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시대의 초상

by Charlie Sung



비행기가 시대의 초상임을 알기까지 내 신분은 여러 번 바뀌었고 몇 해인지 모를 시간도 함께 흘렀다. 초등학교 다닐 때 서울에서 열리는 과학 경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난생처음으로 비행기를 탔고 압도적인 속도감에 주눅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입상 가능성이 아닌 허영심이 부추긴 여정이었기에 나는 더 작게 움츠렸다. 형편에 비해 항공권 가격은 무거웠고 비행기가 뜬 자리에는 부모님을 향한 감사함과 미안함이 뭉게뭉게 흐렸다. 비행기는 가볍게 날아올랐지만 묵직한 힘으로 쿵, 내려앉았다. 내 첫 비행은 내 가정 형편과 허영심의 초상이었다.

예전의 나에게 비행기는 하나의 세상과 다른 또 하나의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이자 중간 지점에 위치한 반 존재였다. 떠나 온 곳에도 부재하고 도착할 곳에서 역시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그 안의 우리 역시 이곳에도 저곳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또 부재하지도 않은 반 존재였다. 곧 돌아올 내 땅에 대한 민망한 향수와 도착할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뒤섞인 상태가 완전한 존재의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무리되지 않은 시작이었고 채 도달하지 못한 출발이었기에 비행기에 앉아 있는 시간은 무료하지는 않았어도 반쯤 무의미했다. 하지만 내 지갑을 스스로 채울 수 있게 되고 다시 비행기를 타기 시작했을 때 비행기와 그 안의 나는 온전한 존재임일 알기 시작했다. 감정의 오고 감과 뒤섞임은 존재의 본래 그러함이고 비행기 안 세상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작은 사회였다. 비행기는 우리 자신 그리고 시대의 초상이었다.

군대를 막 전역하고 너도나도 배낭여행을 떠날 때 나는 모험심이 동하기보다는 시대의 평균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 조바심이 났다. 모험심이 동하기에 내 눈은 세상에 어두웠다. 세상은 아직 작았다. 반면 나는 오랫동안 타인의 시선 안에서 살았다. 파리, 런던, 로마 등 유럽 도시들은 시대의 평균이 제시하는 여행지였으며, 대학생 신분으로 떠나는 배낭여행은 평균의 여행 형태였다. 평균이 부과하는 무게는 감당하기 힘들었고 나만큼이나 평균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부모님의 도움으로 다시 한번 비행기에 올랐다. 나의 여행이자 부모님의 여행이었다. 탑승권에 나타나지 않은 진짜 목적지는 ‘평균’이었다.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평균을 짊어지기로 했다. 대학을 다닐 때도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지금도 당시에 쫓았던 그 평균을 쫓고 있다. 평균이 종말 하지 않는 이상 나는 평균을 벗어날 수 없겠지만 난 이미 평균이 싫지도 않은 평균의 인간이 됐다. 아직도 꽤 많은 사람이 단지 평균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여름휴가로 해외여행을 택하고 있음은 편하게 말해지지 않는 진실이다.

비행기 좌석 판매에는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가격의 마술이 작동한다. 좌석을 구매하는 시점, 항공 마일리지 적립 규모, 예약 변경에 대한 제약의 정도에 따라 같은 비행기에 탑승하는 사람들끼리도 지불하는 가격이 달라진다. 또한 비행기는 좌석 등급에 따라 많게는 서너 개의 구획으로 운영되는데 배우자와 일등석에 앉아 샴페인을 마시며 신혼여행 길에 오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근사하다.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학교에서 배운 회사의 업이고 비행기에서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이나 주위 승객에 대한 배려 역시 학교가 가르친 공동체 의식이다. 운항 승무원과 객실 승무원이 자격을 갖추기 위해 배우는 항행 안전, 객실에 관한 안전 규칙 역시 비행기의 역사가 축적되는 동안 함께 발전하면서 탑승객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탑승하는 우리가 그 교육의 내용과 질을 신뢰하면서 비로소 그 안의 모두가 안전에 도달한다. 교육이 상호 신뢰를 구축하며 비행기의 안전을 유지한다. 따라서 비행기는 우리가 받은 교육과 학습의 총체이다.

