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삶이 누적돼 자연스레 도시가 된 모스크바와 달리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골목도 가지런한 계획도시입니다.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민족의 서구화, 근대화, 계몽화를 위해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공표했을 때 모두 미친 짓이라고 했답니다. 늪이 대부분인 지역이었기 때문이죠. 그의 첫째 부인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두고 ‘그곳을 텅 비게 해라’라고 저주한 것도 이 그 계획의 무모성, 인위성을 비판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입이 조금 길었지만 이곳은 서유럽을 향한 러시아의 열등감의 상징이자 러시아 근대의 본격적인 태동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 혼란의 시기를 대변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텍스트’의 산실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 읽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결코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우선은 그 발음하기 조차 어려운 등장인물들의 긴 이름에 질려버렸고 종교적 추임새와 당시의 교양을 투영한 것이 분명한 등장인물들의 말투는 제가 정말 중요한 말과 의미에 도달하는 것을 막는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울림이라고 표현하기에는 훨씬 거대한 충격을 어린 저에게 남겼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도발이었고 예상하지 못한 치밀함이었습니다. 그 작품들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도스토예브스키의 작업실에 가보겠다는 의지를 다진 적은 있지만 마치 선망하는 연예인과 결혼하고 말겠다는 다짐처럼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우연의 힘이 우세하게 작용하면서 마침내 제가 원하던 공간에 오게 됐고 정재승 박사가 말씀하신 것처럼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가 내쉬던 공기 입자의 아주 작은 일부를 제 폐에 여과시키는 영광을 누렸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의 작업실이자 가족이 머물던 집은 생전의 가난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으나 인류 문학에 그리고 정신에 영향을 끼친 그 철학만은 그 위대함 그대로 방문객의 발길을 붙들었습니다. 각 공간에 대한 설명을 세세히 듣고도 시간이 남아 출구에 앉아 ‘죄와 벌’을 읽었습니다. 센나야 광장 앞을 비틀거리는 청년 라스콜리니코프 안에서는 엄청난 것들이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도입을 읽을 때면 시간을 도무지 인지할 수가 없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 외에도 에르미타주 미술관, 네브스키 대로, 네바강, 그리스도 부활 성당 (피의 궁전), 성 아이삭 성당, 청동 기마상, 카잔 대성당, 300주년 기념 공원 등 굵직한 명소들이 있어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구 소련 시절의 향수를 간직한 카페나 레스토랑, 펍 등은 이념을 떠나 과거를 향한 인류 보편의 아슴한 정서를 자극하기도 합니다. 마치 베트남의 그것처럼요. 사람들 표정이 딱딱하고 태도가 무뚝뚝한 건 타인을 해하거나 위협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특유의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누적된 나이테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 어지간한 서유럽의 도시보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또 갈 날이 있을 겁니다. 아내와 아이들 손잡고 도스토예프스키 거리를 꼭 걸어 보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이빨 털 것이 많으니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빠로서의 위상은 좀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