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by Charlie Sung

3일 내내 열렬히 반짝이던 태양과 갈라타 다리 주변의 비릿한 바람 냄새가 벌써 그리워집니다. 선거는 참 좋은 것입니다. 연대의 가치 그리고 힘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알게 하고 연휴도 주기 때문입니다. 오래간만에 학생이라도 된 것처럼 온 힘을 짜서 여행하고 왔습니다.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이 예전만큼 서럽지 않은 것은 비단 나이 탓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딛고 서 있는 자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우쳤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객관적 조건을 부정하고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이스탄불에서는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교통카드가 없는 나를 시내까지 공짜로 데려다준 러시아 누나들이 있었고 술 마시러 가자며 온갖 수작을 부리던 사기꾼도 있었습니다. 끝내 고사하는 저에게 욕까지 퍼부었고 그 바람에 흥을 놓칠 뻔했지만 한국인 미남자를 만나 그의 첫사랑 누나에 대한 사연을 들으면서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 친구의 순수함은 제가 가져 보지 못한 정도로 투명했습니다. 96년생의 사랑은 가슴 정말 두근거리더군요.


라마단의 끝자락이라 마치 축제를 즐기는 것 같은 이스탄불 사람들 사이에서 제 마음에도 열이 올랐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찰나에 교통사고를 목격했습니다. 딸과 손녀를 앞세운 할머니께서 횡단보도가 없는 길을 건너다 그만 사고를 당했습니다. 혼절한 딸과 비명을 내지르는 손녀의 모습에 저도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디 많이 아프지 않고 그들 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무단횡단은 하지 마세요.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대항해 시대라는 게임에 잠시 빠졌습니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기본 콘셉트에 매료돼서 나중에 성인이 되면 반드시 직접 가 봐야겠다며 다짐한 기억이 납니다. 이스탄불도 그중의 하나였습니다. 거대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고 동서양을 포괄하는 문화 용광로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그 영광이 흔적으로만 남아 있습니다만 이들이 가진 역사에 대한 자부심은 엄청난 것 같습니다. 옛 성취와 영예에 매몰된다면 문제겠지만 그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근간으로 삼는 터키인들을 보면 약자의 역사를 가진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 여기’가 제일 중요하긴 합니다만.


현재 터키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종교, 정치 분리를 기본으로 하는 세속주의 그리고 이들의 중재자를 자처하는 군부가 다양한 양상으로 갈등을 주조하고 있습니다. 물 부족 현상도 날로 심해져서 북부 사막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단수도 빈번하게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쿠데타를 진압한 현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대한 우려도 가볍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정도, 각종 경제 수치는 개선되고 있습니다. 한 번 번성했던 나라, 민족은 유전 자안에 일류였던 시절을 저장해 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형제의 나라 터키가 다시 잘 사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콩고물 좀 떨어질지 또 아나요.


마지막 날 저녁에 탁심 광장 끝자락에 있는 프랑스 거리에 갔습니다. 가파른 언덕이 파리의 몽마르트르를 닮아서 프랑스 거리라고 불린다는데요. 잔잔한 라이브 음악과 에페스 한 잔 마시면서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터키가 월드컵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월드컵 열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개막전 해외 시청 전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4년 뒤에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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