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 (Us, 2019)
1980년대. 주인공인 애들레이드(루피타 뇽오)는 어린 시절 산타크루즈 해변의 유원지에서 실어증에 걸릴 만큼 트라우마틱한 경험을 한다. 우연히 비를 피해 들어갔던 거울의 방이 있는 어트랙션에서 자기와 똑같은 모습을 한 도플갱어와 조우한 것이다. 영화는 이 오래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현재. 시간이 흘러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애들레이드는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즐기러 산타크루즈 해변 근처의 별장을 찾는다. 그러나 산타크루즈와 가까워질수록 선명하게 느껴지는 어린 시절의 환영과 기이하게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우연의 일치가 내내 그녀를 괴롭힌다. (예레미야서 11장 11절, 야구경기 스코어 11:11, 시계 11시 11분 등) 그리고 그날 밤, 잠자리에 들려던 윌슨 가족은 차량 진입로에 일렬로 서 있는 괴상한 가족과 마주하게 된다. (이것마저 1111 모양)
감독은 <어스>를 호러영화로 못 박았지만, 나는 바로 이 묶인 자(tethered)들이 등장하는 시점부터 영화의 2/3 지점 까지만을 호러영화라고 부르고 싶다. 일렬로 서있던 정체모를 가족이 ‘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집 주위로 흩어지던 장면은 문자 그대로 강렬했고, 이어지는 집안으로의 침입 장면, 윌슨 가족과 똑같은 얼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질감이 드는 도플갱어들의 기괴한 외모와 행동, 괴상하고 소름 끼치는 사운드트랙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완벽하게 호러 영화다웠다. 거기다 본체와 그들 사이의 잘못된 연결고리를 잘라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도플갱어들이 사용하는 살해 도구가 가위라는 점은 그들의 명칭인 묶인 자들(tethered)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두 개의 칼날이 모여서 한 쌍을 이루는 가위를 통해 같은 영혼을 공유한 나머지 한 명을 제거하고 혼자 살아남겠다니, 아이러니한 재미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영화의 나머지 3/3은 호러영화라고 하기에는 약간 아리송하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들려주고자 한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나면서 공포보다는 계층 간의 차별, 갈등에 대한 풍자와 유머가 가미된 블랙 코미디에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스> 세계에서 등장하는 도플갱어들은 버려진 복제인간들로 지하 터널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지가 없고, 영혼을 나눈 본체(지상세계 인간)의 행동을 무의미하게 따라 하는 것만이 삶의 전부이다. 이것이 레드의 회상 장면에서 멍한 표정으로 한데 모여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지상세계 인간들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며 경련하듯 온 몸을 흔드는 장면이나 맛있는 식사를 하는 지상세계 인간들을 따라 날 고기를 뜯어먹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는데 섬뜩하면서도 신선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생각도 의지도 없이 비참한 삶을 살던 그들에게 레드의 계략으로 바꿔치기당한 진짜 애들레이드가 나타난다. 지상세계에서 지하로 내려온 진짜 본체가 말이다. 그 이후로 애들레이드는 그들의 구원자이자 리더가 되었고, 본체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이 불합리한 세상을 바꿀 것과 온 세계에 자신들 또한 살아있는 미국인임을 알릴 캠페인을 계획한다. 영화의 후반부를 보면 그들이 만든 인간 띠를 중산층의 전형적인 인물인 게이브(윈스턴 듀크)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로 미루어 볼 때 그녀의 계획이 별로 성공적이었을 것 같지는 않다. 지하 세계 인간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지상 세계의 인간에게는 그저 하나의 별난 행위예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현실세계의 차별과 갈등에 대한 풍자의 메시지로, 나름의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메시지에 강세를 두는 대신 호러영화로써의 끝 마무리가 흐지부지해져서 호러영화 팬으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가 계층 간의 갈등을 메시지화 했다고 생각하고 보면 재미있는 점이 또 하나 있다. 본체인 지상 세계의 인간들이 도플갱어를 죽일 때 사용하는 도구는 골프클럽, 고급 보트와 승용차 등으로 매우 다양한데 이는 모두 중산층 이상의 계층을 상징하는 심벌이다. 오직 애들레이드 만이 부지깽이와 수갑을 사용하는데, 그녀의 진짜 출신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는 연출이다.
한 가지 더 인상적인 장면을 꼽아 보자면 단순히 남편 게이브의 물욕, 또는 중산층 가정의 허영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했다고 생각한 타일러 가족이 몰살당하는 씬이다. (이 영화에서 개그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이 장면을 통해 도플갱어의 습격이 윌슨 가족에게 한정되어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 참사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데, 단순히 뉴스 보도만을 이용하는 것보다 사태의 심각성을 체감하기에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또 도플갱어 키티(엘리자베스 모스)가 지상 세계의 키티를 처리하고 그녀의 화장품을 바른 자신의 모습을 보며 울듯 말듯한 표정을 지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같은 영혼을 나누고 살아가는 두 존재 이건만 한 사람이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가는 동안 다른 쪽은 아주 사소한 즐거움 조차 꿈꿀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 그녀의 표정을 통해 너무 쉽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도플갱어 키티가 남편의 죽음에 괴로워하다가 갑자기 미소 짓는 장면이 나오는데, 극 초반에 '어떨 땐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고백하던 키티의 대사가 떠올랐다. 아마 본체의 감정이 전이되어서 남편의 죽음에 기뻐한 것이 아닐까. 이런 것을 보면 영화가 정말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써서 연출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스>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호러영화이지만, 모든 요소가 100%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었다. 이따금씩 곳곳에서 설정 구멍들이 드러나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지만 감독이 의도하여 만들어낸 온갖 복선과 결말을 향한 단서를 찾아내고 추리해 가는 재미는 최근에 본 어떤 영화보다도 강렬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에 친구와 토론할 거리가 많이 생기는 영화는 언제나 좋은 법이다. 인과관계를 너무 깊이 따지지 말고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며 즐긴다면 누구에게나 만족스러운 영화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개인적인 단상들.
1. 미국 영화에서 스타워즈 레퍼런스를 빼면 과연 뭐가 남을까.
2. 지하세계에서 살아가는 도플갱어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옷이며 가위, 장갑은 어디서 구했지? 가져다 주는 사람이 있는 건가.
3. 도플갱어들은 지상 세계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움직이는데, 어떤 방법으로 자유 의지가 생긴 걸까. 제이슨을 따라 하다 죽은 플루토나 성형수술을 했던 키티를 따라 얼굴에 가위질을 한 그녀의 도플갱어를 보면 여전히 어느 정도는 본체를 따라 하려는 습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모종의 방법으로 훈련이라도 한 걸까?
4. 제이슨은 엄마의 비밀을 어디까지 알게 된 걸까. 이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5. 루피타랑 엘리자베스는 연기를 너무 잘한다. 그래서인지 별다른 배경 설명 없이 그들의 연기만으로 자연스럽게 극에 몰입이 된다.
6. 사운드트랙이 음산한데 너무 좋다. 오늘 하루 동안만 30번은 들었던 것 같다. 꿈에 나올까 무서우니 밤에 듣는 것은 지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