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들떴지만, 작년 가을에 다녀온 캠핑 이후 큰 깨달음으로 새 텐트를 쓸 생각을 하니 들뜬 마음이 배가 되어 생각만 해도 흥이 넘쳐 어깨춤이라도 출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가을 우리의 2번째 캠핑.. 핀의 두께 그리고 좋은 텐트 구입의 필요성, 마지막으로 마스크의 중대한 역할을 제대로 깨달았던 여행이었다.
캠핑 초보 세 자매가 지난여름 첫 캠핑 후 극심한 후유증을 앓다 결국 날을 잡았다.
10월 16일 토 1박 2일. 태안 학암포 해변.
캠핑 가기 전.
첫 번째 캠핑은 의욕 넘치게 갔었지만, 다른 캠핑족들을 보고 우리 텐트가 너무 초라함을 몸소 느꼈기에 우린 텐트를 바꾸기로 했다.
큰맘 먹고 우린 송도로 가서 D 브랜드의 가성비 갑이라 하는 텐트를 의기양양하게 사 왔다.
하지만 집에서 미리 꺼내본 텐트는 우리 힘으로 도저히 칠 수가 없었고, 구입처에 연락을 했더니 재방문을 요청했다. 결국 우리는 매장을 재방문해서 직원이 텐트 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직원 역시 안 되겠다며 교환해 주겠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교환할 제품을 매장에서 확인했는데.. 남자 직원도 땀을 뻘뻘 흘리며 텐트를 겨우 치고 "여자분들이 쓰시기에는 힘들 것 같네요."라고 자진 결론을 내주어 결국 환불을 하고 돌아왔다.
캠핑 예약 일이 다가오도록 우리는 별다른 결정을 못 하고 결국 원래 텐트를 쓰기로 했다.
대신 가을이라 전기장판도 챙기고, 휴대용 히터도 챙겨 나름 보온을 신경 써 준비했다.
또, 새 텐트를 구입하지 못한 대신, 타프를 구입해서 이 정도면 2번째 캠핑은 완벽하다고 자신하며 우리는 아주 즐겁게 출발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0월 중순에 한파주의보가 뜬 추운 날이었던 것이다.
여행 다녀온 후 찾아보니 이랬다...
캠핑장 가기 전 행담도 휴게소에 들렀는데 바람이 정말 심하게 불었다. 우스갯소리로 설마 우리 날아가겠냐 하며 큰소리쳤지만 설마 하는 불안감을 가득 안고 우리는 캠핑장에 도착했다.
드디어 도착한 캠핑장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한 시간 전 행담도 휴게소에서 부는 바람과는 차원이 다른 정말 칼바람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위치를 확인하자, 캠핑장 직원도 한마디 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추워서 괜찮으실까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물었다.
"혹시 글램핑 자리 있나요?"
직원의 대답은 아주 단호했다.
"주말이라 글램핑 자리는 없어요."
결국 우리는 직원이 챙겨주는 쓰레기봉투만 챙겨서 서둘러 우리의 캠핑 자리로 향했다.
안내받은 자리는 바다가 바로 보일 줄 알았는데 다행히 우리 키 높이 정도 되는 얕은 언덕이 가리고 있었다.
보통 바다 전망이라고 하면 뻥 뚫린 바다를 상상하지만 이때는 완전한 바다 전망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생각될 정도였다. 그나마 그 언덕이 우리의 바람을 조금이라도 막아주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배정받은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한번 미친 듯 웃었다.
그리고 서있는 동안 우리의 머리는 미친 듯 휘날렸다.
칼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우리와 같은 구역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튼튼하게 텐트를 쳐놓은 상태였다.
실성한 듯 웃다가 우리 셋 중 누군가 말했다.
"옆 텐트는 말짱하네. 우리도 텐트 치면 되는 거야! 바람에 안 쓸려 갈 거야! 하자!"
