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

by Charlie Sung

불혹이 먼 미래가 아니게 된 지금 이 순간에도 후회는 청산 불가능한 불량 채무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며, 그 후회는 시시각각 불행이라는 옷으로 갈아 입고 제 삶을 육박해 옵니다. 후회는 전방위적으로 제 삶과 각축합니다.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수없이 반복했던 선택 중에 과연 바른 선택이 있기나 할까.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때 저는 단 몇 분이 안 되는 찰나의 시간에서 조차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미련을 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가지 않은 길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는 지금 삶의 행, 불행과는 무관하게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한 선망이나 기대 같은 감정에 더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는 지금 여기를 최선의 자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자정의 도서관 속 노라와 저의 출발점은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 단테가 설계한 연옥과 닮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우리는 과연 다른 삶을 살아 볼 기회를 얻어 보게 될까요. 죽기 직전에라도요. 이를테면 Rock Star가 되어 수많은 SNS 팔로워를 거느린다거나 유명한 연예인과 세기의 연애를 해 본다거나 운동선수로서 불멸의 기록을 남긴다거나 하는 기회 말입니다. 소설 속 노라는 운이 좋게도 그런 삶을 제한적이나마 살아봅니다. 어쩌면 작가는 노라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소망에 대해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삶의 어느 단계에서든 우리는 노라와 같은 꿈을 꾸게 되니까요. 부와 명예 그리고 인기는 평범한 대다수 인류의 영원한 숙원임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보통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숙원이긴 하지만요. 노라의 다양한 체험을 통해서 독자가 얻는 아련하기도 하고 아찔하기도 한 대리만족이 이 소설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작가가 소설을 통해 분명히 보여 주듯이 비극이나 실패가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알려진 바가 없을까요? 오류가 없는 삶이? 아닙니다. 세계 최대의 부호도 가정 불화를 겪고, 탁월한 운동 능력을 가진 스포츠 스타도 질병으로 신음합니다. 악의적인 소문에 생채기 끊이지 않는 유명 연예인의 삶은 또 어떠합니까. 매 순간 행복한 삶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삶에서 슬픔은 기본 조건입니다. 슬픔은 내가 한 선택의 직접적인 결과나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인생사 자연스러운 부산물일 뿐입니다. 그래서 자책하며 고통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슬픔이 기본 조건이라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삶을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요. 슬픔을 아주 무시하고 살 수는 없겠죠. 우리는 가끔은 슬픔을 정직하게 대면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실수를 줄여 나가기도 해야겠지요. 또 슬픔을 마주하면서 그에 비친 빛나는 행복감에 더욱 감사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슬픔이 행복을 훼방하게 두면 안 됩니다. 단호하게 슬픔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자정의 도서관에서 마침내 본연의 삶으로 돌아왔을 때 노라는 비로소 슬픔에서 눈을 거두고 ‘주위에 있는 일상의 것'에 주목하기 시작하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있어서 좋은 것'에, 그것이 주는 ‘사소한 행복'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입니다.

작가의 상상을 빌려서 졸문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의 삶을, 자정의 도서관에서 제가 직접 선택한 삶이라고 믿고 살겠습니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내 삶에 주어진 기본 조건임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사소한 것에 감사하고 작은 행복에 더욱 집중하겠습니다. 이것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던지는 확고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자정의 도서관과 그곳에서 영양만점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저만의 사서를 잊겠습니다. 저는 자정의 도서관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중 우주 속 다른 차원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또 다른 ‘나'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꿈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라. 상상했던 삶을 살아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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