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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롯H Aug 18. 2022

밀려드는 충격



또마와 나의 장거리 연애는 잘 진행되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나의 경제적 생활은 완전히 무너졌다. 사무실 겸 집으로 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서울 한복판에 오피스텔을 구했는데 더 이상 예전만큼 일이 없었다.


이사를 가버렸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엔 코로나19가 금방 끝날 것이란 희망이 조금은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매번 여름에 이사를 다니는 것이 고단해서 그랬는지 이사를 가지 않고 반전세로 계약서를 다시 쓰고 은행 대출을 받기로 했다. 대신 계약 기간을 2년 대신 1년으로 했던 걸 보면 '혹시 모른다'라는 생각이 머리에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 덕에 그로부터 10개월 후 방을 빨리 빼고 한국을 떠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렇게까지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줄 알았다면 나는 그냥 이사를 갔을 것이다. 서울시에서 무주택 청년들에게 이자를 감면해 준다고 해 첫 번째 대출 신청한 A 은행에서 대출을 거절당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계약일이 2주도 채 안 남았는데 대출 거절을 한 A 은행 담당 직원은 곧바로 휴가를 떠나버려 연락이 되지 않았고, 급히 알아본 C 은행 역시 기한이 2주도 안 남아서 신청이 불가능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B 은행으로 갔다.


다행히 B 은행에서는 내가 은행 고객 등급이 높아서 대출이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안심시켜주었다. 그간 번 돈을 차곡차곡 모으던 계좌가 있던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논리임에도 금융 제도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그렇게 사람들이 주거래 은행이 있어야 한다고들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후에도 몇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전세자금 대출은 대충 마무리가 되었고, 그렇게 대출 건이 정리될 즈음 초여름의 어느 날 핸드폰의 문자 전송음이 '띠링' 울렸다.




전달: 제목 없음

[訃告]

故 OOO 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아래와 같이 부고를 전달해 드립니다.

......


대학원생 시절 좋아했던 C 선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C 선배는 우리 과에선 흔하지 않게 키가 크고 옷차림도 좀 튀는 스타일이라 처음 만났을 때 겁을 좀 먹었었다. 그 선배는 수년 전 보자마자 나에게 대학원 입학 전에 읽으면 좋다고 고전 리스트를 적어서 건네주었다. 처음엔 '나를 압박하는 건가?' 싶었지만 학기가 시작되면서 C 선배는 선의로 후배들을 잘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곧 학교로 돌아가서 만나면 되겠지'라며 안일하게 생각하느라 연락을 미리미리 하지 않았던 나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학교에 다니던 때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한때나마 내가 심적으로 믿고 따르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은 처음이라 충격이 컸다. 2년 가까이 지우지 못하던 전화번호는 얼마 전에서야 지울 수 있었고, 그럼에도 가끔은 그 선배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기도 한다.


C 선배의 죽음 이후에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는 내 안에서 차차 덩치를 키워갔다. 반전세 덕에 월세가 조금 줄었지만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돈이 줄줄 샜다. 게다가 전세 대출을 하며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뛸 때 주변에 의지될 가족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서럽고, 항상 경제적 어려움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는 것에 얼마나 서글펐는지 모른다. 대출 거절로 반전세 임대차 계약서를 다시 쓰며 부동산 중개사 아줌마에게 푸념하듯 말했다.


"저는 이런 걸 매번 혼자서 다 해야 하는 팔자인가 봐요."


아줌마는 어쩌면 그 얘기가 자기 얘기 같아서 그런 걸까? 여러 번을 보았지만 처음으로 내 앞에서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그 무렵부터 머리가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앉으나, 서나, 누우나 어지러웠다. 토할 듯한 어지러움은 아니었다. 집이라고 멀쩡한 것은 아니었지만 집 밖에 나가면 증상은 심해졌다. 어느 날 저녁 우리 집에서 홍대까지 걸어갔다 오는데 바로 서서 걷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제야 나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진찰 후 귀에 생긴 문제가 아니라고 하며 신경과나 정신과에 가보라고 했다. 이비인후과에서 받은 진료 의뢰서로 예약을 잡아 연세 세브란스 신경과를 찾아갔다.


신경과 교수는 이런 경우는 신경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애매한 대답만을 하고 MRI를 찍어보라고 했다. 알고 보니 비용만 거의 80만 원이 든다는 것을 알고, 실손보험을 가입한 보험사에 전화했으나 거의 50만 원은 내가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가뜩이나 돈이 없는데 어쩌지'하며 걱정스럽지만 검사를 망설이고 있던 차에 오래간만에 동생과 연락이 닿았다. 알고 보니 동생도 비슷한 증상으로 1년 전 CT 촬영까지 했는데 이상이 없었고 퇴사를 한 후에 증상이 사라졌다고 했다.


나는 동생과 이야기하며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정신과에 가야 하는 문제다. 그리고 나에게 정신과는 꽤 익숙한 장소이다. 나는 그렇게 다시 정신과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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