비록 칼바람은 불지만 우리도 텐트를 치면 편하게 바람 소리 들으며 여유를 즐길 거라는 상상을 하며 우리는 텐트와 타프를 꺼냈다.
텐트를 펼치는 도중에 우리의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어느새 텐트 폴대 역시 휘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약한 텐트와 우리는 바람과 싸우고 있었다.
심지어 새로 구입한 타프를 사면서 준비해온 망치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한쪽 팩을 박고 다른 곳을 치다 보면 바람에 쏙 빠지고.. 손장갑도 안 챙겨서 손은 찬 바람에 시리지만 마무리한 팩이 쏙 빠져나오고 다시 박고, 또 박고.. 하지만 또 빠지고 빠지고.. 너무 지쳐 털썩 땅에 앉아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화장실이나 바다를 왔다 갔다 하면 수군거렸다.
'저 텐트 칠 수 있을까. 저걸로 안될 텐데..'
그들의 말을 듣고 옆집 텐트를 보니 땅에 박힌 팩이 아주 두꺼운 대못 수준이었다.
우리의 팩은 젓가락처럼 얇았고.. 그래도 다행히 얇은 팩이지만 수량이 넉넉히 있어서 우리는 한번 팩을 박을 때 3개씩 꽂아서 박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씩 빠지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어서 그 위에 주변에서 주워온 큰 돌을 올려놓았다.
우리가 산발이 되든 말든 머리를 질끈 묶고 혹시나 해서 가져온 점퍼를 껴입고 텐트를 친지 거의 2시간 만에 완성!!
어렵게 자리 잡은 텐트
사진을 찍는 와중에도 우리의 타프 한쪽은 빠지고 다시 박고 돌을 주워 올리고 올리고..
하..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픈 상황이었다.
바람이 미친 듯 불었다.
힘들게 텐트를 치고 나니 텐트 안은 나름 아늑했다.
서둘러 전기장판을 깔고 식탁을 펼치고.. 지쳐서 그냥 자고 싶었지만 우리의 배 시계는 정확했다.
누구의 배 시계가 먼저 울었다 할 것 없이 돌림 노래처럼 꼬르륵.. 꼬르륵..
캠핑장 근처 어시장이 있어 서둘러 차를 몰고 갔다.
걸어가도 되는 거리라고 했지만 우린 그럴 힘이 없기에 차를 타고 갔다.
가는 와중에 힘차게 치는 파도를 보고 와~ 소리 지르며 창문을 내렸다가 봉변을 당했다.
모래가 함께 차 안에 들어온 것...
눈 뜨기도 힘든데 얼른 창문 올림 버튼을 눌러 그나마 차가 모래사장이 될 뻔한 사고는 막았다.
금세 도착한 어시장은 생각보다 아담했고 사장님들이 모두 친절해서 좋은 가격에 좋은 횟감과 조개를 사서 재빨리 돌아왔다.
그사이 우리 텐트가 잘 버티고 있을까 걱정했는데 타프 한 곳만 미친 듯이 휘날리고 있었기에 이제는 당황하지 않고 얼른 팩을 박고 돌을 더 찾아 올려놓았다.
캠핑장에 도착한 지 거의 3시간 만에 시작된 우리의 식사 시간!!
텐트가 작아서 안에서 음식을 먹기에는 비좁은 상황.
춥지만 다행히 전기 만능 그릴이 있어서 바람 탱탱 부는 와중에 불을 피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어시장을 다녀온 덕분에 맛있는 회와 조개탕으로 추웠던 몸을 녹일 수 있었다.
추위에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추위에 버티기 위해 먹은 우리의 저녁 식사.
술이 빠질 순 없다. ^^
이후 우리는 텐트 안으로 장소를 옮긴 후 챙겨 온 전기장판의 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전기장판 위에 앉으니 아담한 텐트 내부는 방금 전 상황 하고는 금세 달랐다.
우리는 그 사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화장실을 오가는 사이 무조건 텐트 상황을 확인했다.
