같으면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고 화제를 돌리는 것도 좋다. 단, 농담을 자연스럽게 하는 데는 내공이 좀 필요하므로 경험치가 좀 쌓인 후에 시도하길 추천한다.
흠이든 생활 기스든 생채기가 난 건 똑같지만 그걸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의 차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상처받지 않는 무균실의 환경이란 건 있을 수 없으니, 누구에게나 흠이 나 있을 것이다. 잘 해보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보석함에 고이 모셔두지 않은 이상 매일 끼고 있는 반지라면 생활 기스를 피할 수 없듯, 살아가는 일에서 상처를 피할 순 없다. 더욱이 열심히 살아온 사람일수록 더 많은 상처가 있는 법이다. 실패에서 오는 괴로움을 그렇게 이해하면 스스로를 좀 더 편안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건 그냥, 거대한 흠이 아니라 자잘한 생활 기스들인 거다.
<무례한사람에게웃으며 대처하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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