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

기억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by 캐나다 마징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는 기억이지만, 문득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유학하던 시절이 떠올라 창고 구석에 묵혀두었던 필름 사진들을 꺼내 본다. 그 속에서 마주한 나는 지금보다 훨씬 젊고 순수한 눈빛을 하고 있다. 30년 전 유럽의 도시들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고, 어린 소년의 눈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이국적이었다. 처음 공항에 내리던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던 그 순간의 공기와 새로운 냄새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한가한 스페인의 Plaza de Mayor in 1995

거리의 소음, 낯선 언어, 그리고 스페인 특유의 활기가 넘치는 골목길, 뚜껑이 열린 차 위에서 파라솔을 들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외치던 스페인 청년들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나의 유학 생활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으로 시작됐지만, 매일의 경험들은 나를 조금씩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마드리드를 떠나 찾은 남부의 작은 도시, 까르타헤나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는 언제나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생경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의 시간은 놀라울 만큼 편안했다. 밤새도록 이어진 축제 속에서 함께 웃고 춤추며 온전히 즐겼던 시간들은 이방인 소년이 마치 그들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주었고, 새로운 세계의 일원이 된 특별한 순간이었다.

지금의 유럽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되었지만, 그때의 여유롭고 정겨운 장면들과 그 안에서 느꼈던 감정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했던 플라멩꼬 바 - Cafe de Chinitas in 1995

이런 기억들이 오늘 다시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 안에는 우리가 겪었던 경험,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시절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도 잊히지 않는 순간들은 현재까지 이어져오며 우리의 삶에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정체성과 감정에 깊이 연결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유쾌한 기억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특별한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빛나는 보석처럼 남아 있다. 반대로 힘들었던 시기에 겪었던 일들은 우리를 돌아보는데 큰 도움을 주고, 과거의 감정이나 가치관을 되새기는 계기가 된다. 이런 기억들은 종종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나 영감을 주면서 현재에 직면한 결정을 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미래에 대한 방향을 잡는데 나침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적한 스페인의 광장 in 1995

나의 정체성의 기초가 형성된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은 언제나 따뜻한 기억과 그리움으로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의 유학 시절은 마치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새처럼,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캐나다로의 이주는 또 다른 경험의 연속이었으며, 그곳에서는 유럽의 자유로운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캐나다 특유의 보수적인 생활방식에 적응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진정한 행복의 형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겪은 수많은 시간들과 경험들은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루는 중요한 조각들이 되었고, 그 모든 여정은 여전히 나를 형성해 가는 과정 속에 있다.

마드리드 Sol Station 인근 in 1995

우리 모두는 여전히 다양한 문화와 경험이 만나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 교차로에 서 있다. 서로 다른 배경들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나를 구성하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잊히지 않는 기억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이 기억의 흔적들은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깊은 밑거름이 되었고, 다양한 문화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도록 이끌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순간들을 더욱 소중히 간직해야 하며, 그 속에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나를 만드는 것은 단지 과거의 경험을 나열하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웠는지를 되새기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이들과의 연결을 통해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다.


이 여정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알아가고, 동시에 새로운 세상과 끊임없이 연결되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도 그리움을 안고, 나를 이루어온 모든 순간들에 감사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오늘의 이 기억들 또한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다시 나를 채워줄 것임을 기대하며...

돈키호테 동상 in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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