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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

나비가 되기 위한 멈춤

by 캐나다 마징가

요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주 비슷한 말을 듣게 된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 말들 속엔 지친 숨결이 실려 있다. 누구 하나 특별히 잘못한 건 없는데, 어쩐지 모두가 방향을 잃은 채 어디론가 밀려가고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 혼란은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마음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풍월동류

그럴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다. 우리가 어릴 적 한 번쯤은 읽었을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Hope for the flowers)'이라는 그림책이다. 줄무늬 애벌레와 노란 애벌레가 등장하는 단순한 우화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어른이 된 지금 더 깊게 와닿는다.


줄무늬 애벌레는 '어딘가 더 나은 곳이 있을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길을 나섰다. 그러다가 그는 수많은 애벌레들이 서로 뒤엉킨 거대한 검은 기둥을 오르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모두가 오르고 있으니 줄무늬 애벌레도 자연스럽게 그 기둥에 합류하게 된다. 기둥에서의 경쟁은 치열했고 냉정하고 거칠었다. 올라갈수록 감정은 무뎌지고, 마음은 단단해졌다.


그런 날들 속에서 줄무늬 애벌레는 노란 애벌레를 만난다. 잠시 멈추어 함께 지낸 그 시간은, 그에게 처음으로 '정말 이 길이 맞는 걸까? 꼭 올라가야만 할까?'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곧 불안이 밀려왔고, 멈춰 있는 게 왠지 뒤처지는 것 같았고, 다시 기어오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그를 재촉했다. 결국 줄무늬는 다시 기둥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노란 애벌레는 기둥에 기어오르지 않기로 선택하면서, 조용히 멈추어 고치를 짓고, 시간이 흐른 뒤, 나비가 되는 과정을 선택한다. 반면 줄무늬 애벌레는 끝까지 기둥을 올라 정상에 다다르지만 그 꼭대기엔 아무것도 없었고, 자신의 아래로는 거기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꼭대기에 오르려는 애벌레들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내려오며, 하늘을 나는 한 마리 나비를 보게 된다. 그건 노란 애벌레였다. 그제야 줄무늬 애벌레는 멈춰 서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고치를 짓고, 자신 안으로 조용히 침잠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건, 저 기둥의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 안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임을 깨달으면서 책은 마무리된다.

앰블사이드 공원의 아침풍경

우리는 늘 어딘가를 향해 나아간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모두가 가고 있으니 나도 따라가야 할 것만 같은 마음에,

무작정 발걸음을 옮긴 순간들이 있다. 뒤처질까 불안해서, 나도 어디로든 가야만 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에 떠밀려, 이유도 모른 채 앞만 보고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줄무늬 애벌레의 이야기처럼,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애벌레들이 올라가고 있는 그 기둥의 끝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서 자라고 있는 나만의 날개를 발견하는 일이다.


우리가 그토록 찾고 있던 더 나은 곳은, 어쩌면 언제나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누군가의 속도를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지금 당장 하늘을 날지 않아도 괜찮다.


멈춘다고 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며, 다른 길을 택한다고 해서 틀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은 멈추는 것이고, 나를 돌아보는 것일 수 있다.

우리 삶에는, 때로는 멈춰 서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우리 모두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따라 날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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