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그 쓰디쓴 맛

참 안 되는 것도 많다

by 샬롯H


W는 나에게 옷차림에 이런저런 훈수가 많았다. 화장은 그렇게 하지 마라, 옷은 그런 것은 입지 마라, 그런 무늬는 사지 마라 등등... 하지만 그건 그 시절 여자 친구에게 남자 친구가 하는 흔한 대사 같은 거였고 당시의 나도 그게 사랑이겠거나 하고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외에도 묘한 사건이 꽤 있었다. 교제 기간이 한 2년 정도 되어갈 때쯤이었을까?


"우리 학교 근처에서 같이 살면 좋겠다. 한 일 년 정도 동거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그 당시에도 '결혼은 먼저 살아보고 하는 거다'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결혼 전 동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대학생들은 '암,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았고 나는 그것을 실제로 믿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주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겉으로만 소위 '쿨한 척' 할 뿐 그것이 내 일이 될 때엔 태세 전환한다는 것은 몰랐다.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닌 W에게 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사귄 지 2년이 되었고 캠퍼스 커플이며 둘 다 통학을 하는데, 같이 좀 살아보는 게 어때서? 심지어 당장 그렇게 하자는 제안도 아니었는데 펄쩍 뛰며 정색을 하는 W를 보니 속이 상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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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성장 환경 문제에서 기인하겠지만 나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한 적이 없고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한 적도 없고 W 역시 분명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내 의견에 동조한 것 같기도 했다. 어느 날 W와 함께 무리에 껴서 대화를 하는 중이었는데, 아마도 그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 중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는 가지고 싶은 생각이 없어."

"너도 참!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W는 즉시 나를 타박했다. 자기도 나랑 비슷한 생각인 것처럼, 또는 나를 이해하는 것처럼 해놓고 지금 와서는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가 뭔지 나는 혼란에 빠졌다. 단지 사람이 모여 있어서, 그러니까 사회적 코드에 맞게 발언해야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진심은 달랐던 것인지.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W는 아마도 '그것은 먼 미래 일이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했던 것 같다. 항변하자면 그로부터 먼 미래인 현재에도 나는 출산에 대한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가 나에게 여자 친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라고 압박하던 소위 꼰대 스타일 인지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그 당시엔 나이가 어리기도 하니 심리적 부담도 크게 없고, 대학생들끼리도 오래 사귀면 서로 부모님을 챙겨주거나 하는 문화가 있었다. 꼭 만나서 식사를 할 필요는 없지만 선물을 보내드리거나 하는 등의 행동이었다.


애당초 비싼 것을 선물할 주머니 사정이 되지도 않았지만, 매번 내가 W의 부모님을 위해 뭔가 챙기려고 하면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한 번은 그의 개인 사정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어버이날 작은 카네이션 브로치 2개를 사서 그에게 건넸다. 정 싫으면 네가 샀다고 하고 드리라고 해도 그는 화를 냈다.


"결혼할 사이도 아니고 네가 며느리도 아닌데 왜 며느리 노릇을 하려고 해. 이런 것 하지 마."


솔직하다고 할 수는 있는 발언이지만 사람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고 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W는 오랜 시간 '나는 아직 너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사귀고 3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입장을 바꾸었고, 부모님과도 식사를 해볼까 할 때쯤 헤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오랜 시간 여자 친구로서의 나를 약간 부끄러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나 W 모두 당시 대화의 기술이 없었음엔 분명하다. '하지 말라'라는 명령식 교육을 받았고 그도 나에게 그를 반복한 것이리라. '그렇게 말하지 말고 이렇게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단순한 대화의 기술조차 몰랐기에.


다만 그와 나의 충돌은 단순한 대화의 기술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사회적 관습에 따르길 원했고 나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나는 '모든 사람은 다 이렇게 하니까 너도 해'라거나 '원래 그렇게 하니까 묻지 마'라는 류의 발언을 싫어하고 도리어 그에 반발하는 스타일의 인간이며, 이유가 합당해야 움직이는 타입이다. 가치관에 있어서, 사고방식에 있어서의 정 반대의 세계가 충돌한 것이 W와 나와의 관계였다. 그럼에도 사랑이 뭔지 그 모든 것을 오래도 감내했다.


세상에 절대 악이나 절대 선을 품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사고방식의 조화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누군가의 좋은 짝이 된 것처럼 W도 지금은 누군가에게 있어 좋은 짝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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