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철 시인 작품 - 인생시 소개
나는 지금도 우유와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장이 약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찾아오는 급똥은 예고 없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고, 그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학교 가는 길에도, 축구를 하다가도, 소개팅을 나갔다가도, 야구를 보다가도, 그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제발 이번엔 무사히 도착하게 해 주세요…” 기도하듯, 화장실까지 달려가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X자 전법'으로 그 상황을 버티곤 했다. 그때마다 체면도 자존심도 내려놓고 오직 한 가지 소원만을 품었다. 그것은 그 순간을 무사히 넘기는 것뿐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대개 민망하고 부끄러운 추억으로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그런 '급똥의 순간'을 인생사로 승화한 한 편의 시를 만나게 되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다가오는 그 참을 수 없는 급함을 묘사한 시의 표현들이 공감을 넘어, 마치 나의 마음을 그대로 적어 놓은 듯했다. 그리고 이 웃픈 상황을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 즉 하늘 집에 갈 때의 긴박하고도 불가피한 순간과 연결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웃음이 아닌, 삶의 깊은 진리를 담고 있었다. 급똥에서 진리라니....
나는 이후 급한 순간마다 이 시를 떠올리게 되었고, 덕분에 더 잘 참을 수 있게 되었다.
기분 탓이겠지만...
나의 '인생 시'가 된 시를 소개한다. 민망함을 넘어서, 삶을 유쾌하게 껴안아준 한 편의 시를...
제목: 집.항문
아주 이따금 있는 일이지마는
집 가까이 와서
똥이 아주 급해진다
아무렇지도 않다가 집이 가까워지면서
그렇게 급해지는 것이다
몇백리 밖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내둥 괜찮다가
지하도를 오르고 신호등을 건너고
이윽고 골목길에 접어들며는
꾸르륵거리며 급해지다가
문간에 서면 더는 못 참겠는 것이다
참으로 환장할 일이지
무슨 조화인가
굳이 따진다면야
긴장이 풀린다는 애길텐데
왜 하필 항문부터 열린다는 말인가
생각에 앞서, 느낌에 앞서
항문이
저 먼저 집을 안다는 것인가
하긴 죽을 때에도
하늘 집에 갈 때에도
항문부터 열린다더니
[출처] 윤재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