혹시나 팩이 빠진 게 있는지, 큰 돌 옆에 자갈들도 올려놨는데 어떻게 됐는지..
중간중간 정말 다시 팩 박고 큰 돌 옆 더 큰 돌을 가져다 놓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우리의 작은 텐트는 바람을 잘 견디고 있었다.
이날 저녁을 먹고 낙조를 보기 위해 캠핑장 앞바다를 구경했는데 아주 고운 모래사장에 붉은 노을이 정말 멋졌다.
칼바람이 불어도 풍경은 멋졌다.
바람만 너무 심하지 않았다면 춥지만 않았다면 바다를 한참 더 구경하고 싶을 정도였다.
여름에 온다면 정말 좋겠다 싶을 정도로 고운 모래사장이 있는 학암포 해수욕장이었다.
우리는 술기운에 배부름에 피곤함에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른다.
완벽히 닫히지 않는 문이 야속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전날과는 달리 바람이 잔잔해졌고, 해가 쨍쨍하게 빛났다.
눈을 떠보니 완벽히 닫히지 않는 텐트 문 앞에서 내가 마스크를 쓰고 그 틈으로 해가 들어와 깨어난 것이다.
야외취침이 이런 거겠지 싶을 정도로 어젯밤을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완벽히 닫히지 않는 텐트의 출입구는 냉장고로 가리고, 마스크를 쓰고 잠들었다니.. 대단하다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 텐트 입구 앞에서 잤는지는 모르겠지만, 전기장판도 등의 절반만 뜨끈했다.
안쪽에 동생이 자리를 넉넉히 잡아서 내가 정말.. 아침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난 건 기적이라고, 입안 돌아가고 살아났다고.. 내 몸에 내가 감사할 정도였다.
첫 번째 캠핑은 여름 직전이라서 우리의 텐트가 완벽히 닫히지 않아도 불편한 게 없었다. 여자 셋인데 뭐가 무서워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고, 텐트 입구는 캠핑용 전기냉장고로 막고 있었으니.. 또 자리도 좋아서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됐었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은 완벽히 닫히지 않는 텐트가 한없이 얄미웠다. 지퍼만 더 달아줬어도 좋았을 텐데..
다음날 아침 바다도 구경하고 밤새 무사히 일어난 우리들을 스스로 칭찬하며 해장 라면을 먹었다.
그리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어렵게 쳤던 텐트를 30분도 안 돼서 정리하고 우리는 이른 체크아웃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사히 돌아온 일요일.
집의 아늑함이 너무 좋았고, 무식이 또 용감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뭘 몰라서 팩이 얇은지 두꺼운지도 몰랐고, 캠핑 가면서 면장갑도 안 챙긴 것도 대단했고, 다행히 망치를 챙겨가서 두들길 게 있어서 그나마 팩을 맨손으로 박지 않은 게 행운이었다.
시간을 돌려 다시 그 상황이 온다면.. <돌아간다 vs 어떤 역경이 있어도 텐트를 친다> 선택하라면.
난 후자다.. 힘든 만큼 추억도 쌓였고 야외취침이 뭔지 제대로 배운 가을 캠핑이었다.
이후 우리는 내년쯤 텐트를 새로 구입하고 고려해 보자고 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하지만 추억할 이야기는 하나 남겨졌다.
2번째 캠핑을 다녀온 후 우리의 살벌한 경험담을 듣고 친정 아빠는 바로 두꺼운 팩을 만들어 주셨다.
바람이 아무리 심하게 불어도 한번 꽂히면 안 뽑히게 생긴 튼튼하고 두꺼운 팩..
두꺼운 팩을 보니 아주 든든하고 바람 탱탱 부는 곳에서 테스트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이번 3번째 캠핑에는 드디어 새 텐트를 장만했다.
이제 추워도 괜찮을 이너 텐트가 있고 또 비바람이 불어도 아늑하게 먹을 수 있는 실내 전실을 생겼다.