비행기는 작은 운명 공동체이기도 하다. 주위 승객의 편안한 여행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소극적이라면 위기에 직면했을 때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극적이다. 객실에도 해열제나 소화제 등 간단한 약이 구비돼 있기는 하지만 중증 질환의 응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운이 좋게도 의사나 간호사가 탑승하고 있다면 상황은 의외로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환자의 증상과 전공 분야는 달라도 의사나 간호사가 타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 반대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는 승무원을 비롯한 주변 승객의 응급조치가 절실하다. 복도에 앉은 승객, 창가에 앉은 승객 그리고 비상구에 앉은 승객까지 손을 보태야 공동체의 구성원을 지켜낼 수 있다. 상상만으로도 죄스럽지만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십중팔구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항공기 사고의 특성상 같은 비행기에 탑승한 모두는 잠재한 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커다란 팀인 셈이다. 그러니 탑승구 앞이나 객실 내에서 은근한 신뢰와 의심이 섞인 시선을 교환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몇 해 전, 발리에서 방콕으로 가는 비행 편에서 심한 터뷸런스를 만났다. 승객을 안심시켜야 할 승무원조차 공포에 떨며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더해져 객실은 아수라장이 됐다. 산소마스크가 내려오고 비행기가 급강하를 반복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명이 가득한 기내에서 승무원은 승객과 다름없이 두려움에 몸서리쳤고 누구도 그 두려움을 탓하지 않았다. 두려움은 공평했다. 옆자리에 앉은 연인은 서로에게 영원한 사랑을 고백했고 그 뒤에 앉은 노부부는 손을 꽉 잡고 기도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울었고 부모들은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더 크게 울었다. 혼자 여행하던 나는 객실을 둘러보며 이들과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맹렬한 생의 의지를 느꼈다. 비행기가 방콕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을 때 우리의 운명은 다시 쪼개졌지만 구름 위에서 우리의 운명은 하나였다.

톰 행크스 주연의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는 영화는 2009년에 발생한 US Airways의 불시착 사고를 다뤘는데 특히, 기장의 책임감과 전문성을 비중 있게 그렸다. 당시 US Airways 1549편은 승객과 승무원 총 155명을 태우고 미국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해 샬럿으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이륙 직후 새떼와 충돌하여 엔진에 불이 붙으면서 센트럴 파크 인근 허드슨 강에 불시착했다. 이 사고는 전원이 생존하면서 허드슨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톰 행크스는 이 영화에서 기장으로 열연했다. 항공사에 막대한 손해를 안긴 당시 기장의 불시착 결정은 승객과 승무원 전원을 살리기 위함이었고 승객과 승무원은 아찔한 위기를 뚫고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처한 상황이 특수하지만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한 대중에게 지도자의 책임감과 전문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 국내외에서 발생한 수많은 대형 선박 사고의 선장, 항공기 사고의 기장이 얼마나 이기적이었고 무능했는지를 목도한 우리가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의 자질에 무관심한 것은 슬픈 모순이다. 선출된 권력과 지도자가 부패하여 사익에만 몰두하면 대중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아프게 배웠다. 선출되지 않은 기장이 오히려 선출된 권력자들보다 대중의 생명과 안전을 더 위하는 상황을 그들이 보장받는 높은 급여나 사회적 지위를 이유로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권력자들이 가진 재물과 견제받지 않는 특권은 그와 비할 바 없이 거대하다. 나는 다만 그들의 책임감과 전문성을 우리 지도자들이 잘 새겼으면 하는 소망뿐이다. 톰 행크스처럼 선한 인상이라면 더 좋겠다.

배낭여행을 떠나던 나는 비행기에서 평균에 뒤지지 않고자 다짐했고, 산소마스크가 내려오고 비행기가 급강하를 거듭할 때 옆에 앉은 연인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으며, 155명을 책임진 기장은 전원 생존을 목표로 허드슨강 위에 불시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비단 비행기라는 특수한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비행기는 우리 일상의 초상이고 그래서 더 애틋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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