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를 만나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고 프리랜서 프랑스어 강사로 일하던 나는 순식간에 실직 상태가 되었다. 서울 한복판이긴 했지만 혼자 살고 있고 있었던 나는 수업이 없으니 학생을 만날 일도 없고 집 밖으로 나오길 꺼리는 친구들 때문에 대개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경제적인 스트레스와 외로움이 겹치니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유행에 많이 개의치 않는 친구가 그나마 한 명 있어 그 시기 꽤 자주 만났고, IT업계에서 일하는 그녀는 내 사정을 듣더니 자기 지인이 개발에 참여한 앱이라며 모 앱을 소개해 주었다. 자기도 요즘 심심해서 거기서 데이트 상대를 찾고 있다고. 그렇게 나는 옆 동네에 사는 또마를 알게 되었다. 그 앱을 통해 실제로 만난 유일한 남자였는데,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데이트를 시작했다.
내가 그간 사귀었던 남자들과는 달리 그는 자기 확신이 강한 타입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곧 한국을 떠나야 하는 시점이었지만 자기는 진지한 사람이며 장거리 연애도 자신이 있다면서 더 이상의 장거리 연애를 원하지 않는다는 나를 열심히 설득했다. 프랑스에 돌아가서도 본인이 약속한 바대로 돌아가자마자 나에게 영상통화를 했고, 성실하게 연락했으며 그 외에도 나에게 말한 것들은 모두 지켰다. 그렇게 그가 나에게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그의 마음을 비로소 받아들였다.
장거리 커플로 우리는 한참을 지내다 나는 코로나19로 모든 항공편이 축소되고 인천공항이 이만치 한적할 수 없을 것 같은 시기에 프랑스로 출국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돌아올 때 보건 비상사태로 인해 문제가 생기더라도 항공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서명까지 하고 말이다. 앞뒤 크게 생각한 바는 없고 이 남자와 나의 적합성(compatibilité)을 테스트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프랑스에 갔고 3개월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함께 지낸 끝에 우리는 같이 살기로 결정했다. 둘 다 이성적인 판단 기준을 갖고 움직이는 편이라, 우리에게 있어 선택지는 헤어지거나 그의 직장이 있는 프랑스에서 같이 사는 것뿐이라는 내 말에 그는 전혀 망설임이 없이 그럼 같이 살자고 했다.
그 이후 행정 절차의 모든 디테일을 열거할 생각은 없어 간단히 줄여 말하자면 나는 그와 시민 연대 조약(이하 팍스로 명명. PACS: Pacte Civile de Solidarité)을 맺고 프랑스에 가게 되었다. 팍스는 이성, 또는 동성의 성인 두 명이 만나 공동생활을 영위하고 법적 테두리 안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주는 프랑스 만의 일종의 사실혼 보장 제도이다.
또마가 망설임 없이 대답하지 않았다면 나는 프랑스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팍스는 가볍게 하는 것이라고들 하면서도 최근에도 팍스 문제로 인해 관계를 정리한 한국인 여자, 프랑스 남자 커플을 둘이나 보았으니 팍스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고 본다. 또마의 자신 있는 대답에서 나는 다시 한번 이민 올 결심을 굳혔다.
한국에 돌아와 대략 삼 개월에 걸쳐 비자를 받고 한국 생활을 정리했다. 나의 모든 소유물들은 프랑스로 가져갈 것, 버릴 것, 팔 것으로 나뉘었다. 서울 반전세 오피스텔의 가구를 팔고, 이삿짐을 싸고, 물건을 버리고, 방을 쓸고 닦으며 나는 프랑스로 떠난다는 것을 체감했다. 생각보다 불안감이 꽤 컸지만, 인생에서 불안감을 느낄 땐 그 뒤에 엄청나게 새로운 변화와 기회가 숨어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나이이기에 그 감정을 이민의 과정에서의 당연한 심리적 반응이라고 되뇌었다.
그 당시 나는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었고 한국에서도 한차례 정신과 치료를 마친 상태였다. 또 한 번 우울이라는 감정을 겪어나가는 중이었고, 그렇게 나의 멜랑콜리한 프랑스 이민은 시작되었다.
*또마와 저의 연애 이야기는 다른 시리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