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카카오톡 상태메시지는 너무너무 보고싶다이다.
이십 대 초반에 아빠를 만나 결혼을 하고 금혼식을 앞두고 배우자와 이별을 했다.
최소 2~3년은 지나야 덜 생각이 나며 무뎌진다고 하는 주변사람들의 말들이 위로가 되다가도 40년을 넘게 함께 지낸 사람의 흔적이 고작 3년 만에 정리된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
오늘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가족이 모였다.
모두가 말은 안 했지만 장례 이후 첫 생신이었으니 매형들이나 누나들이나 각자 신경 쓰며 슬프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신나지 않게 감정의 적정선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막내딸은 할머니 생신 기도를 하고 싶다며 내게 허락을 구했고 너의 기도라면 어느 누구라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기특하기도 하지.
아이들은 할머니께 쓴 생일축하 편지와 기도문을 주머니에 소중히 보관한 채 약속장소인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자연장지로 옮기고 제대로 비석이 세워진 후 처음이었는데 다행히 날씨가 춥지 않아 온 가족이 비석과 주변을 살피며 여기에 계시지 않은 아버지께 인사를 했다.
저희 왔다 갑니다.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서 식사를 하기 전 딸아이는 주섬주섬 기도문을 꺼내어 읽었다.
... 요즘 집에 혼자 계시니까 조금 심심하시죠, 요즘 할아버지도 조금씩 보고 싶기도 한데 참아주시는 할머니도 멋져요... 사랑해요. 축복해요. 감사해요. 지안올림.
시작부터 눈물을 참으시던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보이셨고, 온 가족은 늘 함께였던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꼈다.
SNS에서 촌철살인의 짧은 시로 유명한 이환천 작가의 문학살롱에는 내 인생의 주인공에서 네 인생의 조연으로 라는 글이 있다.
출산이라는 제목에 딱 저 글로 이루어진 시인데 아이를 낳은 후 조연으로 뒤바뀐 부모의 입장을 표현한 글일 테다. 인생의 주인공이 나인 줄 알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직장을 얻었던 일련의 노력들이 자녀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고 자녀를 만남과 동시에 내 자리는 조연으로 옮겨졌음에 깊이 동감한다.
인생이 한 편의 영화와 같다면, 내 삶은 너무나 짧은 인서트 컷과 같고, 금세 푸시 아웃하여 자녀에게 매치 컷이 되는, 카메라가 나에게서 자녀에게로 옮겨지는 모습일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두 자녀의 조연이 되었다.
아버지도 그런 삶을 사셨다.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어려움이 있을 때 아버지는 조용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큰누나의 대학 입시 실패에 몰래 눈물을 흘리셨으며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있을 때 여기저기 손을 벌려 자녀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조연의 역할을 감당하셨다.
가족을 꾸림과 동시에 조연으로서 이십 대부터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가지고 네 명의 가족을 부양했던 그 삶이 녹록지 않았을 텐데 돌아보니 아버지는 남우조연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사셨다.
내게 상을 줄 수 있는 시상의 권한이 있다면 남우조연상이 아닌 남우주연상을 수여할 거다.
아버지는 내 인생에 조연이 아닌 주인공이셨으니까.
애도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문득 솟는 그리움과 뒤늦은 감사,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천천히 정리해 가는 과정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