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경이가 수원 화성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침이 많이 튀었다. 그녀는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의 갈등 그리고 정조의 효심이 느껴지지 않냐며 인자 팔을 잡고 크고 작은 문을 넘나 들었다. 사도세자가 갇혔던 뒤주를 보면서 너는 살을 좀 빼야 들어갈 수 있겠다며 인자를 놀리기도 했다. 미경이가 조선시대에는 자식을 소유물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자식의 강한 자의식이 달갑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했고 인자는 송강호, 유아인이 주연한 영화 사도세자의 마지막에 소지섭이 나온 것은 정말 최악이었다며 말을 이었다. 그녀들은 영화를 각자의 남자 친구와 봤지만 지금은 둘 다 혼자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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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자는 화성 축조를 가능하게 했던 갈비를 생각하고 있었다. 화성 축조에 투입된 인부를 먹이기 위해 소를 도축하면서 수원 갈비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소는 농사 밑천이었다. 그래서 소를 잡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밥이 종교인 시절이었다. 인자는 양념갈비, 생갈비 모두 시켜서 맛을 비교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식하는 미경이와의 여행은 인자에게 언제나 남는 장사였다. 돈은 반반 냈지만 음식의 팔 할은 인자가 먹었으니까. 미경이 입장에서도 맛있게 먹는 인자를 보며 식욕이 생겼으니 둘은 천생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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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이 찾은 갈빗집 이름은 조선 갈비가 아니라 신라 갈비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받았을 때 해는 보라색이었다. 갈비는 채 5분이 지나지 않아서 나왔다. 양념갈비에서는 달콤한 간장 향이 났고 생갈비에서는 시큼한 피 냄새가 났다. 불판 위에서 갈비가 구워질 때 인자는 아득했고 미경이는 사진을 찍으며 SNS에 남길 글귀를 생각했다. 양념갈비는 마늘과 함께 먹었을 때 어른의 맛이 났고 생갈비는 소금에 찍었을 때 우유 맛이 났는데 흰쌀밥이랑 먹었을 때 제일 맛있었다. 제법 고급스러운 식당 분위기에 걸맞게 갈비는 종업원이 직접 구웠다. 갓 쉰이 넘었을까. 아주머니의 손은 재빨랐지만 얕은 미소 뒤에 고단한 생활이 느껴졌다. 이혼 후 어린 자식 둘을 키우느라 10년 넘게 하루에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했다던 어느 아주머니의 인터뷰가 생각난 인자는 고기를 굽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저도 모르게 촉촉한 눈을 두 번 정도 깜빡였다. 어쩐 일인지 오늘은 미경이가 후식으로 갈비탕을 먹자고 한다. 이제야 말이 통한다며 인자는 주문 벨을 두 번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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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둘레길은 꽤 길어서 인자는 허벅지에 피로감을 느끼며 일어났다. 냉장고에는 물밖에 없었고 라면은 며칠 전에 떨어졌다. 야속하게도 그녀의 배는 자주 고팠다. 밖은 이제 제법 추웠고 추위를 많이 타는 그녀는 플리스 재킷에 플리스 바지를 챙겨 입었다. 주위의 손가락질이 두려워 이제는 발길을 끊었지만 그녀는 이 일본 브랜드 플리스가 정말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의 시선에 대한 주관이 매우 뚜렷한 사람이라 그 브랜드 옷을 다시 사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남들이 싫어하는 건 절대 안 하는 사람이다. 편의점에서 물과 라면을 사고 나왔을 때 저 멀리 로또 가판대에 줄이 길었다. 요행을 바라지 말라는 아빠의 말은 촌스러웠고 요행 없이 인생 역전을 바랄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그녀 차례가 왔을 때 천 원짜리 지폐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채로 잘 잡히지 않았다. 팔목까지 주머니에 넣고 휘젓고 나서야 천 원짜리 일곱 장은 로또 일곱 게임으로 바뀌었다. 가판대 뒤에서 로또를 판매하는 아주머니는 구겨진 지폐와 인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로또 일곱 게임과 함께 사탕 하나를 건넸다. 청포도 맛이었다. 아주머니는 인자를 보며 촉촉한 눈을 두 번 정도 깜빡였다. 안자의 플리스는 오늘따라 유난히 낡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