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이 아니라, 나를 위한 진심.
열이 38도까지 올라서 내내 떨어지질 않았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편하지 않은 채
몽롱한 정신으로 몸이 아프다 했더니, 세상,
새벽 1시에 약국을 찾아 40키로 가량을 돌아다니다
약과 쿨링시트를 사다주고 가는 것이었다.
온몸에 열이 펄펄 나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도
어찌나 미안하고
세상 고맙던지...
남자를 대변하는 Kevin:
내가 겪는 고통이 아니기에
그 아픔을 다 알 순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미어져요, 매 순간 눈에 밟히죠.
그 찰나에도 내가 피곤하다는 게
미련스러울 정도로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절대 걱정을 안 하는 게 아니에요.
내 생활이 있어 여자친구의 곁을
24시간 온종일 지켜줄 순 없지만,
그게 아쉽고 서운해서
약을 사다주고 밥을 챙기고 병원에 데려가죠.
그것만으로도
여자친구를 많이 사랑하고 아낀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그렇게 나는,
오빠의 마음 덕분인지 다음 날 꽤나 나았다.
그 듬직한 마음에 안 나을 수가 없었달까.
다른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동요된다는 것이
참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좋은 일에 진심으로 축하하고
남의 슬픈 일에 같이 아파한다는 게
말은 그럴 듯 해도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진정 내게 닥친 일은 아니기에.
얼마 전에는,
아파서 응급실을 가야 했다.
오빠가 데려다준다고 동행을 했는데
내가 열이 오르고 오한이 들어
어지러움에 구역질까지 하니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손으로 스윽 닦아버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밥을 꼭 챙겨 먹었어야지! 병원 나가면 약 꼬박꼬박 먹고 밥도 다 챙겨 먹어! 어디 싸돌아다니지 말고 집에도 후딱 들어가고! 아프면 곧장 병원 가서 진료 받고! 엉!!?"
잔소리를 무진장 입에 달고 사는 엄마 덕에
잔소리라면 귀를 막아버리는 내 눈에,
다다다다 쏘아붙이며 잔소리를 하는 오빠가 참 귀여워보였다,
눈물을 보인 까닭일까.
그렇게, 오빠는
내게 더욱 놓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SBS스페셜에서 <아빠가 임신했다>라는 특집을 했는데, 남편이 임신한 아내의 고통을 체험해보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아직도 머리에 남는 말 한 마디가 있다.
너 진짜 어떡하냐...
출산의 고통을 겪어본 남편이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걱정에 걱정이 뒤엉켜 마음이 콱 막혀버린 듯한 한 마디.
"고통을 내가 겪어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라는 말보다
진심어린 걱정이 담긴 말투의 저 한 마디가,
내게 한 말도 아닌데
내가 다 위로되는 느낌이었다.
여자를 대변하는 Laura: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어요.
아마도 마음 혹은, 진심을 말하나봐요.
마음은 진심으로 통한다고들 하잖아요.
내가 아플 때
남자친구가 약을 사다주거나 병원에 데려가는 것을 고마워하는 건, 솔직히 미안하지만 행동 때문이 아니에요.
'이 사람이 나를 걱정하는구나', 하는 마음 때문이죠.
그 마음이 고마워 위로가 되고
감동이 돼요.
바라면 안 된다지만 소박하게 원하자면요,
남자친구의 모든 행동이 내게진심이었으면 좋겠어요.
연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이 아니라,
나를 위한 진심.
내가 여자친구라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 여자친구가 나이기 때문에
해주게 되는 것이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