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주성 May 05. 2020

특별한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

영화 <퍼스트맨> (2018)과 <사랑에 대한 모든 것> (2014)

 특별한 배우자와 평범한 결혼생활을 꿈꾸었다.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한 가정을 꾸려서 평범한 삶을 사는 것만을 원했다. 그러나 닐 암스트롱과 스티븐 호킹을 남편으로 둔 아내 재닛과 제인에게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암스트롱은 가족들을 뒤로 하고 달을 향해 떠났다. 호킹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도 모른 채, 시간을 연구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했다. 미지의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겠다는 남편 앞에서 가족에게 소홀하다는 비난은 설자리가 없었다.


평범한 결혼생활이라는 재닛과 제인의 꿈 역시 희미해졌다. '평범함'에 대한 지향을 남편에게 털어놓는 순간은 그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와도 같았다. 평범한 결혼생활이 꿈이었다는 재닛과, 우리는 평범한 가족이 아니라고 호킹에게 쏘아붙이는 제인의 남편은 그 꿈을 이뤄줄 수 없었다. 재닛과 제인 역시 자신의 꿈을 고백한 뒤에는 남편에게 다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홀로 가정을 지켜나간다.

 하지만, 재닛과 제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눈에 그들의 결혼생활은 평범하다 못해 행복한 생활이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우주비행사나 과학자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남편과, 아이들을 둘셋씩 낳아 기르며 종종 나들이를 나가는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정작 재닛과 제인은 그 시선 속에서 외로워했다. 가족을 평범하게 보이도록 만든 것도, 나들이를 가기 위해 의견을 묻는 것도 언제나 아내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남을 비범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남편과, 모든 것이 새롭고 특별한 아이들 가운데에서 평범함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은 아내뿐이었다. 남편 암스트롱이 내일 달에 갔다가 집에 돌아올 수 없을지 모른다는, 평범함을 완전히 상실할지 모른다는 재닛의 걱정은 당장 밖에 나가 놀고 싶은 아이들 앞에서 감추어야 할 것에 불과하다. 호킹 부부에게는 특히 주어진 환경마저 그들이 평범한 부부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휠체어를 탄 남편은 추억을 함께 만들 사람이기에 앞서, 자신이 돌보아야 할 사람이었다.


 평범한 가정생활을 지켜낸 아내들은 끝내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그 보상마저도 아내들이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재닛은 최초로 달에 간 인간의 배우자가 되어 집 앞에 들이닥친 수많은 기자들을 마주한다. 제인은 남편의 초대를 받아 여왕을 알현할 기회를 얻는다. 평범한 결혼생활을 원했던 그녀들에게 주어진 것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동시에 '암스트롱 부인'과 '호킹 부인'으로서 자신들이 그토록 소망했던 평범한 삶에 완전히 작별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재닛이 달에서 돌아온 남편을 처음으로 마주하기 위해 들어간 방에는 두 사람을 가로막는 유리창이 놓여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평범한 부부로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재닛과 제인이 원했던 평범한 생활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실 가장 먼저 드는 것은 의문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사는 우리는 특별한 일들을 꿈꾸는데, 평범함을 꿈꾸는 것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의 푸념이 아닐까. 어떻게 평범한 삶이 특별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미 평범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무어라고 설명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퍼스트맨>에서 재닛은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를 기억한 남편에게 감동한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는 제인이 남편의 감사인사에 감동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기억해주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것은 누군가에게 평범한 일이다. 그러나 남들과 다른 생활에 힘겨워하던 아내들에게 그 평범한 순간은 영화의 한 장면이 될 만큼 소중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특출난 것 없는 현재의 삶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수 있다는 흔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한편으로는 부부가 서로를 평범한 것을 주기에 너무나도 특별한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왕을 알현하러 간 자리에서, 호킹 부부는 사랑의 결실인 아이들을 보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그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지나가는 장면들은 하나같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의 처음에는, 평범했던 파티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두 사람의 눈맞춤이 있었다. 사실 다른 순간들 모두가, 서로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평범한 순간에 그쳤을 기억들 뿐이었다.


 어쩌면 우리도 먼 훗날 돌아보았을 때, 기억에 남을 순간을 만들기 위해 일상의 기쁨을 너무 아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킹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다면, 지구는 그렇게 특별한 곳이 아니다. 그렇기에 일상의 작은 기쁨은 누구보다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 그의 뒷모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