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신랄하다. 제법 취한 이후로는 연신 상스럽게 욕하면서 테이블도 내리친다. “병신 새끼야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술이나 마셔.” 험상궂은 주위 사람들이 위협적인 눈빛을 보냈지만 A는 까딱 고개를 숙일뿐이다. 노상 취해서 고함을 지르다 옆자리 손님들과 멱살잡이를 하던 동네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 아저씨는 흠씬 두들겨 맞고 억울하지도 않은지 항상 이렇게 말하고 비틀비틀 거리며 집으로 갔다. “거참, 미안하게 됐어요.” 예의 바른 취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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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취한 숨을 뿜으면서 계속 말했다. “요새는 소설 읽는 사람 없다. 직장인들은 바빠. 퇴근하면 더 바빠. 너 그 기사도 못 봤냐. 포털 사이트에 게재되는 짤막한 신문기사도 제목만 보고 바로 댓글을 읽는다잖아. 10분도 채 안 걸리는 일도 안 한다고. 근데 소설 한 권을 읽는다는 게 말이 되냐.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경력 개발하기 바쁜 와중에 누가 소설 따위나 읽고 앉았어. 내 주변 사람들은 말이지. 재테크한다고 부동산이나 주식 입문서 읽어. 아니면 인간 관계론이나 경영 트렌드를 전망해 주는 그런 책을 읽는다고. 그래야 먹고 사니까. 그래야 회사 나가서 한 마디라도 대화에 낄 수 있으니까. 근데 그 알량한 문학을 한다고? 최근에 나한테 읽으라고 한 소설이 뭐라고 했지? 지난번에 나한테 보내 준 거? 아참, 도스토예프스킨지 뭔지 그 러시아 작가? 검색하면 줄거리 나오고 교훈, 의의까지 다 나오는데 누가 며칠이나 투자해서 그런 책을 읽어.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너 학생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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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말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머쓱한 표정을 짓고는 이내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안주로 시킨 오징어 볶음을 잔뜩 입에 욱여넣고 질겅질겅 씹는다. 입가에 고추장 양념이 상처처럼 묻었다. 하지만 금세 마뜩잖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다 꿈이 있어. 근데 그 꿈을 다 이루고 살 수는 없잖아. 우리는 지금, 이 자리 그리고 그것이 주는 생활! 뭐 그런 것들이 있잖아. 당장에 다음 달 월급 없이 살 수 있겠어? 몇 달이야 버틸 수 있겠지만 이후로는 진짜 비참할 수 있어. 그리고 넌 이제 혼자도 아닌데 잘 생각해. 고통은 쉽게 전이되는 거야. 밥보다 위대한 예술 그딴 거 없어.” A는 그 후로도 몇 잔인가를 더 마셨고 혀가 꼬이고 눈이 풀려 대화가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연신 상욕을 뱉을 뿐이었다. 그래도 친구는 내가 쓰는 글이 엉망이라거나 수준 미달이라는 말은 안 했다. 그렇게 잔인해지기 직전에 만취하기로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하니 속이 아팠다. 친구를 택시에 태우고 조심히 들어가라는 문자를 남겼다. 집에 들어와서 자고 있는 아내 옆에 쓰러지듯 누워서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압도적인 허기가 몰려왔다. 안주는 거의 손도 안 댔으니 아침에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가벼운 숙취와 기습적인 허기에는 순댓국이 답이다. 그러고 보니 꿈에서 순댓국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순댓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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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순댓국은 순대가 알차다. 당면과 함께 다진 채소가 꽉 찬 순대는 꼭 김밥의 꼬다리 같이 칠렐레 팔렐레 한다. 이 집 순댓국을 먹고 난 후로 단정하게 썬 순대를 보면 강박적으로 보이고 결벽증이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들어있는 순대 다섯 조각만 먹어도 우선 1차 포만이 시작된다. 여러 종류가 섞인 부속고기에서는 딱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기 비린내가 난다. 은은한 고기 냄새는 순댓국에 야성미를 준다. 그래서 숟가락을 쥔 손의 왕복 운동이 다른 음식을 먹을 때 보다 더 박력 있어 보이는지도 모른다. 고기 육수 특유의 느끼함에 얼큰한 갖은양념이 담백함을 더해 숙취가 일소되는 느낌이다. 숙취 예끼 이놈. 이 집 새우젓은 투명하다. 우악스러운 순댓국 옆에 깨끗한 새우젓이 시각적으로 균형을 이룬다. 머슴밥 옆 양반 반찬 같은. 매번 바뀌는 갓김치, 열무김치, 총각김치, 깻잎 장아찌 등의 밑반찬도 아찔하게 맛있다. 순수한 국물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밥은 나중에 마는 게 좋다. 반 정도 밥을 먹고 난 후에 밥을 말아서 들깨가루를 넣으면 그때부터는 탄수화물의 시간이다. 밥알이 윗니와 아랫니에 정확히 반반 달라붙어서 씹힐 때 국물은 달착지근해지고 나는 아득해진다. 현자의 시간이다. A에게 욕을 먹은 건 난데 괜히 A한테 미안하다. 나도 예의 바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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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어제 읽던 책을 폈다. 아내는 출근했고 나는 집에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