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미 넘치는 영웅
어린 시절, 맥가이버는 단순한 TV 속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의 등장은 하나의 문화적 신드롬이었고, 위기 상황에서 침착하게 주변의 사소한 물건들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수많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종이 클립 하나, 고무줄 하나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던 그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재주 있는 사람의 대명사로 회자된다.
그러나 수많은 TV 속 영웅들 가운데서도 맥가이버가 유독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뛰어난 해결사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 것은, 완벽함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허술함과 따뜻한 인간미 때문이었다. 맥가이버의 창의력과 끈기는 단지 해결 능력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요즘 사회를 돌아보면, 사람에 대한 배려와 진심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면서도 서로를 돌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의 지친 얼굴을 보며 말 한마디 건네기를 주저하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해도 머뭇거리다 지나쳐 버리곤 한다. 타인을 향한 관심보다 나 자신의 감정과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현실 속에서,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버리고 있다.
도전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앞서, ‘나는 안 될 것 같아’라는 말부터 떠올린다. “돈이 없어서”, “실력이 부족해서”, “인맥이 없으니까”, “나이가 많아서 혹은 어려서”와 같은 말로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다. 물론 각자의 조건과 환경은 다르지만 진짜 문제는 그 조건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
위기의 순간, 맥가이버도 지금의 우리처럼 결코 가진 것이 많지 않았다. 손에 쥔 것이 사소한 물건 하나에 불과했더라도, 일단 부딪히고 주어진 한계 속에서 해결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든 있는 것에서 출발하면 되는 데도, 자꾸만 부족한 것에 눈을 돌리며 주저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누군가의 도움도,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이 해볼 수 있던 일들이 너무나 많았음을 깨닫고 아쉬워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맥가이버 역시 실수했고,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화려한 무기나 초인적인 힘 대신, 평범한 일상 속 물건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내곤 했다. 또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인을 외면하지 않고, 작은 행동으로도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실천했던 그는, 한계를 극복하는 기술뿐 아니라, 그 한계 너머로 손을 내미는 용기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이것이 아마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이 그를 잊지 못하게 하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주말이면 TV 앞으로 달려가게 했던 맥가이버를 아직 그리워하는 마음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잊고 지낸 삶의 가치를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정의로움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손을 내미는 작은 행동 속에 녹아 있었다. 매 에피소드마다 보여준 그의 창의적인 사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리고 따뜻하고 정의로운 마음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 역시, 그 정신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해 보면 어떨까! 주변의 작은 고통에도 함께 귀 기울이고, 손 내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 위한 노력이 어쩌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세상을 다시 만들어가기 위한 값진 첫걸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