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를 읽다

by Charlie Sung

격랑의 한국사 복판을 맨몸으로 산, 리영희 선생의 삶은 크게 두 부분에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혹한 냉전 시대에 객관의 시각을 도입한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당시는 상대 이념의 장점을 논하기만 해도 처벌하고 표현의 자유에 제약을 가하던 흑과 백의 이분법이 지배하는 시절이었습니다. 선생은 이에 굴하지 않고 두 이념의 장점을 취해 제3의 체제로의 변증법적 합일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객관적이라는 이유로 탄압받으면서도 객관의 위대함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지식인 사회뿐만 아니라 당시 대중도 왜곡된 시각에서 탈피해 국제 정세를 바로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이 말씀하신 지식의 역사성, 사회성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충실한 보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진실, 오직 진실에 천착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모든 것을 회의하고, 오로지 진실에만 복무하겠다.’는 그의 신념에 우리는 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이 치열하게 희구했던 ‘진실’ 그 자체에 대한 우리의 냉소와 무관심은 현상 넘어의 실체를 은폐함으로써 부정의에 맞서는 우리의 연대를 시종 방해합니다. 권태선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작금의 우리는 증거 유무, 사실 여부보다는 ‘사실로 느껴지는 것’, ‘사실이었으면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감정과 믿음에 호소하는 미디어들의 세례로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어렵게 됐습니다. 이른바 ‘탈진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란된 진실 앞에 서있는 우리는 선생의 삶과 신념을 자양분 삼아 진실 회복을 위한 연대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상기 두 가지 측면이 주로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에게 그리고 학문을 업으로 하는 이에게 영감을 준다면 저를 비롯한 범인들을 깨우치는 선생 삶의 일면도 있습니다. 선생의 삶에 대한 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냉전과 이념 간 갈등의 양태가 변색한 지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 선생 삶의 그리고 선생 가르침의 현재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변방성의 적극적 극복입니다. 선생은 지연, 학연, 혈연으로부터 혜택 받지 못했습니다. 이북 출신에다 남한에 남은 일부 피붙이조차 호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가피하게 택한 해양대학 졸업장으로는 당대 유수한 대학 출신이 으레 받는 우대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공부량과 탄압을 무릅쓴 단호한 글쓰기를 통해 주류 학문 사회에 건강한 지적 자극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주류 학문, 지식인 사회에서 주역을 일임하기에 이릅니다. 당장의 주류가 아니라도 포기하지 않는 공부와 노력을 통해 주류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또한 주류 사회에 진입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생은 삶을 통해서 실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외된 사실 자체에 주눅 들지 말고 분연히 자신 신념에 복무하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선생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둘, 비판의 자세입니다. 선생은 타자를 비판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본인이 공부하고 글을 쓰는 데에 철저히 투영시켰습니다. 타자에 대한 비판, 비난은 쉬우나 이를 통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없다면 자신에게는 불쾌한 혐오만이 남습니다. 하지만 타자 비판을 통해 나를 비추고, 나를 반성할 수 있다면 스스로 진일보하면서 그 비판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대립하는 이념 각각의 패착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선생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었습니다. 그리하여 개선의 의지를 비장하게 추동하였습니다. 선생이 말씀하신 타자 비판의 순기능을 발견하게 되는 지점입니다.


셋, 독서에 대한 선생의 열렬한 의지가 그 마지막입니다. 선생은 ‘독서를 통해 자신의 단단한 지적 몽매가 한구석씩 깨어지는 순간의 감격은 거의 종교적 희열과 같다. 그 과정을 통해서 사람은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통찰력과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자유인이 되기 위해 애써 독서하는 삶을 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탈진실의 시대, 가짜, 거짓 뉴스가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가 단단한 지적 몽매를 깨고 실체적 진실에 한걸음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선생이 말하신 ‘애써 독서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진실 찾기가 어렵더라도 필요악적인 대안으로써 부정의를 택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선생께서 삶을 통해 보여주신 진실 추구에의 도정을 삶의 순간순간마다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진실 추구가 지금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상의 은사’로서 선생의 가르침은 현재적이고 또 미래적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육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