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오컬트 클래식의 탄생

유전 (Hereditary, 2018)

by Charley


나는 오컬트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는 좋아하는 편이다. 이해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온갖 기괴하고 기분 나쁜 징조들에 시달려서 절망과 무력함을 느끼는 등장인물이 끝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 징조의 일부로써 스러져가는 류의 영화를 보다 보면 광활한 우주 속의 작은 점만도 못한 인간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사악한 존재가 실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컬트 영화가 무섭게 느껴지는 건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



<유전>은 상기한 오컬트의 기본 법칙을 잘 지킨 영화이다. 갖가지 환영과 환각을 비롯해서 영적 존재의 침입까지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기묘한 일들이 그레이엄 가족에게 벌어지고, 애니는 알 수 없는 사악한 존재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녀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실행한 모든 일은 사악한 존재(악마, 파이몬)와 그의 추종자들이 미리 계획한 대로 움직인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처절할 만큼 발버둥 쳐봤자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왠지 모를 허탈감이 느껴졌다. 바로 그 허탈감 때문에 처음 영화의 엔딩을 접했을 때는 '무슨 영화가 이래' 싶었지만, 곰곰이 되짚어 볼수록 인간의 무기력함에서 오는 박탈감이야 말로 <유전>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 진정한 공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중심 사건들이 악마의 존재와 그 숭배자들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악마의 표식.
위의 장면들을 통해 파이몬이 인간의 머리를 제물로 취한다는 것과 남자의 몸을 통하여 부활한다는 것, 그리고 엘렌이 악마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오컬트 장르로써의 매력 외에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를 하나 더 꼽아 보자면 영화의 초반부터 빼곡하게 깔아 둔 결말을 향한 복선을 들 수 있겠다. 스토리의 구조 초반부가 굉장히 잔잔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자칫하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평범한 듯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복선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서 보는 내내 후반부와 결말을 추리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엘렌이 남긴 "우리의 희생이 큰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심장한 내용의 유서부터 시작해서, 집안 곳곳에 나타나 있는 의문의 표식, 엘렌의 펜던트, 애니가 말하는 정신분열증 오빠의 이야기 (어머니가 자신의 몸에 무언가를 넣으려고 한다고 주장하다 자살했다고 한다.), 서포트 그룹에서 만난 친절한 이웃인 조앤의 집 앞에 놓인 발 매트까지 영화의 결말까지 보고 나면 '그게 그거였어?' 하면서 놀랄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이 아주 많다.


악령(악마)에 사로잡힌 애니의 기괴한 행동


거기다 플러스 알파로 악령에게 빙의되어 머리를 문에 박으며 자해하거나, 공중에 매달려서 철사로 자신의 목을 잘라내는 애니의 모습은 오컬트의 고전인 <엑소시스트>에서 목이 돌아가고, 계단을 거꾸로 기어 내려오는 리건의 모습을 봤을 때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찰리 역의 배우 밀리 샤피로. 아직 어린데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는(파이몬의 숙주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

내가 한동안 즐겨 들었던 뮤지션인 Nat & Alex Wolff의 알렉스 울프가 찰리의 오빠인 피터 역으로 출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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