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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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인격의 깊이가 모자라 아직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고 확신 비슷한 것이 생겨도 상대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업신여기지 않고 설득하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실수도 많이 합니다. 그래서 계속 책을 읽습니다. 가방끈 짧고 배경도 보잘것없는 제가 종종 주제넘는 글을 남겨 마뜩잖아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바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발버둥 치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측은한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쌓아가다 보면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듯이 돌연 괜찮은 글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습니다. 그 기대가 결코 몰염치한 것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책을 읽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성적이 눈에 띄게 빼어난 적도 없었고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도 없었습니다. 일단 주류에 머물 수 있으면 어떤 친구를 사귀어도 괜찮았습니다. 제 색깔은 없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체득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 없이 살았습니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계속 책을 읽습니다.
조금 안다고 생각했을 때부터는 품위가 없어졌습니다. 상대의 앎을 무시로 깔보거나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어설피 아는 것은 무지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도 계속 책을 읽습니다. 착각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실제로 제 앎과 삶이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 느낌, 도취로 계속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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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누군가의 노력을 폄훼, 곡해하고 그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얕잡아 매도했던 제 과거가 생각나 속죄하는 심정으로 글을 남깁니다. 같은 무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계속 책을 읽습니다.
모두에게 허락된 공간이지만 누군가는 나로 인해 불쾌할 수도 있겠구나, 매사 경계하며 사용해야겠다 생각합니다. 봄과 여름을 빼앗겼지만 여전히 가을과 겨울이 남아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올 가을에는 작년 가을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