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아름다움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것
가끔은 밴쿠버가 너무 익숙해서 지겹다.
어디 가든 본 것 같고,
늘 가던 카페에, 늘 마시던 커피,
마치 어제의 오늘을 또 반복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문득,
여기를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아볼까 라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뉴욕처럼 끝도 없는 에너지 속에서 살아보고 싶기도 하고,
도쿄처럼 반듯하게 정돈된 거리 위에서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다양한 가능성과 낯선 풍경,
그 모든 것들이 지금보다 더 특별한 삶을 선물해줄 것만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행을 다녀오면, 다시 밴쿠버가 좋아진다.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게 보이고,
지겹다고 생각했던 하늘이 괜히 반갑다.
결국 나는 또 이 도시에 남아 있거나, 돌아오게 된다.
밴쿠버는 30년 전보다 훨씬 커졌다.
도시는 성장했고, 문제도 함께 늘었다.
범죄, 마약, 의료, 치안, 물가...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다.
밴쿠버는 그 와중에도 묵묵히 본연의 모습을 지키면서
성장의 무게를 모두가 나눠 들고 있는 중이다.
바다를 품고 있고,
산을 끌어안고 있으며,
숲과 길 사이로 걷는 사람들의 표정도 여전히 부드럽다.
도시는 커졌지만, 자연은 여전히 도시보다 크다.
그게 이 도시의 가장 큰 아름다움이다.
특히 올해 여름은 유난히 시원하다.
다른 나라가 폭염으로 뒤척이는 동안,
이곳은 에어컨이 필요 없는 여름을 지내고 있다.
나는 이 도시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밴쿠버는 무언가를 쫓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도시다.
도시가 사람을 압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도록 공간을 남겨둔다.
그래서 이 도시는 떠나고 싶어질 때보다,
돌아오고 나서 더 선명해진다.
머물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