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by Charlie Sung

나는 2004년, 손가락이 곱을 정도로 추웠던 2월에 5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다. 낯선 또래 들과 차가운 침상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렴풋하게 이런 게 운명 공동체구나, 이런 게 전우애구나 느꼈던 기억이 난다. 딱 하루만이었다. 서로를 보는 눈에서 적대감이 사라졌다. 우리는 서툴게 또 느리게 전쟁을 예비하는 기초적인 자세와 지식을 익혔고 끼니가 되면 익숙하게 식판을 비웠다. 생각해 보면 정말 악착같이 먹었다. 다 먹은 식판을 빨래 비누로 닦았다. 잘 닦였는지 검사하는 조교가 있었는데 본인이 쓰는 식판이 아니라 그 위생 상태에 큰 관심을 보였던 것 같지 않다. 그렇게 4주가 지났지만 우리는 전쟁에는 도통 관심이 생기지 않았고 동기가 된 녀석들과 헤어지기 아쉬워 사회에서 쓰던 휴대전화 번호와 이메일 같은 것들을 교환했다. 퇴소 마지막 밤에는 낮게 흐느끼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는 유난히 변비가 심했다. 나도 그 얘와 한 조를 이뤄 야외 화장실에 간 적이 있는데 ‘헛방귀만 잔뜩 뀌었어 시발’ 일갈하는 통에 함께 간 모두가 침 흘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퇴소 날에야 처음 본 부대 바깥에는 막국수집이 하나 있었다.

아내와 나는 국수를 좋아한다. 국수를 좋아하는 아내 식성을 닮아가는 거라고 우기는 중이지만 사실 나도 면을 좋아한다. 라면, 짜장면, 짬뽕, 잡채밥 등등. 근사하게 면치기를 할 줄은 몰라도 ‘완면’에는 자신 있다. 음식 남기는 것은 죄다. 따뜻한 주말이었다. 국수를 좋아하는 아내는 나들이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문득 5사단 훈련소 앞 막국수집을 떠올렸고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국수와 나들이만큼 괜찮은 조합은 별로 없지 않을까. 햇살이 아직은 뜨거운 늦여름이었다. 밖에서 바라본 훈련소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반가웠다. 부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당시 매일 아침 보급되는 우유에 성욕 감퇴제가 들어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우리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맞는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었었다. 22살의 내가 4주를 보낸 곳이었다.

대기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국수는 막 만들고 막 먹는 음식이라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막국수는 조금 매웠다. 그래서 간이 약한 백김치가 함께 나왔다. 면은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약간은 투박하게 씹혔다. 간이 세고 자극적인 국수라 고기만두와 잘 어울렸다. 속이 우직하게 찬 만두였는데 가격이 겨우 3천 원이었다. 아내와 두 개씩 사이좋게 나눠 먹고 나니 포만감이 아주 적절했다. 함께 파는 삶은 달걀까지 하나씩 먹었다면 분명 후식 먹을 배를 남기지 못했다며 후회했을 것이다. 가게는 바깥 테이블까지 꽉 찼다. 부모님을 모시고 온 중년의 자녀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 신혼부부, 연인 들은 다들 저마다 음식 평을 나눈다. 대개는 좋은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인상을 쓰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날카롭게 소리 지르는 사람도 없었다. 평화로운 점심시간이었다.

그 막국수집은 손님들이 떠나기 전에 손을 씻거나 입을 헹구라고 작은 수돗가가 마련해 두었다. 식당 규모에 비해 조금 작은 편이어서 항상 붐빌 것 같았다. 나는 조금 기다릴 요량으로 서너 명이 앞에 있는 줄의 맨 뒤에 섰다. 꽤 오래 기다렸지만 줄이 줄지 않아서 휴대폰을 보던 얼굴을 들었는데 어떤 중년이 사과를 했다. “저희 어머니께서 틀니를 씻고 계시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는 모양입니다. 양해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어머니의 이를 지켜주지 못한 불효와 기다리는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건너왔다. 말을 마친 중년이 돌아 섰을 때 그의 어머니는 틀니를 입에 다시 끼워 넣고 있었다. 그 중년은 어머니께 미안했고 우리에게 창피했다. 어머니는 수돗가를 절둑절둑 벗어나며 아들 손을 잡고 말했다. “잘 먹었다. 맛있다. 집에 가자.”

‘왜 커피 한 잔 마실 카페도 없는 곳에 훈련소가 있는 거야 제기랄.’ 나는 손을 씻고 입을 헹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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