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고 예민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성장 환경이 나를 돕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는 윤택한 편이었지만 부모님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다. 싸움이 빈번하다기보다는 엄마가 항상 나빠 눈치를 봐서 자주 긴장감이 흘렀다.
원래 그런 건지 환경이 그렇게 만든 건지 나는 어릴 때도 좀 우울했다. 다만 어려서 ‘우울’이란 단어를 몰랐을 뿐이다. 저녁노을을 볼 때면 울적해져서 울었고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자주 느껴 엄마에게 '가슴이 답답하다'라고 하기도 했다. 엄마는 내 심장에 문제가 있나 해서 그를 위한 병원을 찾았고 당연하지만 '어떤 문제'도 찾아낼 수 없었다.
나는 소위 IMF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아빠가 하던 가게가 부도를 맞아 외벌이였던 집안은 갑자기 궁핍해졌다. 가난이란 게 뭔지 그나마 남아있던 우리 집의 얕은 토대까지 다 휩쓸어 가버렸다. 부모님은 불화 끝에 별거하게 되었고, 집에는 먹을 것이 떨어졌고, 전기가 있다가 없다가 했다.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수많은 사건들로 인해 나는 도리어 악에 받쳐 독하게 고등학생 시절을 버텨냈다. 서울에서 알아주는 대학에 차석으로 합격했지만 남들은 그 즐겁다는 시기인 20살 처음으로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의사는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긴장이 좀 풀어지고 처음으로 믿고 의지하는 남자 친구라는 존재가 생기니 켜켜이 묵은 감정이 한 번에 폭발해 버린 것 같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를 많이 괴롭혔다. 화가 쉽게 나고 화가 잘 수그러들지도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몇 시간을 울었다. 이때는 우울하다기보다는 감정이 제어되지 않았다. 수개월 심한 증상을 겪은 후에야 좀 나아졌다.
두 번째 우울증은 대학교 4학년 때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부터 시작되었다. 교환학생을 한 학기 다녀오며 찐 10kg의 살을 빼다 보니 음식에 대한 강박이 심해졌고 섭식 장애가 생겼다. 먹는 것이 정상이 아니니 정신도 점차 피폐해졌는지, 아니면 우울증 때문에 섭식 장애가 생긴 건지 전후 관계를 알 수는 없다.
생각이 자꾸 이랬다, 저랬다 바뀌고 하루에도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락내리락했다. 결국 대학 생활 내내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졌고, 그러고도 자꾸 '헤어지지 말자', '그냥 헤어지자' 말을 번복하며 충동적인 행동을 이어나갔다. 갑자기 멍청해진 것처럼 판단이 서지 않아 나쁜 사람도 만나고 나쁜 일도 당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때 즈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탓에 나뿐만 아니고 엄마도 당신대로 우울해졌다. 원래도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던 엄마였지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더 틀어져 버렸다. 엄마도 심정적으로 우울증이 심한 나를 돌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나는 나름의 돌파구라고 생각하며 아빠와 살겠다고 했다. 엄마가 이사 나가고 아빠가 이사 왔지만, 아빠는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았다. 동생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느라 서울을 떠나 있었다. 난 영화에 나올법한 바퀴벌레가 자주 나오는 반지하 방에서 우울증이란 거대한 어둠과 매일 밤 싸우며 혼자 지냈다. 모두가 나를 버렸다는 비뚤어진 분노는 체념이 되어갔다.
지금 보면 최악이었는지 최악은 아니었는지 알 수는 없다. 월세는 내야 하는데 돈은 없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도 어쨌든 일을 해야 했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은 우울증이라도 일을 할 순 있다곤 한다는데, 문제는 그에 드는 에너지가 너무 많았다. 나는 당시 영어 강사로 일했는데, 매일 학원에 일을 하러 갈 때 머리를 감고 옷을 입는데만 3시간이 걸렸다. 팔이 천근만근 잘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히 일하던 곳이 잘 되는 학원이라 일하는 시간이나 강도에 비해 보수가 나쁘지 않았지만 월세와 생활비를 하고 나면 내게 여윳돈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 정도를 살다가 결국 엄마가 사정을 다 알게 되었고, 엄마도 나도 많이 울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엄마와 살게 되었다.
이 정도가 내 우울증에 대한 24살까지의 서사이다. 인생 자체가 평탄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성격이 원래 긍정적인 편도 외향적인 편도 아니라 더더욱 사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경험은 교훈을 남기는 법이다. 우울감과 함께 사는 법을 서서히 배웠고, 항상 내 심리 상태를 관찰했으며 그렇게 거의 10년 가까이 큰 문제 없이 살았다.
우울한 감정은 계속 우울의 얼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화, 분노, 짜증과 같은 감정이 컨트롤되지 않기도 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이인증 증상을 안기기도 한다. 그렇게 나에게 세 번째 우울이 찾아온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이다.
이번에 내게 찾아온 우울은 불안의 모습이었다. 타인을 대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심 공포스러웠고, 머리는 밤낮없이 빙글거리는 동시에 다소 멍한 상태를 지속했다. 내색한 사람은 별로 없지만 밤에는 매일 술을 마시고서야 잠이 들었다. 모든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지만 그간의 우울증 경력을 바탕 삼아 또 정상인 척을 할 수는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 시기가 조금씩 지나가고 있을 즈음 또마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