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

by Charlie Sung

아빠를 아버지라고 부른 지 어느새 10년이지만 내가 어른이 됐다는 생각뿐, 아버지가 늙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참을 수 없이 어른이 되고 싶었고 아버지가 영원히 청년이길 바랐다. 내 세계 안에서 내 시간과 아버지의 시간은 다른 차원에서 흘러갔다. 하지만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나와 아버지의 시간은 정확하게 같은 속도로 흘렀고 내가 자란 만큼 아버지는 나이 들었다. 아버지는 이제 육십이다. 촘촘한 머리숱과 탄탄한 가슴팍을 뽐내는 사진 속의 아버지가 익숙한 내게 육십은 낯설고 인정하기 싫은 숫자다. 환갑을 기점으로 비로소 나이 든 아버지를 바로 본다. 마침내 나의 시간과 아버지의 시간이 포개졌다.

생일은 지나서 쇠는 것이 아니라는 어머니 말에 부랴부랴 준비한 여행의 목적지는 제주도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제주의 바다였다. 아버지는 바다가 없는 시골 출신이어서 유독 바다를 좋아한다. 제주도는 바다 건너에 있는 바다라서 더 좋다고 했다. 더 바다 같다고 했다. 광주에서 제주로 바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지 못해 출발 하루 전 부모님이 서울로 오셨다. 부지런하지 못한 놈이라고 자책했던 나와 달리 부모님은 오래간만에 부모 노릇할 좋은 기회라 생각하셨나 보다. 정점에 이른 폭염의 복판을 뚫고 도착한 부모님은 김치와 밑반찬을 잔뜩 둘러메고 손을 흔들었다. 묵직한 먹거리를 머리에 이고 휘청휘청 우리 집에 오셨던 외할머니가 생각났고 나도 그때의 어머니처럼 타박 반 감사 반으로 음식 보따리를 받아 들었다.

아버지는 둘러앉은 식구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지 밤새 너털웃음이다. 그 밤 거실 네 귀퉁이에 앉은 우리는 아버지의 청년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연애할 때부터 아이를 갖고 싶었다고 했다. 지금에서야 본인이 꽤나 엉큼했다고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아버지께 어머니는 아내이기보다 본인 아이들의 엄마였다고 한다. 훌륭한 엄마로서의 자질을 어디서 발견했냐는 내 질문에 ‘과일을 잘 깎아서…’라고 얼버무리는 바람에 어머니가 토라질 뻔했지만 그 확신에는 흔들림이 없었단다. 하여간 찬란했던 총각 생활의 청산은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것이었다. 어떤 시간이 끝나면 다른 어떤 시간은 시작된다.

제주의 날씨는 맑았고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바다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한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제주 해안도로 일주다. 공항을 중심으로 바다를 끼고 제주를 시계 방향으로 빙 둘러보기로 했다. 짙다 못해 검푸른 함덕 해변을 지나 침묵같이 고요한 월정리에 들렀다. 갈치 요리가 유명한 집이 있어서다. 뽀드득뽀드득 은빛 갈치 회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갈치 회와 갈치조림을 드시던 아버지는 문득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손님상에 놓인 갈치 한 토막을 곁눈질하며 온 형제가 군침만 흘렸다는 낡은 책 같이 오래된 이야기다. 아버지는 갈치를 보면서 그 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시간이 흑백사진처럼 내 눈앞에도 아른거렸다.

날씨가 조금 선선해진 오후에 가려고 성산 일출봉을 아껴 두었지만 기온은 좀체 낮아지지 않았다. 30도를 훌쩍 넘어가는 데다 바람도 불지 않아 숨이 턱턱 막혔다. 성산 일출봉 등반을 강행하는 것은 차라리 불효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효도를 멈출 수는 없는 일이라 섭지코지에 가서 전동차를 빌려 타기로 했다. 맙소사, 진즉 섭지코지에 올 걸 하며 이마를 탁 친 것은 달리는 전동차를 관통하는 경쾌한 바람을 맞고 나서의 일이다. 짧은 머리의 아버지나 긴 머리의 어머니나 중간 길이의 나와 내 동생이나 머리카락과 함께 땀방울을 휘날렸다. 바다와 바람이 만들어낸 기찬 궁합에 아버지는 기어이 방언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따, 시원하다.”

둘째 날에는 표선을 지나 서귀포 해안을 따라 움직였다. 새벽녘 제법 시원한 바람을 맞고 아침에는 미역국을 먹었다. 향긋한 멍게 미역국을 드신 아버지는 이제야 생일 같다고 했다. ‘사람이 70살 사는 이, 예로부터 드물다’며 환갑을 대단한 경사로 여기던 시절은 지났지만 생일상에 미역국이 빠질 수 없다. 휘파람이라도 불어 제칠 것 같은 표정으로 우리 가족은 노래를 듣고 라디오를 듣고 차창으로 스미는 제주 소리를 들었다. 협재 근처에는 제주 사는 후배가 추천한 흑돼지 전문점이 있다. 볼이 미어지게 쌈을 밀어 넣고도 다투듯 다음 쌈을 준비할 정도로 맛 좋은 곳이다. 아버지는 언젠가 나와 내 동생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제아무리 비싼 고기라도 얼마든지 사주 마고 약속했다. 푸짐한 쌈을 막 입에 넣은 부모님을 보고 생각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부모님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게 될까?

‘주문은 해수광?, 맹글엄시난 호꼼만 기다려주십써 예’ 서귀포 시장의 소문난 크로켓 가게 귀퉁이에 적힌 글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주 말이 신기한지 소리 내 읽어 본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뜻이지?”

“줄 긴 거 봐. 이게 크로켓 맛을 보장하는 거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거니 받거니 한다. 초조하고 따분한 시간을 견디고 마주한 고로케 맛은 시큰거리는 다리 통증을 잊게 할 만큼 감동적이었다. ‘호꼼만’은 아니었지만 값어치가 충분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날 때 분만실 밖에서 꼬박 10시간을 기다렸다. 지금은 끊어버린 담배도 두 갑이나 피웠다고 한다. 나중에서야 10시간을 기다린 걸 알았지만 당시에 그 긴긴 시간이 ‘호꼼만’ 같았다고 했다. 그리고 태어난 첫아들인 나는 고로케와 비교할 수 없이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 제주에서만 난다는 감귤 막걸리를 한 잔씩 앞에 두고 우리는 웃고 또 웃었다. 모처럼의 기다란 웃음이었다. 동생은 양곤에서, 나는 호찌민에서 돌아온 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고 아버지는 건강하게 환갑을 맞았으며 어머니도 뽀얗고 탱탱한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무치는 그리움은 끝났고 명랑한 우리만 남았다. 행복하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아버지의 육십 년 중에 지금은 몇 번째로 행복한 순간일까.

“아버지, 기분 좋아?”

“캬, 술맛도 좋고 오늘이 태어나서 제일 좋다!”

아버지 나이는 이제 꼭 육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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