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정도가 사랑의 정도가 돼 버린 것일까?
오늘은 일찍 자려고 누웠다가,
이것저것 인터넷 글들을 보는데,
인상깊은 글 하나를 찾았다.
4년 째 연애 중인 여자가
남자친구와 소파에 앉아있다가 글을 하나 읽었는데,
ㅡ 이 여자도 나만큼 인터넷 글을 즐기나보다.
'좋아하면 질문이 많아져요'라는 문장이 있더란다.
순간, 자기 옆에 드러누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티비만 주구장창 보고 있는 남자친구를 보고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단다.
"너는 나한테 이제 궁금한 게 없어?"
남자친구의 답변은 여자친구를 더 열받게 만들었다.
"내가 너보다 널 더 잘 알아."
서로에게 편안함이 되는 게 문제일까? 아님,
서로에게 질문사항이 없어지는 게 문제일까?
예전엔 연락의 정도가 사랑의 정도라고 하더니
이젠 질문의 정도가 사랑의 정도가 돼 버린 것일까?
200일 가까이 사귀고 있는 우리 커플도
꽤나 익숙해지고 편해졌다.
이젠 굳이 둘이 대화를 하거나
무언가를 같이 하지 않아도,
서로 할 거 하며 야무지게 잘도 지낸다.
오히려, 그게 더 편해진 사이가 되었다.
이쯤 되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우리 관계에 의문이 일었다.
서로에게 굳이 질문하지 않는 우리는
지금 어떤 단계에 서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편안함이
무질문에서 비롯되는 권태로 가는 길일까?
결국, 나는 또 내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남자친구랑 카톡을 하다보니,
번뜩 O친구와 B친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안그래도, B친구가,
소개팅에서
질문이 너무 많은 남자한테 시달리고 온 것이다.
( 소개팅남 / B친구 )
"무슨 일 하세요?"
"페인트 계열사에서 일해요."
"전공은 무슨 전공이세요?"
"아, 디자인 전공했어요."
"출근할 때 아침은 드세요?"
"아뇨. 아침에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돼서요."
이런 식이었는데,
여기서 내 친구 둘의 의견이 나누어졌다.
B친구 의견은
"출근할 때 아침은 드세요?"
"아뇨. 아침에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돼서요."
"맞아요. 그래서 저도 간단하게 시리얼로 해결해요."
"조금 먹고 나면 더 배고프지 않아요?"
이런 식의 대화가 돼야한다는 것이었고,
O친구 의견은
"출근할 때 아침은 드세요?"
"아뇨. 아침에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돼서요.
A씨는 아침 식사 하고 출근하세요?"
"식사까진 아니고, 간단하게 시리얼로 해결해요.
혹시, 시리얼은 좋아하세요?"
이런 식의 대화가 돼야한다는 것이었다.
B친구 의견은,
한 주제로 자연스럽게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O친구 의견은,
한 번 질문이 오면
질문으로 되돌려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가만히 듣고만 있는 나에게 불똥이 튀었다.
누구 의견에 더 동조하냐는 것이었다.
질문이 꼭 필요해?
내 시큰둥한 대답이었다.
O친구가 바로 받아쳤다.
"좋아하면 다 알고 싶잖아. 그러니까 계속 물어봐야지.
그래야 답을 해주지!"
"꼭 질문을 해야만 그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냔 거지.
나는 그냥 일상 대화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던데."
내 O친구의 주장 내세우기가 시작되었다.
"봐봐. 저 사람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
그럼 영화 좋아하냐고 물어봐야 답을 해주지."
지지 않고 나도 맞받아쳤다.
"그냥 영화 본 얘기하면서
영화 좋아한다고 하면 그 사람도 말해주겠지.
저도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라든지.
저는 영화관에서 영화 못 본 지 오래 됐어요, 라든지."
결국, 우리의 연애성향이 다른 걸로 마무리 지었지만,
사실상,
지금도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왜냐면,
이번에 남자친구 생일 선물 고를 때,
지갑이 없어 자주 카드를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지갑 선물을 해줬기 때문이다.
ㅡ 물어보지 않아도 필요한 걸 알아냈잖아?
ㅡ 물론, 질문이 불필요하다는 건 아니고.
ㅡ 왜냐면,
남자친구가 이번 내 생일 선물 고를 때,
직접 물어봤거든.
"뭐 필요한 거 없어? 생일 선물 해줄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