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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롯H Mar 05. 2023

어쩌면 지겨운 우울증 이야기


한국에 다녀오고 1월 한 달은 칙칙한 유럽 겨울 날씨 때문에 우울함과 무기력함을 겪었다. 나는 체질적으로 습한 것을 잘 견디지 못해, 습할 때엔 머리가 무겁고 몸이 축축 늘어진다.


날씨가 좀 좋아졌음에도 최근 나의 우울감이 많이 올라와서, 어쩌면 프랑스에선 처음으로 정신의학과에 가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아직 우울증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고 있다. 이쯤 되니 만성화를 의심해야 할 상황이다.


아무튼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가기 위해선 우선 충동적 행동을 자제하도록 스스로를 잘 컨트롤해야 한다. 나는 울증의 시기 사이에 경도의 조증이 오기도 하는 스타일이라 그때 하는 판단은 매우 충동적이고 올바르지 못할 때가 많다.


2월에 들어오며 여러 스트레스 거리가 가중되었다. 특히 엄마, 아빠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라는 사실이 나를 많이 좌절케 했다. 엄마는 하던 일(그 일도 힘든 육체노동이다)을 그만두고 공장에 다니지만 너무 힘들다고 했고, 아빠는 급전이 필요하니 공사 현장에 나가 노가다를 했다고 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전화를 끊었지만 내심 상황에 충격을 받았나 보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60대이다.


나도 돈을 벌긴 하지만 내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의 최저임금선을 벌 뿐이라, 도저히 정기적으로 도와줄 수 없는 형편인데 그에 비해 나의 부모님은 너무 가난하다. 어쩔 수 없는 K-장녀의 운명으로 거부하면서도 이 상황에 대해 모종의 책임감을 느낀다. 내가 밉기도 하고 엄빠가 밉기도 하다.


동생에게 이어서 연락을 해보니, 일자리를 찾아주려고 노력했지만 엄마, 아빠의 나이가 너무 많아 우선 힘든 데다 당신들께 소일거리 같은 시니어 일자리 임금은 너무 적다고 하는 것이다.


상황에 단순히 좌절만 할 정도로 내가 깊이 생각할 줄 몰랐다면 여기서 대충 생각을 멈출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지라 이미 가지고 있던 생각에 덧붙여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번 주 초, 나에게 점심 식사 초대를 한 동갑내기 베트남 친구(지인?)는 이미 3살, 8살 딸 둘을 키우고 있었다. 이 점심 식사를 하며 나는 더더욱 이 생에서 어머니로서의 삶은 살지 못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좀 귀엽긴 했지만, 도저히 나는 그녀의 삶 안에서 살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마음속 어느 구석의 나는 아직도 너무도 아이 같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달까? 어머니로서의 나는 도저히 그려지지 않고 아직 받지 못한 애정과 결핍을 어쩌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지금 나의 파트너에게서 갈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날 집에 돌아오고 우울감이 더 심해졌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뿐 아니라 두 사람의 부모님 역시 어릴 때 결혼했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아이를 갖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 이유는 내 어린 시절 때문이다. 도저히 안정적이라고 할 수 없는 정서적, 경제적 가정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이를 기른다는 '로망'이 전혀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나의 가난한 부모님을 연민, 동정하면서도 미워하는 마음이 부딪쳤다. 또 그런 마음을 가지는 나 자신에게 역시 같은 감정이 충돌했다. 나는 왜 이 나이에도 이런 정서적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몇 년 전 다시 합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이러한 번뇌는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 줄은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는 그저 과거의 우울증에서 얻은 교훈으로 그때 했던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으며 나를 잘 살피는 것뿐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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