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철 시인 작품 - 인생시 소개
학창 시절, 윤재철 시인의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우리가 흔히 '아름다움'이라 부르는 것이 단순히 기쁨과 즐거움만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히려 삶의 아름다움은 고통과 상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끝과 공존하는 것으로 그 끝에 다다를 때, 비로소 그 모든 의미가 선명해지는 것 같다.
윤재철 시인의 이 시는
고속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화물차에 실려 도축장으로 향하는 길에도 흘레하는 돼지를 통해,
사형을 앞두고 터진 생리를 보며 생의 엄연함을 깨닫게 되었다는 독일 여자 수용소장을 통해,
우리에게 매일 겪는 일상 속에서 삶의 본질을 되묻고,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 시는 그저 감정을 자극하는 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주변 환경에서 조차 행복과 불행, 만족과 불만,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진지한 성찰을 떠오르게 한다.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그 묵직한 여운은 지금도 내 안에서 계속 남아 있다.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달리는 고속버스 차창으로
곁에 함께 달리는 화물차
뒤칸에 실린 돼지들을 본다
서울 가는 길이 도축장 가는 길일 텐데
달리면서도 기를 쓰고 흘레하려는 놈을 본다
화물차는 이내 뒤처지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저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름답다면
마지막이라서 아름다울 것인가
문득 유태인들을 무수히 학살한
어느 독일 여자 수용소장이
종전이 된 후 사형을 며칠 앞두고
자신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생리를 보며
생의 엄연함을 몸서리치게 느꼈다는 수기가 떠올랐다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끊임없이 피 흘리는 꽃일 거라고 생각했다.
(출처: 윤재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